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김준혁 기자 = 최근 개그우먼 박나래에 대한 불법 의료 행위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한 의사단체가 이른바 ‘주사 이모’ A씨의 경력에 의문을 제기하며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8일 의료계에 따르면 ‘공정한사회를바라는의사들의모임(공의모)’은 전날 성명을 통해 “박나래씨의 ‘주사 이모’로 알려진 A씨가 교수로 역임했다는 ‘포강의과대학’은 유령 의대”라고 주장했다.
공의모는 “중국의 공식 의대 인증 단체인 ‘전국개설임상의학전업적대학’ 자료에 따르면 중국에 162개의 의과대학 명단 어디에도 포강의대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세계의학교육협회(WFME)가 운영하는 세계 의과대학 목록에도 내몽고의대, 내몽고민족대 의대, 적봉의대(치펑의대), 포두의대(바오터우의대) 네 곳뿐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중국 의과대학 졸업자에겐 한국 의사국가시험 응시 자격이 부여되지 않는다”며 “따라서 A씨가 설령 중국 의사면허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한국에서 의사면허를 취득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며, 자격 없이 의료행위를 했다면 이는 명백한 불법”이라고 지적했다.
불법 의료 의혹에 대한 A씨의 해명에 정면 반박한 것이다. 그는 이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12~13년 전 내몽고라는 곳을 오가면서 힘들게 공부했고, 포강의과대학병원에서 내·외국인 최초로 최연소 교수까지 역임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프로필에 ‘내몽고 포강의과대학병원 한국성형센터장(특진 교수)’으로 자신을 소개해 왔으나, 이날 기준 소속 기관을 ‘内蒙古包钢医院(내몽고바오강병원)’으로 수정하고 게시글도 모두 삭제됐다.
공의모는 “의사가 아니어도 ‘의대 교수’라는 직함을 사용할 수는 있다”면서 “A씨가 실제로 해당 명칭을 사용해 왔다 하더라도 의사 신분 여부는 별도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현택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도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검찰은 보건범죄단속에관한특별조치법, 의료법, 약사법, 사기죄 혐의가 있는 ‘주사 이모’의 여권을 정지·출국금지하고 구속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A씨를 관련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으며, 박나래에 대해서도 공동정범 여부를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보건복지부도 이에 대해 “수사기관에 고발 및 인지된 사건이므로 경과를 지켜보고 필요한 경우 행정조사 등을 검토하겠다”며 “일차적으로 위법행위를 한 자가 처벌 대상이지만, 의료법 위반임을 인지하고도 적극적으로 요청하는 등 가담 여부에 따라 환자 본인도 공범으로 처벌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한편 논란이 거세지자 박나래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더 이상 프로그램과 동료들에게 민폐를 끼칠 수 없다는 생각에 모든 일이 깔끔하게 해결되기 전까지 방송활동을 중단하기로 결심했다”며 “믿고 응원해주신 여러분께 머리 숙여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다만 불법 의료행위에 대해선 별도 구체적인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이 같은 의혹은 지난 6일 언론 보도를 통해 사진과 메시지 캡처본 등이 공개되면서 본격적으로 확산됐다.
연예매체 <디스패치>에 따르면, A씨는 경기 일산 오피스텔과 차량, 해외 촬영지 등 정식 의료기관이 아닌 장소에서 박나래에게 수액·주사 시술을 해왔다. 또 항우울제·수면제 등 향정신성의약품을 대신 처방받아 보관해온 정황도 포착됐다.
앞서 지난 5일, 박나래의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광장은 의혹에 대해 “박나래씨의 의료 행위엔 법적으로 문제될 부분이 전혀 없다”며 “바쁜 촬영 일정으로 병원 내원이 어려운 상황에서 평소 다니던 병원의 의사와 간호사에게 왕진을 요청해 링거를 맞았을 뿐이며, 일반적으로 이용되는 합법적 의료 서비스”라고 해명한 바 있다.
소속사 앤파크도 “의사면허가 있는 분에게 영양제 주사를 맞은 것이 전부”라며 “병원에서 인연을 맺었고 스케줄이 힘들 때 왕진을 요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료계에선 A씨의 의료행위가 법에 저촉될 소지가 있지 않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만약 무자격자로 드러날 경우, 의료법 제27조(무면허 의료행위 금지) 위반에 해당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도 있다.
왕진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의료법 제33조는 의료인이 의료기관을 개설하지 않고는 의료업을 할 수 없고, 원칙적으로 자신이 개설했거나 소속된 의료기관 내에서만 진료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응급환자 등 부득이한 사유의 경우 일부 예외가 인정되지만, A씨가 차량이나 해외 촬영지 등에서 반복적으로 수액을 놓은 정황이 제기된 만큼 ‘출장 시술’ 성격에 가깝지 않느냐는 것이다.
또 처방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일부 약이 엄격한 관리 대상인 향정신성의약품이라는 점, 또 이를 정당한 처방·조제 절차 없이 대리 처방 등 방식으로 건네받거나 투약했다면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여부도 쟁점이 될 수 있다.
마약류관리법 제30조에 따르면 마약류취급의료업자가 아니면 의료 목적이라도 마약 또는 향정신성의약품을 투약하거나 처방전을 발급해선 안 된다.
따라서 마약류 취급 신고를 하지 않은 의원이나 한의원, 피부관리실, 비의료기관 등은 법적으로 마약류를 취급할 수 없다. 외국 의사면허만 보유한 경우에도 국내에선 ‘의료업자’로 인정받지 못해 해당 자격이 부여되지 않는다.
일각에선 단순 피로나 컨디션 관리 등을 명목으로 향정신성의약품을 처방·투약했다면 법이 허용하는 ‘의료 목적’의 범위를 벗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이번 사안에 대해 검찰 고발까지 이뤄진 만큼, A씨의 의사면허 및 마약류 취급 자격 여부 등 각종 의혹은 수사를 통해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출장 주사’는 이전부터 반복적으로 문제 제기된 불법행위다. 지난 2020년 10월 코로나19 확산 시기엔 병원에 소속되지 않은 한 간호조무사가 가정을 돌며 영양 수액 주사를 놔주다가 여러 명의 확진자가 발생한 집단감염 사례가 부산시 방역 당국에 보고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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