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우리 삶에서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언제나 함께하지만, 자연을 어떻게 이해하느냐는 각자의 시각에 달려 있다. 이러 한 물음에 감각적 시각언어로 응답해온 다니엘 스티그만 만그라네가 한국 첫 개인전 <산과 친구되기(Befriending the Mountains)>를 개최한다.
2014년 베를린 ABC 페어에서 열린 다니엘 스티그만 만그라네의 전시 전경. © Andrea Rossetti
생물학적 호기심에서 출발한 그의 예술은 자연을 대상이 아닌 교감의 존재로 여긴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숲을 단순한 장소를 넘어 환경적·정치적·문화적으로 세계의 복잡성을 구현하는 하나의 살아 있는 유기체로 바라보며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인간은 서로 얽힌 관계 속에서 비로소 행위자로 기능한다는 부뤼노 라투르의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 결과 모든 작품은 숲을 통해 얽힘과 상호 의존 개념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2014년 베를린 ABC 페어에서 열린 다니엘 스티그만 만그라네의 전시 전경.© Andrea Rossetti
전시는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감각을 일깨운다. 3개 이상의 방향으로 열려 있는 사선 형태의 파티션은 관람객이 전체 공간을 한눈에 파악하지 못하도록 혼돈을 안긴다. 그 순간부터 숲속 오솔길을 걷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어지는 공간에서는 작가의 대표작인 알루미늄 커튼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통로를 막은 것인지, 혹은 지나가도록 유도하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이 경계는 자연 역시 명확한 경계 없이 다층적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관람하는 이는 구조물 사이를 자연스럽게 오가며 공간과 교감하고, 숲속을 거니는 듯한 감각을 체험하게 된다.
전시 공간 내·외부의 연결, 인공과 자연의 소통을 의미하는 아뜰리에 에르메스 건물 중정. © 김상태
전시의 백미는 공간을 압도하는 비디오 ‘물고기가 입맞추는 달(Fish Kissing the Moon)’이다. 작가가 최근 경주 월지에서 목격한 보름달을 출발점으로 구상한 이 작품은 달빛이 연못 위에서 일렁이며 물고기와 마주하는 짧은 순간을 포착했다. 생성되고 사라지는 자연의 찰나를 놓치지 않는 그의 사색적 감각이 빛을 발한다.
보는 내가 아닌 경험하는 나를 구현하는 것. 관람객은 이 여정을 통해 ‘자연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자연이란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전환하는 순간에 도달한다. 이는 단순한 전시 감상이 아니라 자연을 향한 감각의 축을 다시 세우는 경험에 가깝다. 전시는 2025년 11월 28일부터 2026년 3월 8일까지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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