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가 급증하는 불법 비트코인 채굴에 대응하기 위해 전례 없는 강도의 단속 작전에 나섰다. 드론을 활용한 상공 감시부터 지상 전력 탐지 장비까지 총동원되며, 암호화폐 채굴자들과의 치열한 ‘고양이와 쥐 게임’이 이어지고 있다.
블룸버그의 12월 4일 보도에 따르면, 말레이시아의 주요 단속 지역 상공에는 드론이 상점과 빈집 위를 선회하며 정상적이지 않은 열원을 감지하고 있다. 이는 가동이 허가되지 않은 채굴 장비가 내는 열 신호를 추적하기 위한 것이다. 지상에서는 경찰이 휴대용 전력 감지기를 들고 비정상적인 전력 소비 패턴을 탐색하고 있으며, 일부 주민들이 “새소리 같다”고 신고한 기계음은 실제로 채굴 장비 소음을 감추기 위한 위장음으로 밝혀졌다.
이 같은 추적망을 피하기 위해 채굴자들은 점점 더 교묘한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인적이 드문 빈 상가나 무주택 건물로 장비를 옮기고, 열 차단 커버로 기계 열을 숨기며, 경보 시스템·CCTV·파손 감지 장치 등을 설치해 외부 침입을 막는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지난 5년 동안 1만 4천 개의 불법 채굴지를 적발했으며, 전력 절도로 인해 국영 에너지 기업 TNB가 입은 피해는 11억 달러에 달한다. 특히 2025년 들어 비트코인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채굴 관련 전력 절도는 더욱 급증해 올해 10월 초까지 이미 3,000건 이상이 신고되었다.
정부는 대응 수위를 한층 높였다. 11월 19일, 재무부·말레이시아 국립은행·국가에너지회사(TNB)가 참여하는 부처 간 특별위원회가 구성되었으며, 불법 채굴장 운영자에 대한 광범위한 단속 조치를 조율하기 시작했다. 위원장을 맡은 아크말 나시르 에너지·수자원 전환부 차관은 “이 문제는 단순한 도난이 아니라 국가 기반시설을 위협하는 수준”이라며 강력한 대응 필요성을 강조했다.
비트코인 채굴은 대규모 전력 소모가 필수인 고강도 계산 경쟁이다. 전 세계적으로 채굴에 사용하는 전력량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태국의 국가 전력 사용량을 넘어섰으며, 미국이 전체의 7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점유율은 정확히 파악되진 않지만, 2022년 기준 전 세계 해시레이트의 약 2.5%를 차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채굴자들은 사회적·경제적 공백 지역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말라카 해협을 내려다보는 ‘엘리엇 광장’ 상업지구는 팬데믹 이후 방치된 공간이었으나, 2022년 초 불법 채굴장으로 이용되기 시작했고, 운영 영상이 SNS에서 확산된 뒤에야 철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말레이시아는 정식 전력 공급 계약과 세금 납부가 이루어지는 경우 합법 채굴을 허용하고 있으나, 나시르 차관은 “합법 형태로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사례를 본 적이 없다”며 실효성에 회의적 입장을 드러냈다. 지난 11월 25일 열린 특별위원회 첫 회의에서는 아예 채굴 활동 전면 금지 가능성도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불법 채굴이 국가 에너지 손실과 인프라 리스크를 확대하는 가운데, 말레이시아 정부가 향후 어떤 강경 조치를 내놓을지 주목된다.
이창우 기사 cwlee@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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