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와 러시아가 북극 전략 협력을 전례 없이 확대하며 군사·해운 분야에서 새로운 지경을 열고 있다.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12월 5일자 보도에서 모디 인도 총리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극 회랑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군사 협정을 체결했으며, 이를 통해 인도가 러시아 북극 연안의 해군 항구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인도 선원들에게 극지 해역 운항 훈련까지 제공하며 북극 지역에서의 전략적 연대를 강화할 방침이다. 이는 푸틴 대통령의 이틀간 국빈 방문 중 공식화된 내용으로, 양국은 북방해 항로, 국제 남북 운송 회랑, 첸나이–블라디보스토크 해상 회랑 등에서 협력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협정은 러시아 국가 두마가 ‘상호 후방 지원 협정’을 승인한 데 따른 것으로, 인도가 무르만스크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어지는 북방해 항로(NSR) 내 러시아 해군 항구를 이용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
지난 십여 년 동안 양국 전략가들이 북극 항로 개발을 위해 구축해온 협력 프레임워크가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북극 빙하가 빠르게 녹으며 항해 가능 기간이 늘어나는 가운데, 러시아는 서방의 접근을 제한하고 북극 해상권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콜라 반도에는 러시아 북방 함대와 일부 핵 전력이 배치돼 있으며, 북극은 향후 러시아의 전략적 중추지로 간주되고 있다.
인도 입장에서는 미국의 압력에 구애받지 않고 독자적 전략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호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인도 정부 관계자들은 수에즈 운하에 의존하지 않는 대체 항로 확보가 장기적으로 공급망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특히 북방해 항로를 이용할 경우 북유럽과 인도·태평양 지역을 잇는 해운 거리가 최대 40%까지 단축돼 지정학적 리스크가 높은 현 글로벌 해상 물류 구조에 새로운 대안을 제공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편 블룸버그는 12월 4일 보도에서 인도가 러시아로부터 핵추진 공격잠수함 한 척을 약 20억 달러에 임대하기로 최종 합의했다고 전했다. 이 협정은 10년 동안 가격 문제 등으로 교착 상태에 있었으나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돌파구를 마련했다. 인도는 해당 잠수함을 2년 이내 인수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복잡한 기술 절차로 인해 일정이 다소 늦춰질 가능성도 있다. 인도 정부는 이 계약이 사실상 2019년 3월 이미 체결되었으며, 현재 잠수함은 2028년 인도 해군에 인도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잠수함 임대는 인도가 독자적인 핵추진 잠수함 전력을 구축하기 위한 기술·운용 능력 축적 차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임대한 잠수함은 전투 운용에 사용될 수 없지만, 인도 해군이 핵잠수함 승조원 훈련과 운영 역량을 쌓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미국의 ‘핵 위협 이니셔티브(NTI)’도 인도가 이미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개발해 육·해·공 삼위일체 핵능력을 갖추는 단계로 진입했다고 평가한 바 있다. 핵추진 함정은 디젤 전기 잠수함보다 크고 조용하며 장시간 잠항이 가능해 인도양과 태평양의 광범위한 해역에서 감시·순찰 임무를 수행하는 데 유리하다.
최근 모디 총리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인도 상품 50% 징벌적 관세 부과 이후 러시아와의 협력 강화를 공개적으로 추진하며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하고 있다. 인도 국방부 장관 싱은 자국의 국방 제조업 육성 의지를 재확인했으며, 러시아 국방부 장관 벨로우소프 역시 “국방 생산 분야에서 인도의 자립을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군사·해운 협력 확대가 단순한 항구 사용권을 넘어 인도가 북극 전략에 본격적으로 참여하는 신호탄이라고 평가한다. 러시아가 서방 제재로 유럽 기업들의 철수를 경험한 이후 아시아 국가들과의 북극 협력을 적극 추진해 온 상황에서, 인도의 가세는 향후 북극 지역의 지정학적 판도를 흔들 중요한 변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최규현 기자 kh.choi@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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