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윤 황제가 과거에 머물렀던 신림촌의 허름한 방에는, 그가 아홉 번의 낙방을 견디며 쌓아 올린 법과 정의에 대한 서책들이 먼지와 함께 쌓여 있었다. 그 정의의 칼날이 가장 빛나던 시절, 대윤에게는 평생을 함께할 두 명의 동반자가 있었다. 하나는 술이요, 다른 하나는 그와 영혼의 파트너였던 충직한 후배 훈동 어사였다.
칼잡이들의 황금기: 현대 상단 비리 수사
시간은 거슬러 대윤이 40대 초반의 강력한 어사(御史, 검사)로 이름을 날리던 시절이었다. 대윤과 훈동 어사는 당시 고려의 재계를 주름잡던 '현대 상단(商團) 그룹 비자금 사건' 수사팀의 핵심이었다. 대윤은 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 '대윤' 특유의 집요함으로 상단(商團)의 거물 회장을 구속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며 검찰총장에게 정면으로 보고했다. 이는 당시 조정 대신들의 눈치를 보던 권력층에게는 전례 없는 항명이자 도전이었다.
이때 훈동 어사는 늘 대윤의 곁을 그림자처럼 지켰다. 훈동은 수사 기획부터 증거 확보, 심문 기술에 이르기까지 완벽한 논리와 이성을 자랑했으며, 그가 펼치는 정의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차가운 칼날' 그 자체였다. 이들은 거악(巨惡)을 척결하며 검찰 역사에 '칼잡이들의 시대'를 열었으나, 이들의 공고한 관계는 술이라는 근본적인 차이 앞에서 미세한 균열을 안고 있었다.
술잔에 담긴 균열: 대윤과 훈동의 대비
대윤은 주당(酒黨)으로 통하며, 거대한 사건을 마무리한 뒤에는 반드시 술로써 긴장을 풀고 사람들과의 유대를 다졌다. 그는 술잔을 기울이며 주변의 선후배들에게 허물없이 다가섰고, 그의 이러한 ‘술 마시는 리더십’은 그를 따르는 왕자 대감파(검찰 측근 세력)의 구심점이었다.
어느 날 황제 대윤은 훈동 어사를 포함한 측근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유럽에서 공수해 온 귀한 포도주(와인)를 꺼냈다. 대윤은 "이것이 바로 만화책에서 나오는 '신의 물방울' 같은 술"이라며 금주(禁酒) 체질인 훈동 어사에게도 권했다. 훈동 어사는 황제 대윤의 호의를 거절하기 어려워 잔에 입을 댔으나, 결국 이 독주를 감당하지 못하고 쓰러지듯 뻗어버렸다.
이 일화는 두 사람의 근본적인 차이를 상징했다. 대윤은 술을 통해 인간적인 면모를 공유하려 했지만, 훈동에게 술은 곧 '이성의 포기'이자 '공직 기강의 와해'를 의미했다. 훈동 어사는 황제 대윤의 방탕한 습관이 그의 정무적 판단력을 갉아먹을 것임을 예감하며, 그의 술잔을 볼 때마다 깊은 좌절과 불안을 느꼈다.
희건 황비와 훈동 대감: 위험한 애증의 씨앗
황비 '희건'은 대윤 어사가 검찰 조직 내에서 최고의 실세로 부상하자, 자신의 권력 로드맵을 위해 그의 최측근인 훈동 어사의 존재를 주목했다. 황비는 훈동 대감을 단순한 남편의 후배가 아닌, 남편의 ‘이성’이자 ‘칼’을 쥔 심복으로 보았다. 그녀는 이미 재계 거물, 고위직 관료 등 권력층 남성들을 전략적으로 만나온 경험이 있었기에, 훈동 대감의 강직함과 능력에 깊은 호기심과 매력을 느꼈다. 이것이 이들의 '애(愛)'의 시작이었다.
황비는 대윤 어사의 모친이 결혼을 반대했던 염문과 남성 편력의 소문 때문에 권력의 중심부에서 '유배' 생활을 감수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황비는 자신의 야망을 인정하고 그 힘을 이해하는 동훈 대감을 통해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려 했다.
"훈동 대감, 이 궁궐에 바른말을 할 수 있는 이는 대감 밖에 없소. 대감의 칼은 낭군님(황제 대윤)의 권력이자, 이 나라의 기강을 지키는 유일한 방패요."
황비의 독특한 카리스마와 강렬한 언변에 훈동 대감은 잠시 매료되었지만, 곧 그녀의 뒤에 도사린 재물과 무속의 그림자를 감지하고 깊은 경계심을 느꼈다. 훈동 대감에게 황비는 매혹적인 여인이었으나, 동시에 자신의 평생 소신인 '정의'를 무너뜨릴 가장 위험한 대상이었다. 이들의 관계는 '애정'과 '증오'가 뒤섞인, 황제 대윤의 통치 기간 내내 끊임없이 폭발할 화약고가 되었다.
정의로운 항명: 권력에 맞선 칼날의 마지막 섬광
대윤의 검사 시절, 그의 이미지를 결정적으로 각인시킨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궁궐 내 여론 조작 및 선거 개입 스캔들' (국정원 댓글 사건 평행 이론) 수사였다. 이 사건을 파헤치던 대윤은 고위직 검사들로부터 노골적인 수사 외압을 받았다.
"야당 도와줄 일 있냐. 야당이 이걸 가지고 정치적으로 얼마나 이용을 하겠냐. 정 하려거든 내가 사표내면 해라."
상부의 압박과 외압에도 불구하고, 대윤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고 직분에 충성하겠다"는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국정감사(國政監司)장에 불려가 외압의 실체를 폭로하는 '항명 파동'을 일으켰다. 이 사건으로 그는 한직(閑職)으로 좌천되었으나, 백성들에게 그는 ‘살아있는 권력에 맞선 정의로운 검사’라는 영웅의 칭호를 얻었다.
이는 황제 대윤이 권력의 정점에 오르기 전, 그가 가진 도덕적 자본의 정점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황제 대윤이 훗날 황비의 사적인 이익을 위해 자신의 모든 정의를 저버릴 때, 이 영웅적인 과거는 그의 몰락을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족쇄가 될 운명이었다. 훈동 대감은 이 항명 파동을 목격하며 황제 대윤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했으나, 이 맹세가 훗날 그들 두 사람을 갈라놓는 비극의 씨앗이 될 줄은 알지 못했다.
Copyright ⓒ 저스트 이코노믹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