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관으로 입법예고 ·발의된 주요 법안들이 재정·세제·투자·공공조달의 틀을 한꺼번에 건드리고 있다. 종합부동산세를 없애고 토지세와 ‘토지배당’을 도입하는 안, 한·미 양해각서를 법률로 받쳐줄 한미전략투자공사 설립 특별법, 연구개발 특구·국가전략기술·지방대학을 엮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들, 중대재해를 일으킨 업체의 국가입찰 제한 강화, 한국투자공사(KIC)의 국내투자 허용 범위 조정까지 한꺼번에 쌓였다. 토지와 세금, 국부와 외환, 안전과 공공조달, 혁신과 지방대학이라는 서로 다른 축이 기재위 테이블 위에서 동시에 재배열되고 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토지세 및 토지배당에 관한 법률안'은 종합부동산세법을 폐지하고, 토지 공시가격 합계액(사람·법인 단위)을 과세표준으로 하는 단일 토지세(세율 1%)를 신설하자는 내용이다. 토지세 세수 전액을 ‘토지배당특별회계’에 적립한 뒤, 대한민국 국민과 일정한 체류자격을 가진 외국인 실거주자에게 1인당 동일한 금액으로 현금 배당하도록 설계했다. 토지배당은 양도·담보·압류를 금지하고, 세금도 매기지 않으며, 기초생활보장법상 소득으로도 보지 않도록 규정했다.
과세 구조만 보면, 고가 토지·주택 보유자의 세부담을 토지세로 집중시키는 대신, 그 세수를 국민 전체에 나눠주는 ‘고부동산→국민재분배’ 구조다. 종부세가 “징벌적 세금”이라는 정치적 공격을 반복적으로 받았던 것과 달리, 토지세는 납부와 동시에 ‘국민배당’이라는 형식으로 되돌려 주겠다는 발상이다.
다만, 종부세 폐지와 함께 지방세(재산세)·국세(토지세) 구조를 새로 짜야 하고, 토지세율(1%)의 수준과 시장 충격, 기존 보유세와의 중복 문제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정치·행정 비용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토지에만 과세를 집중하면 건물 가치 비중이 큰 상업지역·고층주거 단지와, 토지 비중이 큰 저밀도 주거·농지 간 형평 문제도 새로 부각될 수 있다. 제도 설계 단계에서 세수 안정성, 부동산 시장 영향, 복지 재원과의 관계를 동시에 잡아야 하는 복합 과제다.
김병기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한미 전략적 투자 관리를 위한 특별법안'은 11월 14일 한·미 양국이 서명한 ‘전략적 투자 양해각서’를 국내법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틀이다. 법안은 조선·반도체·의약품·핵심광물·에너지·AI·양자컴퓨팅 등 전략산업을 대상으로, 한국이 약정한 2000억 달러 대미투자와 조선 분야 1500억 달러 규모 승인투자(보증·선박금융 포함)를 ‘전략적투자’로 정의했다.
이를 위해 자본금 3조원을 가진 한미전략투자공사를 최대 20년 한시법인으로 설립하고, 공사가 운용하는 한미전략투자기금에 정부·한국은행·각종 기금이 자산을 위탁할 수 있도록 했다. 대미투자·조선협력투자 사업을 심의·의결하는 운영위원회, 상업적 합리성과 법적·전략적 요소를 따지는 사업관리위원회, 미국과 협의를 담당하는 한미 협의위원회 등 복층 구조도 법에 담겼다.
눈에 띄는 대목은 규제 특례다. 공사와 그가 출자한 법인·기금은 일정 범위에서 은행법·금융지배구조법·자본시장법·공공기관운영법의 적용을 받지 않고, 외국환거래법상 등록·신고도 의제받는다. 외국환평형기금·한국은행 자산까지 공사에 위탁할 수 있도록 길을 트면서, 외환·재정 자산의 일부를 한미 전략투자 프레임 안에 넣는 구조다.
한·미 전략동맹을 산업·투자 동맹으로 확장한다는 점에서는 대형 프로젝트다. 특히 조선협력투자 1500억달러는 한국 조선·해운·선박금융 생태계를 한 묶음으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반대로 보면, 대규모 외화투입과 규제 특례가 얽혀 있어 외환시장 안정, 재정 건전성, 공사 거버넌스에 대한 ‘안전판’을 어떻게 두느냐가 관건이다. 공사에 과도한 권한을 주고 견제장치가 허술하면, 정책·정무적 판단이 투자 의사결정에 개입할 여지도 적지 않다.
세제 부문에서는 연구개발특구·국가전략기술·지방대학을 축으로 한 조세특례법 개정안이 눈에 띈다. 이해민 의원안은 연구개발특구 입주 첨단기술기업·연구소기업에 주어지는 소득·법인세 감면 특례의 일몰(현행 2025년 12월 31일)을 2028년 말까지 3년 연장하는 동시에, 국가전략기술 육성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2028년 말까지 국가전략기술로 확인받은 기업도 특례 대상에 포함하는 내용이다.
연구개발특구를 플랫폼으로 삼아 반도체·배터리·방산·우주 등 국가전략기술 기업까지 세제지원 범위를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특구 내에서 일정 기간 발생한 소득에 대해 3년간 100%·그 다음 2년간 50% 감면하는 구조는 유지하면서, ‘누가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느냐’를 전략기술 중심으로 재정렬한다.
구자근 의원안은 지방대학과의 공동 연구개발에 초점을 맞췄다. 내국인이 연구개발을 위해 대학에 연구용역을 위탁하거나 공동연구를 할 때 세액공제를 해주는 현행 제도에,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상 지방대학과의 연구에 대해서는 비용의 10%를 추가로 공제하는 조항을 신설하는 내용이다.
결국 기재위 논의 테이블 위에는 “국가전략기술 기업을 어디까지 세금으로 지원할 것인가”, “지방대학을 R&D 파트너로 얼마나 끌어올릴 것인가”라는 두 축이 동시에 올라온 셈이다. 혁신투자 유인과 재정 여력, 수도권·지방 간 인재·연구 편차라는 현실 사이에서 균형점을 어떻게 잡느냐가 관전 포인트다.
김태년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중대재해와 공공조달을 직접 연결시키는 조항을 새로 넣었다. 계약 이행 과정에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위반해, 같은 법이 규정하는 중대산업재해(사망자 1명 이상) 를 발생시킨 업체를 부정당업자로 추가하고, 최대 2년까지 입찰참가 자격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기존에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2인 이상 사망자가 발생하면 부정당업자로 제재할 수 있었지만, 중대재해처벌법 기준(사망자 1인 이상)을 공공조달 영역에 반영해 제재 강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간 셈이다. 사실상 “중대재해를 일으킨 기업은 일정 기간 국가공사를 맡기기 어렵다”는 신호를 법에 새겨 넣겠다는 의미다.
다만, 형사재판 확정 전 단계에서 입찰제한이 어떻게 작동할지, 동일 그룹 내 계열사 간 책임 분리, 중소·하도급업체의 방어권 보장 등 세부설계를 둘러싼 논의는 불가피하다. 안전 책임을 강화하는 취지와, 공정한 경쟁·과잉제재 방지라는 원칙이 어디에서 만날지가 향후 쟁점이다.
김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한국투자공사법 개정안도 도 주목된다. 한국투자공사(KIC)는 정부·한국은행·공공기금 자산을 위탁받아 주로 해외에서 운용하는 국부펀드 역할을 맡고 있는데, 현행법은 ‘일시적으로 불가피한 경우’에만 위탁자산을 원화표시 자산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 부분을 손봐, “일시적으로 불가피한 경우 또는 위탁받은 자산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 이하의 자산”을 국내 원화표시 자산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폭을 넓혔다. 동시에 이미 폐지된 ‘정부투자기관 관리기본법’ 등 옛 법률명을 정리하고, 한국투자공사에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시해 법체계를 정비했다.
KIC 입장에서는 달러 중심 해외투자에 더해, 일정 부분 국내 자산도 전략적으로 담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국내 자본시장·장기 프로젝트 금융에 국부펀드 성격의 자금을 일부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동시에, 원래 “해외 분산투자”를 목표로 설립된 기관이 국내투자 비중을 키울 경우, 금융시장 안정과 정부 정책목표 사이에서 미세한 긴장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피하기 어렵다. 대통령령에서 어느 수준까지 비율을 허용할지, 운용 의사결정에 대한 투명성과 견제장치를 어떻게 둘지가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토지세·토지배당, 한미전략투자공사, 연구개발 세제, 중대재해와 공공조달, KIC 국내투자까지. 이번에 기획재정위원회 안건으로 오른 법률들은 표제만 보면 서로 다른 영역처럼 보이지만, 공통적으로 “돈이 어디서 걷혀 어디로 흘러가는가”라는 질문을 정면으로 다룬다.
토지세와 토지배당은 부동산 보유이익을 국민 배당으로 되돌리는 구조를, 한미 전략투자 특별법과 KIC법 개정안은 국부·외환자산을 전략산업과 동맹 구조에 어떻게 배치할지를 둘러싼 선택을 담고 있다. 연구개발·지방대학 세제는 미래 성장동력을 어디에 심을지에 대한 지도를, 중대재해 관련 계약법 개정은 “안전을 담보하지 못하는 기업에는 국가사업을 맡기기 어렵다”는 메시지를 동시에 싣고 있다.
입법이 확정되면 개별 법률을 넘어, 부동산·재정·외환·산업·안전 정책의 궤적도 함께 바뀐다. 기재위가 이번 논의에서 숫자와 조항만이 아니라, 그 뒤에 놓인 국가적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리해 내는지가 향후 몇 년간 대한민국 ‘돈의 설계도’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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