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한번 정치인은 영원한 정치인’이라는 말이 있다. 여의도에 발을 디딘 이상 자의든 타의든 담벼락에 이름을 남기기 때문이다. 떠난 모두가 금의환향하지는 못하는 법. 한때 여의도에서 이름을 날렸지만 어느 순간 사라진 정치인들의 근황을 <일요시사>가 모아봤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당시 전면에서 활약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안민석 전 의원은 경기도 교육감 출마를 위한 채비를 마쳤다. 교육감 출마를 공식적으로 선언하지 않았지만, 현직인 임태희 경기도 교육감과 강하게 대립각을 세우는 등 출사표를 던지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찾아온 기회
2014년 당시 3선이었던 안 전 의원은 국정 농단 정국에서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정유라(개명 전 정유연) 모녀 등에 대한 비리를 연달아 폭로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통하는 정모씨의 딸이 승마 국가대표로 선발돼 특혜를 누린다는 제보가 있다”며 ‘승마 공주’ 의혹을 처음으로 제기한 것이다.
2016년에는 최순실 게이트 사태의 핵심인 최씨의 조카 장시호(개명 전 장유진)씨에 대한 폭로를 이어가며 ‘장시호 저격수’로 재활약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크게 힘을 보태 경기도 오산에서 내리 5선을 지낸 안 전 의원은 지난해 4·10 총선을 앞두고 돌연 불출마를 선언했다. 지역구였던 오산이 전략 지역으로 선정돼 사실상 당에서 공천 배제(컷오프)가 결정된 것이다.
당시 안 전 의원은 입장문을 통해 “독배를 삼키는 심정으로 당의 결정을 수용한다”면서도 “저 안민석이 도덕적, 사법적 흠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압승할 자신이 있는데 전략공천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여의도를 떠난 안 전 의원은 지난 조기 대선에서 이재명 당시 후보의 직속 기구인 미래교육자치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서울대 사범대학 체육 교육과를 졸업하고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활동하는 등 꾸준히 교육권에 관심을 쏟아온 만큼 이재명정부의 교육정책을 이끌 적임자라는 판단에서다.
최근에는 ‘경기 미래교육 자치포럼’ 공동대표를 맡자 내년 지방선거에서 실시될 경기도 교육감 선거를 위한 초석이라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안 전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AI 시대에 교육이 대한민국의 흥망을 좌우한다고 생각한다”며 AI 교육대 전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난 5일 남부권을 시작으로 오는 17일까지 진행되는 ‘경기형 AI 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 소식을 알리기도 했다.
그의 발목을 잡은 건 다름 아닌 10년 전 국정 농단 정국에서 제기한 ‘최순실 스위스 계좌’ 의혹이다. 최순실씨가 안 전 의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파기환송심에서 지난달 21일 법원이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린 것이다.
그러자 안 전 의원은 “진실을 밝히기 위한 표현의 자유를 위법하다고 판결한 것은 유감”이라며 재상고 의지를 밝혔다.
‘최순실 저격수’ 안 ‘BBK 저격수’ 정
지난 총선 이후 날아간 민주당 전사들
최순실 저격수 이전에는 ‘BBK 저격수’인 민주당 정봉주 전 의원이 있었다. 비록 중앙 정치를 떠났지만 유튜브를 통해 꾸준히 지지층과 소통하는 등 여의도 언저리에서 머물고 있다.
앞서 정 전 의원은 4·10 총선 당시 서울 강북을 공천 받았으나 ‘DMZ 목발 경품’ 발언 등으로 공천이 취소됐다. 이후 4개월 만에 치러진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 후보로 나서서 ‘이재명 견제구’를 던지며 ‘원외 돌풍’을 일으켰지만 이틀 만에 2위에서 6위로 급락했다.
김민석 최고위원 후보를 1위로 올리기 위해 이재명 당시 당 대표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뒷말이 나오면서 ‘개딸’의 조직적 움직임이냐 아니냐를 두고 장기간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고독한 싸움을 뒤로한 정 전 의원은 개인 유튜브 채널인 ‘정봉주TV’를 통해 정치 해설가로 활동 중이다. 구독자 35만명을 보유한 정 전 의원은 핵잠수함 건조부터 윤석열 부부의 내란 재판 등 폭 넓은 정치·시사를 다루고 있다.
정 전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11~13일 즈음에 (유튜브 활동을) 잠시 멈출 것”이라고 알렸다. 그의 정치 생명이 오는 11일 예정된 대법원 확정 판결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앞서 정 전 의원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내 여론조사 결과를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왜곡 공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1심 결론이 유지될 경우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보수 진영에서는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의 행보가 주목된다. ‘따뜻한 보수’를 지향하는 유 전 의원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때 탈당해 바른정당 창당을 주도했다. 이 과정에서 보수 지지층으로부터 배신자 프레임이 굳어졌고, 19대 대선에서 바른정당 후보로 나섰지만 결국 패배했다.
이후 총선·대선 등 각종 선거 국면에서 하마평에 올랐음에도 좀처럼 응하지 않았다. 지난 9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 “보수 대통령이 연속 탄핵을 당했음에도 당은 제대로 된 반성과 변화의 길을 거부하고 있다”며 경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런 유 전 의원의 내년 6월 지방선거 출마 여부가 주목된다. 정권 교체 1년 만에 치러지는 선거인 데다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수도권에서 중도 표심을 끌어올 보수 후보가 마땅치 않아 ‘온건 보수’인 유 전 의원의 출마가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란 기대에서다.
“지금이 기회인데” 딸에게 발목 잡힌 유
특검 부담? 잠잠한 ‘윤 호위무사’ 원
유 전 의원 역시 지난달 한 대학 강연에서 “정치를 그만두지 않았다. 정치를 열심히 했던 만큼 결실을 보고 싶다”며 정치 복귀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이와 관련해 한 여권 관계자는 “유 전 의원은 인품도, 정치력도 다 갖췄지만 누군가가 자기를 불러주기만 기다리는 성격”이라며 “무언가를 이루려면 밑에서 떠받쳐주기 전에 한발 앞서는 용기도 필요한데, 매번 러브콜만 기다리다 기회를 빼앗기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아울러 유 전 의원의 딸인 유담씨의 인천대 교수 특혜 논란을 짚으며 “중도층에 어필하기 위해서는 이 부분을 해소하고 가야 할 것”이라고도 조언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호위무사를 자처했던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대선 불출마 선언 뒤 아예 자취를 감췄다. 2023년 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의혹 당시 사업을 전면 백지화하면서 ‘김건희 의혹’과 얽힌 만큼 수사의 가지가 원 전 장관에게까지 향할지 주목된다.
4·10 총선에서 인천 계양을에 출사표를 던진 원 전 장관은 축구 국가대표 출신 이천수 선수를 캠프로 영입해 이목을 끌었다. 계양을 재선에 나선 이재명 당시 후보와 호기롭게 붙었지만 45.9%를 득표하며 이 후보(53.67%)에게 패배했다.
두 달 뒤에는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에 도전하기도 했다. 양평고속도로 의혹을 온몸으로 막아냈던 만큼 ‘윤심(윤석열 전 대통령의 의중)’을 등에 업었음에도 한동훈 후보에게 밀려 역시 2위에 그쳤다.
정권이 바뀐 뒤에는 돌연 계양을 당협위원장직을 사퇴했다. 내년 지선에서 공석인 계양을에 출마 가능성이 점쳐졌지만, 김건희 특검을 수사 중인 민중기 특별검사팀의 압수수색 영장에 원 전 장관이 피의자로 적시되는 등 특검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아 부담을 느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차라리 가만히
지난 2일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의혹과 관련해 국토교통부 핵심 간부를 소환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검 수사 기간은 이달 28일까지로 원 전 장관에 대한 조사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양평고속도로 의혹과 관련해 “장관직을 걸 뿐만 아니라 정치 생명을 걸겠다”고 호언장담한 원 전 장관의 소환 여부가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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