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웅 사태, 낙인을 넘어 다시 사람을 바라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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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웅 사태, 낙인을 넘어 다시 사람을 바라보는 일

프레시안 2025-12-08 13:53:16 신고

3줄요약

초겨울의 골목은 늘 조금 서늘하다.

가까스로 가지 끝에 매달려 있던 잎들이 바람의 숨결 하나에 떨리며 아래로 미끄러진다.

잠시 머뭇거리지만 결국 흘러가고, 흙이 되고, 다시 나무의 양분이 된다.

인간의 삶도 다르지 않다.

누구에게나 오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장면 하나쯤은 있다.

그러나 그 장면은 한 사람을 규정하는 문장이 아니라, 긴 문단 속 작은 쉼표에 불과하다.

배우 조진웅의 오래전 소년기 기록이 어느 날 ‘폭로’라는 표정을 쓰고 소환되었을 때,

연구년 중국 쿤밍의 작은 카페에서 뉴스를 보던 나는 낙엽이 떨어질 때 들리는 낮은 마찰음 같은 질문을 떠올렸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위해 한 사람의 30년 전을 다시 끌어올리고 있는가?"

1. 왜 하필 지금, 왜 하필 그였을까?

조진웅은 갈등의 한복판에 서 있던 인물도,

권력과 밀접한 이해관계를 가진 인물도 아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그는 배우로서 꾸준히 일했다.

그럼에도 그의 이름은 어느 날 갑자기 낙인의 최전선으로 튀어올랐다.

이 돌발적 선택에는 단순한 우연 이상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근거 없던 커뮤니티 괴담의 재순환, 포털 알고리즘과 언론의 클릭 경쟁, 사회적·정치적 시선 분산의 필요.

이 세 갈래가 교차하며 그를 '예상 밖의 희생양'으로 만들어냈다.

2. 잊히도록 설계된 제도, 다시 상처가 되다.

소년사법 제도는 누군가의 과거가 평생의 족쇄가 되지 않도록 고안된 장치였다.

소년원에 '학교'라는 이름을 붙인 까닭도, 전과 기록을 남기지 않기로 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그 제도의 뜻을 뒤집었다.

잊혀야 할 기록이 흥밋거리로 소비된 순간 그 기록은 영구적 낙인이 되고, 봉합되었던 상처는 다시 갈라졌다.

그 과정에서 공익은 사라졌고, 남은 것은 오래전의 그림자 위에 새로 찍힌 얼룩뿐이다.

3. 사람은 '그때'가 아니라 '그 이후'의 시간으로 완성된다.

사람의 삶을 완성시키는 것은 한때의 실수가 아니라 그 뒤로 어떻게 살아왔는가이다.

조진웅은 불안했던 청소년기를 지나 스스로를 다시 세웠고, 수십 년의 시간 동안 묵묵히 작품 세계를 쌓아 왔다.

그의 연기는 상처의 흔적보다, 그 위에 덧칠해 온 회복의 시간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지금 누군가는 그가 일군 오랜 시간 대신 철부지 시절의 한 장면만을 붙잡고 흔든다.

그 선택이 공정한가, 아니면 의도적인가?

그 질문은 여전히 대기 중에 떠 있다.

4. 언론은 언제 흉기가 되는가?

언론은 이번 사건을 통해 불편한 질문 하나와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왜 이 시점에, 이 사람을, 이 방식으로 보도한 것인가?'

그 질문을 피해간 채 알고리즘이 던져준 '핫 링크'를 그대로 베껴 쓰는 순간, 언론은 공기가 아니라 칼날이 된다.

누가, 어떤 경위로, 왜 이 정보를 들고 나왔는지, 그 최소한의 투명성마저 부재한 보도는 '알권리'가 아니라 '명예살인'의 구조로 귀결된다.

어떤 시기에는 내란으로 인한 기득권 카르텔의 균열을 덮기 위해 엉뚱한 사람을 최대한 크게 흔들어 놓는 일들이 벌어진다.

우리는 이미 익숙하지 않은가?

비슷한 방식이 반복되는 것을.

5. 오래된 상식, 그리고 우리가 잃어가는 것들

조진웅이 "질책을 겸허히 수용하고, 오늘부로 모든 활동을 중단, 배우의 길에 마침표를 찍으려 한다"라고 은퇴의 변을 밝힌 순간, 많은 이들이 이유 없이 마음이 무거워진 것은 그의 유명세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삶 그 자체가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가르치고자 했던 상식, "사람은 누구나 넘어질 수 있고, 그러나 넘어짐으로 재단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상식을 무너뜨리는 사회는 어떤 미래를 가질 수 있을까?

논어의 오래된 문장 하나가 다시 떠오른다.

人非聖賢,孰能無過.

過而能改,善莫大焉.

(사람은 성현이 아니니, 누가 잘못이 없을 수 있겠는가?

잘못이 있더라도 고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선(善)은 없다.)

낙엽은 떨어진 뒤에도 흙 속에서 분해되어 나무의 양분이 된다.

사람 또한 그러하다.

과거가 재소환되어 상처가 될 때가 있어도, 그 위에 쌓아온 시간들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초겨울 바람에 흔들리며 금빛으로 숙성한 잎처럼, 조진웅의 삶이 보여준 것은 '넘어짐'이 아니라 긴 '일어섬'의 서사였다.

그리고 우리가 다시 꿈꾸어야 할 사회는, 낙인이 아니라 회복을 기억하는 공동체, 흔들렸던 시간보다 일어섰던 시간을 바라보는 공동체, 바로 그런 사회가 아닐까?

▲조진웅 배우.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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