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이재훈 대표기자] 대한민국 호(號)의 선장이 바뀐 지 정확히 6개월이 흘렀다. "국민이 승리했습니다"를 외치며 2025년 6월 4일 용산 대통령실에 입성한 이재명 대통령의 지난 180일은 그야말로 '숨 가쁜 질주'였다. 역대 어느 정부보다 빠른 국가 정상화와 현장 중심의 행정은 국민들에게 '효능감'을 주었지만, 정치권 갈등과 사법리스크 논란은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은 지난 7일 "대통령실 1시간은 5200만 시간의 무게를 가진다는 마음가짐으로 187일, 4488시간 동안 국민의 일상회복과 국가 정상화에 전력투구했다"고 자평했다. 본지는 이재명 정부 출범 6개월을 맞아 정치·경제·외교 전반의 명암(明暗)을 심층 분석했다.
■혼돈에서 정상으로… 6개월 만의 '국가 재가동'
이재명 정부 6개월의 가장 큰 성과는 단연 '내란 이후 정상화의 속도'다.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6개월간 정치적 마비 상태에 빠졌던 대한민국은 이재명 정부 출범과 함께 빠르게 일상을 회복했다. 취임 직후 설치한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는 곧바로 민생회생 추경을 편성·집행했다. 코스피는 4000선을 돌파했고, 사상 최초로 연간 수출 7000억 달러 돌파가 가시권에 들어왔다. 계엄 사태로 국제 신용등급 하락 위기까지 거론되던 상황에서 불과 6개월 만에 경제 회복 신호를 보낸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지역 상권 활성화를 위해 모든 국민에게 1조 원 상당의 현금소비쿠폰을 소득에 따라 15만 원에서 45만 원까지 차등 배분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실질적인 매출 방어에 도움이 됐다"며 환영했다. 서울 종로구에서 중식당을 운영하는 김모(54)씨는 "소비쿠폰 덕분에 단골 손님들이 더 자주 찾아와 매출이 15% 정도 늘었다"고 말했다.
■AI 강국 도약 기반 마련
특히 AI 반도체 분야에서 가시적 성과를 냈다. 정부는 과학기술 예산을 20% 가까이 증액하며 향후 5년간 715억 달러를 투자해 한국을 세계 3대 인공지능 강국으로 도약시키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GPU 26만 장을 확보했고, 지난 7월에는 테슬라가 삼성전자의 텍사스 신규 반도체 파운드리에서 인공지능 칩을 생산하는 내용으로 165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하는 성과도 거뒀다. 업계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 말기 계엄 사태로 외국 기업들이 한국 투자를 꺼리던 분위기를 단기간에 반전시킨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노동·복지 정책 신속 추진
노동계의 오랜 숙원인 '노란봉투법'을 정권 초기에 통과시켜 원청에 대한 하청의 교섭권을 합법화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산업재해 감소를 주요 국정과제로 잡고 근로감독관 2000명을 증원하는 등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다만 산재사고가 민간과 공공에서 잇따라 발생하며 정부의 군기잡기식 정책이 한계를 보인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한 노동 전문가는 "근로감독관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업 문화와 안전 의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타운홀 미팅으로 소통 강화
지역을 돌며 시민으로부터 직접 의견을 경청하는 타운홀 미팅 방식의 대국민 소통은 '일벌레 대통령' 이미지를 강화시켰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직무능력·유능함이 긍정평가 이유의 6%를 차지했다. 이 대통령은 강원 춘천, 부산, 광주 등 전국을 돌며 타운홀 미팅을 개최했고, 시민들의 애로사항을 현장에서 직접 듣고 해결책을 지시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한 참석자는 "대통령이 직접 우리 목소리를 듣고 메모까지 하는 모습에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 '코리아 이즈 백'… 외교 복원의 6개월
내란 사태 이후 중단됐던 외교 활동은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면서 재개됐다. 외교 정상화는 이재명 정부의 가장 빛나는 성과로 꼽힌다. 정부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가를 시작으로 국익을 최우선에 둔 '실용 외교'를 추진했다. 이 대통령은 워싱턴으로 향하는 길에 도쿄를 임기 첫 해외 순방지로 선택했으며, 17년 만에 발표한 한일 양국의 공동 성명에서 일본 총리와 '파트너로서'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외교 정상화의 흐름은 G7 회의 외에도 한미·한일 정상회담, UN 총회, 경주 APEC, 한중 정상회담, 중동·아프리카 순방, G20 및 믹타(MIKTA) 의장국 활동까지 이어졌다. APEC 직후 해외 주요 언론들은 "한국이 실용적 중견국 리더십을 보여줬다"고 보도했다.
한국갤럽 11월 4주차 조사에 따르면, 대통령 직무 긍정 평가 요인 1위로 '외교'가 꼽혔다. 최종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통령과 실무진 모두가 꼼꼼히 준비한 결과, '대한민국 외교가 복원됐다'는 신뢰를 쌓았다"고 평가했다.
■미·중·일 사이 실용 균형외교
이 대통령은 "우리는 새로운 세계 질서와 미국 중심의 공급망 속에서 미국과 함께 할 것이지만, 중국을 적대시하지 않도록 중국과의 관계도 잘 관리할 필요가 있다"며 "그렇지 않으면 한국이 두 진영 간 갈등의 최전선이 될 위험이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과는 협력 중심의 전략적 접근, 일본과는 투트랙 외교 노선을 유지하며 실용주의 중심의 균형 외교를 추진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이를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외교 행보로 평가하고 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7일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추진해 한반도 공존 프로세스를 본격화할 것"이라며 "페이스메이커로서 미국과 긴밀히 소통하고 남북 소통을 적극적으로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핵추진잠수함 건조 등 국방력 강화
안보 분야에서는 핵추진잠수함 건조 계획을 발표하며 강력한 국방력 구축 의지를 보였다. 정부는 "강력한 국방력으로 평화를 뒷받침하겠다"며 국방비 증액과 첨단 무기 체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미진한 부분, 사법리스크와 정치적 논란
그러나 '유능한 행정가'의 면모 뒤에는 정치적 논란이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다. 김준일 정치평론가(가톨릭평화방송 '김준일의 뉴스공감' 진행자)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에 큰 하락이 3번 있었다. 첫 번째는 8월 중순의 조국 대표 등 정치인 사면, 두 번째는 9월 말의 조희대 대법원장 청문회 등 사법부 압박, 세 번째는 11월 초순의 검찰 대장동 항소포기 외압 의혹이었다. 모두 정부여당이 직접적으로 연관된 사건이었다.
야당 대표 시절부터 지속된 사법리스크가 대통령이 되어서도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특히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등에 대한 사면 조치는 "법치주의를 훼손한다"는 야당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7월 말 63%였던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은 8월 중순 51%로 떨어졌다가, 외교 성과로 이전 최고치로 반등했다. 하지만 11월 대장동 논란으로 다시 하락세를 보이는 등 정치적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양상을 보였다.
■개성공단 사과 논란
이재명 정부는 2016년 개성공단 폐쇄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북한의 4차 핵 실험에 대응해 개성공단 가동을 중단했지만, 이재명 정부는 북한에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았다. 보수 진영은 "김정은 정권에 대한 숭배"라며 강하게 비판했고, 대북 정책을 둘러싼 이념 갈등이 재점화됐다. 야당은 "안보 불감증"이라며 맹비난했다.
■협치 없는 힘의 정치
협치를 얘기하며 야당 대표를 직접 만났지만, 입법부와 행정부를 모두 장악한 강력한 이재명 정부의 선택은 대화보다는 힘의 정치였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정치권 관계자는 "성남·경기 시절 독주 경영에 익숙한 이 대통령이 국회라는 제약을 답답해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대통령제 민주주의에서 국회 무시는 결국 본인에게 부메랑이 된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규제 논란과 외교 리스크
2025년 6월 27일 금융위원회 주도로 부동산 대출 규제 정책이 전격 발표됐다. 수도권, 규제 지역 내 주택 구입 목적의 주택담보대출 최대한도를 6억 원으로 제한하고, 단 하루 만에 시행하여 이른바 막차 수요까지 원천 차단했다. 주택 구입 목적으로 주담대를 받은 경우 6개월 이내 전입해야 하며, 이를 위반하면 대출 회수는 물론 3년 동안 대출이 불가능하다. 갭 투자를 금지하기 위한 정책으로 실거주 목적이 아닌 주담대도 사실상 금지됐다. 그러나 이주비 대출 규제로 인해 재건축·재개발이 막혀 대선 공약 후퇴라는 비판이 나왔다. '금융위원회의 이주비 대출규제 정책에 대한 전면 재검토 요청' 국회 청원이 공개 나흘 만에 1만 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대선 공약으로 재건축·재개발 활성화하겠다고 했는데, 규제로 인해 오히려 정반대로 가고 있어 현장에서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ICE 한국인 체포 사태
지난 9월 4일 조지아 주에 위치한 현대자동차-LG 자동차 배터리 공장에서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들이 300명이 넘는 한국인 근로자를 체포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재명 정부의 외교부는 "우려와 유감"을 표명했지만, 미국이 여전히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미국에 지나치게 기울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지지율 추이와 국민 평가
한국갤럽의 역대 대통령 취임 첫 직무수행 평가를 비교해보면, 이재명 대통령은 긍정 평가 64%로 민주화 이후 대통령 중 4위를 기록했다. 앞에는 문재인(84%), 김영삼·김대중(71%) 대통령이 있고, 뒤로는 노무현(60%), 이명박·윤석열(52%), 박근혜(44%), 노태우(29%) 대통령이 있었다. 6개월 평가는 긍정 평가 60%로, 김영삼(83%), 문재인(73%)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박근혜(59%), 김대중(56%), 노태우(53%)보다 높았고, 윤석열(30%), 노무현(29%), 이명박(24%)보다 훨씬 높았다. 항소포기 논란의 경우 여론이 매우 안 좋았지만 외교 분야에서의 성과로 만회했다. 지난 6개월간 국민들이 이재명 정부의 국정에 대체로 만족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정상화를 넘어 통합으로
이재명 대통령은 11월 27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숨겨진 내란 어둠을 온전히 밝혀 정의로운 국민통합의 문을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준일 정치평론가는 "공교롭게도 12월 3일은 12.3 비상계엄 1주년이자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취임 100일이 되는 날"이라며 "윤어게인 세력과 절연하지 못하는 제1야당 국민의힘 지지율이 높지 않은 것이 정부여당에게는 반사이익일 수 있지만, 정부는 반대하는 국민의 목소리도 경청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내란청산을 넘어 갈등완화, 그리고 국민통합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가 내년 지방선거 전후로 판가름이 날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 정책의 지속 가능성
과학기술 예산을 20% 가까이 증액하며 '초혁신 경제' 창출로 반전을 꾀하고 있지만, 재정 건전성과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 있다. 한 경제 전문가는 "단기적 경기 부양책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며 "특히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재정 지출을 늘리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부동산 정책의 경우 공급 확대와 규제의 적절한 조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급격한 규제 변화는 시장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다는 우려다.
■균형 외교의 정교화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실용 외교 노선은 줄타기 외교라는 비판과 국익 중심이라는 옹호가 엇갈린다. 미·중 사이에서 실용적 균형외교를 유지하는 것이 향후 최대 과제다.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추진하고 있지만, 북한의 도발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조건 없는 대화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튼튼한 한미 동맹 기반 위에서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낼 정교한 로드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속도는 있었다, 이제 방향을 재점검할 때
이재명 정부 출범 6개월은 '속도'에서는 합격점을, '방향'에서는 보완이 필요한 성적표를 받았다. 빠른 행정과 외교 복원은 호평받았지만, 정치적 갈등 증폭과 사법리스크는 향후 국정 운영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강훈식 비서실장은 "내란으로 무너진 일상을 빠르게 회복하고 다시 성장과 도약을 위한 출발점에 섰다"며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국제 정세는 여전히 불안전하고 우리 사회 내부에 켜켜이 쌓인 과제도 산적해 있다"고 말했다. 집권 1년 차는 모든 정부에게 '골든타임'이다. 이 시기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향후 4년의 성패가 갈린다. 이재명 대통령이 '유능한 불도저'에서 '통합하는 리더'로 거듭날 수 있을지, 대한민국 호의 향방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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