지난 10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휴전 협정을 중재한 태국과 캄보디아가 다시 교전에 나섰다.
지난달 13일(이하 현지시간) 국경지대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며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지난 7일부터는 산발적 교전에 이어 전투기 폭격까지 이뤄지면서 전면전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트럼프, 관세 무기로 태국-캄보디아 평화협정 체결
태국-캄보디아, 국경서 지뢰폭발 사고 후 대립 격화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2기 첫 아시아 순방 첫날인 10월 26일 태국과 캄보디아의 휴전 협정 체결을 주재하며 '피스메이커'로서 위상을 과시했다.
태국과 캄보디아는 7월 국경 지대에서 교전을 벌여 양측에서 48명이 숨지고 30만명이 넘는 피란민이 발생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양국에 무역 협상 중단을 지렛대로 휴전을 압박했고, 두 나라는 말레이시아의 중재로 7월 말 휴전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 개최 장소인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아누틴 찬위라꾼 태국 총리와 훈 마네트 캄보디아 총리, 아세안 의장국인 말레이시아의 안와르 이브라힘 총리와 함께 휴전 협정문에 공동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가 캄보디아와 태국 간 군사 충돌을 끝내는 역사적 협정에 서명한 오늘은 동남아 모든 국민에게 중대한 날"이라며 "많은 이들이 이뤄질 수 없을 것이라고 했던 일을 우리가 해냈고 아마도 수백만 명의 목숨을 살렸기 때문에 매우 흥분된다"며 자신의 공로를 과시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태국과 캄보디아의 신경전은 지속됐다. 양국은 휴전 협정 체결 후 국경 지대 중화기 철수·지뢰 제거 등 협정에 따른 조치를 이행했다. 하지만 지난달 10일 태국 동부 시사껫주 국경지대에서 지뢰가 폭발, 태국군 군인 1명이 오른발을 잃는 사고가 발생하자 태국 정부가 휴전협정 이행을 중단한다고 선언, 다시 긴장이 높아졌다.
급기야 지난달 12일 캄보디아 북서부 반띠어이미언쩨이주 쁘레이짠 지역의 국경지대에서 총격전이 벌어져 캄보디아 민간인이 사망하는 일이 생겼다.
훈 마네트 캄보디아 총리는 즉각 페이스북에 "이런 행동은 인도주의 정신과 국경 문제를 평화적으로 풀기로 한 최근 합의에 어긋난다"며 "이번 공격은 태국군이 대결을 선동할 목적으로 수일 동안 수많은 도발적인 행동을 펼친 후에 발생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그러자 태국군 대변인인 윈타이 수바리 소장은 캄보디아군이 먼저 태국 쪽으로 총격을 가했다면서 태국군이 "엄폐하고 경고 사격을 해 대응했다"고 밝혔다.
태국, 전투기 동원 "목표물 타격 시작"…전면전으로 번지나
이런 가운데 지난 7일 양국이 국경 지대에서 교전을 벌이면서 휴전 합의는 무산될 가능성이 커졌다.
태국군은 8일 성명을 통해 "캄보디아군이 먼저 태국 영토 내에 포격을 가했고, 후속 지원사격을 억제하기 위해 (캄보디아) 여러 지역의 군사 표적을 전투기로 공격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캄보디아군의 공격으로 태국 군인 1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현지 매체는 태국 당국이 캄보디아와의 국경이 가까운 4개 주에 대피 명령을 내렸으며 F-16 전투기도 출격시켰다고 보도했다.
양국은 전날에도 국경 지역에서 교전을 벌였다.
태국군에 따르면 전날 오후 캄보디아군의 소총 공격으로 태국군 2명이 부상을 입었고, 이날 오전에도 캄보디아군 공격으로 2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을 입었다. 캄보디아 측 피해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전날 캄보디아 국방부는 성명을 내고 최근 며칠 동안 태국군이 도발적 행동을 한 데 이어 두 지역에서 캄보디아군을 공격했으나 보복하지 않았고 사격 중단을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태국군은 성명을 통해 캄보디아군이 동부 시사껫주 국경에서 공격을 시작해 교전 규칙에 따라 대응했다며 34분 만에 종료됐다고 맞섰다. 시사껫주는 캄보디아 프레아 비헤아르주와 맞닿은 태국 국경 지역이다.
훈 마네트 캄보디아 현 총리의 아버지이자 38년 동안 장기 집권한 훈 센 전 총리(현 상원의장)는 태국군이 보복을 유도하려고 한다며 캄보디아군에 자제를 촉구했다.
그는 소셜미디어(SNS) 페이스북에 "대응을 위한 '레드라인'(한계선)은 이미 설정됐다"며 "모든 지휘관은 이에 따라 장교와 병사들을 교육할 것을 촉구한다"고 썼다.
분쟁 배경은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 영유권'
국경을 접한 태국과 캄보디아는 오랜 영토 분쟁 역사를 가지고 있다.
가장 핵심은 1907년 프랑스와 캄보디아가 맺은 조약에 등장하는 프레아 비히어, 따므언톰 등 고대 사원 소유권 문제가 있다.
당시 캄보디아를 점령한 프랑스는 통치를 수월히 하려는 목적으로 태국 측 국경선을 일방적으로 설정했다.
이로 인해 해발 525m 절벽 위에 세워진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을 포함한 접경 지역 일대가 영토 분쟁의 대상이 됐다.
1954년 이후 국제사법재판소, 유네스코에 회부됐지만 70년이 넘도록 현지 민족주의·정치적 이해관계에 얽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들어서는 캄보디아를 향한 국제 사회 제재 역시 국경 분쟁에 기름을 부었다. 최근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과 영국 사법 당국은 캄보디아를 세계적인 온라인 사기 범죄 진원지(global epicenter)로 꼽았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0월 미 당국은 캄보디아·중국 이중 국적자 천즈(陳志·38) 회장과 그가 세운 프린스 그룹 소유 비트코인 140억 달러어치를 압류했는데 이것이 훈센 정권 돈줄에 치명타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수익이 끊긴 상황에서 훈센 정권이 의도적으로 태국과 국경 갈등을 일으켜 정권 내부 결속을 다지고 비판 여론을 외부로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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