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동아시아포럼(East Asia Forum) 웹사이트는 12월 1일 ‘아시아 기업들이 트럼프 무역 노선의 영향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제목의 분석 기사를 통해,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 관세’ 정책이 아시아·태평양 지역 기업들에 미친 충격과 이들이 채택하고 있는 대응 전략을 상세히 전했다. 해당 글은 싱가포르 유소프 이사 동남아시아 연구소의 선임 연구원 자얀트 메논의 연구 내용을 바탕으로 한다.
보도에 따르면 아시아·태평양 지역, 특히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지역이다. 미국 그리(Gree) 그룹이 2025년 7월 호주, 중국, 인도, 일본,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한국, 베트남 등 주요 국가의 기업 임원 300여 명을 조사한 결과, 아시아 기업들의 절반은 미국을 더 이상 핵심 시장으로 보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25% 이상의 기업은 제품 가격 인상, 구조조정, 생산 속도 조절 등 이미 사업 운영에 실질적인 조치를 취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변화는 트럼프의 임기 이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연구는 분석했다.
미국의 관세 정책은 글로벌 공급망과 기업들의 무역 전략에 광범위한 불확실성을 야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 불확실성이 일부 완화되면서 아시아 기업들의 조정 과정은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특히 동남아 지역 국내 생산자들에게는 경쟁 심화라는 부담을 안기고 있다. 중국 응답자의 66%는 미국 외 새로운 시장을 찾고 있다고 밝혔으며, 70% 이상은 아세안을 주요 대체 지역으로 꼽았다.
실제로 미국 ‘해방의 날’ 조치 이후 중국의 대미 수출이 급감했지만, 아세안 등 다른 지역으로의 수출은 오히려 증가세를 보였다. 다수의 국가 응답자들은 아세안과 중국이 소비재·식품·농산물의 핵심 대체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정책의 직접적인 목표가 아세안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호주·중국·인도 기업들이 아세안 기업보다 더 적극적으로 미국 시장 의존도를 줄이려 한다는 점도 이번 조사에서 확인됐다.
업종별로 보면 자동차 및 항공우주 산업에서 변화가 두드러진다. 응답 기업의 3분의 1 이상이 미국 외 지역으로 수출 전략을 전환했으며, 24%는 앞으로도 이 같은 기조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생산 거점 조정에서도 아세안은 가장 큰 수혜국으로 꼽힌다. 생산 전략을 수정 중인 기업의 절반 이상이 아세안을 제조 기반으로 선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트럼프 1기·바이든 정부를 거치며 누적된 관세 구조가 중국 대비 아세안의 상대적 관세 우위를 더욱 확대시킬 것이라는 기업들의 전망과도 맞물린다.
미국 시장 의존도가 낮아지는 가운데 각국 정부들도 정책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오랜 교착 끝에 유럽연합과 인도네시아가 ‘포괄적 경제 동반자 협정(CEPA)’을 체결한 것은 복잡한 국제 환경 속에서도 새로운 협력을 모색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나아가 EU-아세안 간 포괄적 무역 협정 추진이나 CPTPP 기반의 확장형 경제 블록 구상 등 다양한 협력 프레임이 논의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세계 무역 질서가 지속적으로 변동하고 미국의 무역 정책 또한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아시아 기업들은 미국의 최종 결정을 기다리기보다 스스로 새로운 생존 전략을 구축하고 있다. 미국 내 물가 상승, 재고 소진에 따른 관세품목 가격 인상 압력, 고용 둔화 등이 세계 경제의 위험 요인으로 부상하는 가운데, 아시아 기업들은 부채 증가, 인플레이션, 인구구조 변화, 기후 변화 등 복합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그럼에도 이번 조사는 아시아 수출기업들이 점점 더 미국 시장 의존도를 낮추고, 대체 시장과 새로운 기회를 적극적으로 발굴하며,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보다 대담하고 주도적인 전략을 선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차승민 기자 smcha@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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