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 회피 목적으로 해외로 나가는 사례가 여전히 많다.
병역을 회피하기 위해 해외로 나간 뒤 정해진 기한에 귀국하지 않는 사례가 최근 5년 동안 900명 이상 발생한 가운데, 상당수가 실제 처벌 없이 장기간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과거 가수 스티브 유(유승준)가 병역 문제로 지금까지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사례와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아들 이지호 군이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해군 장교로 복무를 시작한 사례가 각각 대비되어 떠오르는 상황이다.
경기 파주시 문산읍 소재 인근 훈련장에서 육군 제1보병사단 필승대대 장병들이 '2025년 혹한기 훈련'의 일환으로 실시된 '공중강습작전'을 하고 있다. / 뉴스1
국외 체류를 이유로 한 병역 기피가 반복적으로 늘고 있지만, 현행 제도만으로는 실효성 있는 대응이 어렵다는 문제점이 확인된 상황이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황희 의원이 병무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올해 10월까지 병역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기피자는 총 3127명으로 집계됐다. 이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유형은 현역 입영 기피로 1232명이었고, 이어 국외여행 허가 의무 위반 912명, 병역판정검사 기피 586명, 사회복무 소집 기피 397명 순이었다.
병역법에 따르면 병역의무를 마치지 않은 25세 이상은 반드시 병무청의 국외여행 허가를 받아야 출국이 가능하며, 허가 기간 내 귀국이 어렵다면 15일 전까지 연장 신청을 해야 한다. 24세 이전 출국 후 25세가 지나 계속 해외에 체류하는 경우에도 재외공관을 통해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국외여행 허가 규정을 위반하는 사례는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위반자는 2021년 158명에서 2022년 185명, 2023년 196명으로 늘었고 올해 10월까지 다시 176명이 확인됐다.
경 파주시 문산읍 소재 인근 훈련장에서 '2025년 혹한기 훈련'의 일환으로 실시된 '대량 전상자 처치 훈련'에 참가한 육군 제1보병사단 장병들이 부상병을 옮기고 있다. / 뉴스1
이 가운데 648명은 단기여행 목적이라고 신고한 뒤 정해진 기간을 넘겨 귀국하지 않은 경우였고, 대부분이 현재까지 정상적인 수사 절차에 돌입하지 못한 상태다. 국외여행 허가 위반자 912명 중 실제 형사처분이 끝난 사례는 징역 6명, 집행유예 17명, 기소유예 25명 등 총 48명뿐이었다. 전체의 5.2%에 그치는 수치로, 나머지 780명은 기소중지나 수사 중단 상태로 남아 있다.
해외 체류 중인 본인이 입국해야만 조사가 가능하다는 구조적 한계로 인해 사실상 법적 제재가 미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병무청은 위반자와 국내 가족에게 연락을 취하고 여권을 무효화하는 조치를 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실질적인 처벌로 이어지지 않는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 병역을 기피한 사람들은 61.2%가 징역 또는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국내 기피와 해외 체류 기반의 기피 사이 처벌 강도의 차이가 큰 만큼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황희 의원은 병역 의무를 피하기 위해 해외 체류를 선택하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외교부와 법무부, 병무청이 협력해 범정부적 대응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56사단 장병들이 혹한기 훈련 중 적의 침투를 저지하기 위한 중요시설물 방호훈련을 하고 있다. / 뉴스1
전문가들은 국외여행 허가 위반 유형이 매년 증가하는 배경으로 적발의 어려움과 느슨한 집행 구조를 함께 지적한다. 해외 체류자에 대한 강제력은 각국의 법제나 사법 협력 여부에 따라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 국내에서의 통지나 여권 제한만으로는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출입국 정보 공유를 강화하고 조기 모니터링 체계를 정비하는 등의 정책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또한 병역 의무 이행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커지는 만큼 병역 기피 후 장기간 해외 체류를 선택할 경우 명확한 불이익을 체계적으로 고지하는 방식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해외 체류형 병역 기피가 실질적 제재 없이 누적되고 있는 상황은 병역 제도의 공정성과 신뢰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병역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키우는 것은 물론, 향후 기피 시도자에게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따른다.
병역 의무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정하게 이행해야 하는 기본 규범인 만큼,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는 구체적인 후속 조치가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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