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과 춤의 합… 부국강병 꿈꾼 정조, 예술에 정신을 새기다” ‘칼검(劍) 춤무(舞)’ 그 뒷 이야기 [공연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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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춤의 합… 부국강병 꿈꾼 정조, 예술에 정신을 새기다” ‘칼검(劍) 춤무(舞)’ 그 뒷 이야기 [공연리뷰]

경기일보 2025-12-08 18:37:2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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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정조테마공연장에서 열린 ‘칼검(劍) 춤무(舞)’ 공연 장면. 검으로 경지에 이르렀다는 김광택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정조인문예술재단 제공
지난 4일 정조테마공연장에서 열린 ‘칼검(劍) 춤무(舞)’ 공연 장면. 검으로 경지에 이르렀다는 김광택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정조인문예술재단 제공

 

정조에게 무예는 단순한 군사 훈련이 아니었다. 그는 무예를 나라를 지키는 힘이자, 백성을 향한 통치 철학의 연장선으로 보았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극을 가슴에 품고 왕위에 오른 정조는, 강한 군대 없이는 진정한 태평성대도 없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즉위 이후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해 흩어져 있던 무예를 표준화하고, 무예를 왕권 아래 다시 정렬했다. 칼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무너진 질서를 다시 세우는 상징이었고, 혼란의 시대를 넘어 자주적인 국가로 나아가겠다는 의지였다.

 

‘칼검(劍) 춤무(舞)’ 공연 커튼콜에서 출연진이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이나경기자
‘칼검(劍) 춤무(舞)’ 공연 커튼콜에서 출연진이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진행자 서승원, 검무예인 윤자경, 무예연구가 김영호, 검무예인 신미경, 김재성. 이나경기자

 

1795년, 화성행궁 봉수당에서 열린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에서 검무를 올린 것 역시 우연이 아니었다. 왕실의 최고 어른이자 자신의 어머니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잔치에서 ‘검무’를 선보인 것은 정조가 꿈꿨던 ‘예로 다스리되, 힘으로 지키는 국가’를 세상에 선포하는 것이었다. 화성으로의 8일간 행차를 담은 ‘원행을묘정리의궤’에는 그렇게 칼춤을 추는 두 여인의 그림과 함께 ‘검(劍)무(舞)’라는 이름이 또렷이 남았다. 조선 왕실 공식 기록에 명확히 남은 ‘검무’는 이때가 유일하다.

 

지난 4일 저녁, 화성행궁 봉수당을 지척에 둔 정조테마공연장은 궂은 날씨에도 관객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230년 전 펼쳐졌을 문무예술 정신을 보기 위한 설렘과 긴장감이 객석을 메웠다. 검은 칼날이 공기를 가를 때마다 숨을 참는 관객의 호흡과 함께 공간엔 검기(劍氣)가 차오르는 듯했다.

 

지난 4일 정조테마공연장에서 열린 ‘검무’ 공연 장면. 김재성 검무예인이 무예를 선보이고 있다. 정조인문예술재단 제공
지난 4일 정조테마공연장에서 열린 ‘검무’ 공연 장면. 김재성 검무예인이 무예를 선보이고 있다. 정조인문예술재단 제공

 

이날 공연은 정조가 어머니 홍씨의 회갑을 기념해 화성행궁 봉수당에서 열었던 진찬연에서 기록으로만 전해지던 검무를 복원한 첫 무대다. 박제가의 ‘검무기’, 신윤복의 ‘쌍검대무’, ‘무예도보통지’의 쌍검 검법, 그리고 의궤 속 기록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조인문예술재단이 2년에 걸친 학술 연구와 실연을 거쳐 완성한 결과다.

 

공격과 방어를 위한 검술과 곡선으로 이뤄진 무형의 예술 춤이 한데 섞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연출을 맡은 지기학 전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과 무예연구가이자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인 김영호 정조인문예술재단 이사 겸 한국병학연구소장, 그리고 진행자 서승원과 3명의 예인이 펼친 이날 무대는 마치 종합예술과 같았다. 화려한 연출 없이 검은 무대 위 오로지 빛과 그림자, 검만 있을 뿐이었다.

 

(왼쪽부터) ‘칼검(劍) 춤무(舞)’ 공연을 이끈 김영호 무예연구가와 지기학 연출가가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나경기자
(왼쪽부터) ‘칼검(劍) 춤무(舞)’ 공연을 이끈 김영호 무예연구가와 지기학 연출가가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나경기자

 

“검은 원래 병기이고, 춤은 아름다움의 세계입니다. 그 두 세계 사이의 간극은 상상 이상으로 큽니다. 이번 무대는 그 경계를 넘는 순간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기록 속에만 남아 있던 검술이 다시 살아 움직이고, 그것이 춤으로 승화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지기학 감독의 말처럼 이날 무대에선 ‘검’의 예술이 펼쳐졌다.

 

무대는 총 8막으로 이어졌다. 1~3막에서는 윤자경·김재성·신미경 세 명의 예인이 각각 ‘검녀’, ‘무제’, ‘검무랑’을 선보였다. 음악도, 화려한 의상도 걷어낸 채 오로지 자연의 새소리와 칼, 몸의 결만이 남았다. 맨발에 칼을 쥔 여인이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가 다시 재빠르게 치고 들어오는 순간, 관객들은 숨을 삼키며 그들의 칼 끝만을 바라봤다.

 

지난 4일 정조테마공연장에서 열린 ‘검무’ 공연 장면. 김영호 무예연구가와 예인들이 무예도보통지의 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정조인문예술재단 제공
지난 4일 정조테마공연장에서 열린 ‘검무’ 공연 장면. 김영호 무예연구가와 예인들이 무예도보통지의 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정조인문예술재단 제공

 

4막 ‘검선(劍仙) 김광택’은 검무와 검술의 경계를 상징적으로 풀어낸 대목이었다. 영·정조 시기에 실존했던 검술의 명수 김광택은 거문고 소리와 함께 등장했다. 군영의 병장기와 검술이 관무제를 거쳐 담장을 넘어 민간으로 스며들고, 그 과정에서 ‘공격의 칼’이 ‘춤의 칼’로 변모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무대 위 서사로 펼쳐졌다. 정조의 군사들이 펼쳤던 검술 정신이 민간에 스며들어 검무가 되고, 그것이 다시 궁중으로 돌아온 것이 아닐까하는 상상이다.

 

5막으로 넘어가며 무대는 반전됐다. 왕이 직접 진두지휘하며 편찬한 ‘무예도보통지’의 기록 속 장면들이 무대에 구현됐다. 5~7막 김영호 무예연구가는 직접 시연과 해설을 곁들이며 정조의 강군 육성 정신과 이를 연습했을 그 시절 군사들의 모습을 보여줬다.

 

지난 4일 정조테마공연장에서 열린 ‘검무’ 공연 장면. 신미경, 윤자경 예인이 칼검(劍) 춤무(舞)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정조인문예술재단 제공
지난 4일 정조테마공연장에서 열린 ‘검무’ 공연 장면. 신미경, 윤자경 예인이 칼검(劍) 춤무(舞)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정조인문예술재단 제공

 

마침내 두 여인만이 남았다. 마지막 8막 ‘칼검(劍)·춤무(舞)’ 무대였다. 군복에 해당하는 전복과 전대, 군모인 전립까지 착용한 두 여인이 서로의 모양새를 살펴주듯 마주 보며 칼을 들었다. 몸을 뒤로 젖혀 크게 휘두르는 동작에 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졌다. 이윽고 칼을 내려놓고 등을 맞댄 두 여인의 뒷모습은 긴 여운을 남겼다.

 

“검무는 단순한 춤이 아니라, 본래 조선이 갖고 있던 가장 건강한 몸의 기억”이라며 “이 무대는 그 잘린 역사와 정신을 다시 잇는 작업”이라고 말한 김영호 연구가의 각오는 수많은 관객에게 가닿았다.

 

그 옛날 국왕과 함께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했던 박제가가 어느 날 묘향산을 여행하다가 보았다는 검무의 인상에 관한 명문은 화성행궁 봉수당에서 열린 회갑연에서 검을 들고 그곳을 누볐을 31살의 의녀 ‘춘운’과 24살의 침선비 ‘운선’ 두 여인의 향기를 현대의 관객에게 오래도록 남기었다.

 

“어우러져 싸울 때는 네 자루가 서리를 날리고, 갈라졌을 때는 두 자루 번개를 일으키네. 검 기운 벽에 어른어른 파도 희롱하는 어룡의 형상이네”(박제가, ‘검무기’ 중).

 

● 관련기사 : 정조의 검무, 230년 만에 무대 위로… 화성행궁에서 ‘칼검 춤무’ 첫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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