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인구 고령화 따라 파크골프 유행이 전환점 될 가능성 높아
(서울=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한국 골퍼들은 왜 관광을 하지 않고 열흘 내내 골프만 치나요?"
최근 일본 이바라키현 오이가와 카즈히코 지사는 한국 미디어와 만난 자리에서 이러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114개의 골프 코스를 갖춘 이바라키현은 골프 관광 유치를 위해 꾸준히 공을 들여온 곳으로, 저비용항공사(LCC)의 인천 직항편 취항을 계기로 관광객 유치에 대한 기대가 높다.
그러나 실제 한국인 골퍼들은 자연경관이나 주변 관광지에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발언이 단순한 푸념인지, 아니면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골프 전문가들에게 물어봤다.
테라투어 심원보 대표는 "사실 10명 중 9명은 오로지 골프만 치러 간다"면서 "관광을 원한 경우는 거의 없다"고 토로했다.
관광 당국이 기대하는 '골프도 하고 관광도 하는 여행자'라는 모델은 시장의 실제 모습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뜻이다.
심 대표는 "지자체는 관광을 연계하고 싶어 하지만, 여행자들은 관광할 이유도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며 "목적이 너무 명확해서 다른 활동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의 설명은 실례로도 확인된다.
일본 규슈 지역의 한 리조트는 장기 체류 골퍼들을 위해 하루 일정의 관광 프로그램을 만들고 한국인 기사와 차량까지 붙여 3만∼5만원대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했지만, 참여자가 없어 프로그램을 접어야 했다고 한다.
대부분은 홀 이동 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으며, '골프하러 왔으면 골프를 해야지 왜 관광을 하느냐'는 인식이 너무 강하다는 것이 골프 전문 여행사의 반응이다.
목적형 레저 여행의 전형적 특성이라고 할 수 있지만, 관광을 통한 지역경제 확산을 기대하는 지자체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기도 하다.
골프투어가 지역경제에 미치는 효과 또한 지역 구조에 따라 명암이 크게 갈린다.
이바라키처럼 '골프텔' 중심의 지역에서는 숙박·식사·소비가 골프장 내부에 머무르면서 시내 상권으로의 파급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골프장에 숙박 시설이 없고, 골프장과 시내가 가까운 에히메현의 경우는 다소 다르다.
마쓰야마처럼 공항, 시내, 골프장이 자연스럽게 연결된 지역에서는 숙박을 시내에서 하고, 라운드 후 저녁을 식당가에서 해결하며, 온천이나 상점가를 연계해 소비가 도시 전체로 확산한다.
그러나 최근 한 가지 흥미로운 흐름이 관찰되고 있다.
한국 골프 소비층의 고령화다.
고령층 골퍼들은 체력 소모가 큰 정규 골프 대신, 부담이 적은 파크골프나 그라운드 골프로 이동하는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대한파크골프협회에 따르면 파크골프 이용자는 2020년 4만 명에서 현재 22만 명까지 5배 이상 증가했다.
새롭게 입문하는 시니어 골퍼가 늘면서 국내 시설, 대회, 동호회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변화가 해외 시장에도 움직임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파크골프 발상지 일본, 겨울 라운드가 가능한 동남아를 중심으로 골프 전문 여행사와 종합여행사가 파크골프 상품 출시를 이어가고 있다.
가장 앞선 곳이 모두투어다. 모두투어는 지난해 11월부터 파크골프 전용 상품을 본격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1년 만에 상품 수가 5배 이상 증가했다.
출시 이후 상반기 5개 단체를 유치했으며, 하반기에는 현재까지 모두 8개 단체가 출발을 확정 지은 상태다.
물론 아직 걸림돌은 있다.
파크골프 라운드 비용은 18홀에 1만원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많아 기존 해외 골프 패키지처럼 쇼핑·옵션을 붙여 수익을 뽑기가 어렵다.
하지만 단체로 움직인다는 점, 일정에 여유가 있다는 점, 체력 소모가 크지 않아 관광을 곁들일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파크골프야말로 '골프=관광 소멸'이라는 기존 공식을 일부 뒤집을 잠재력이 있다는 분석이 업계에서 나온다.
오상옥 골프저널 발행인은 "최근 파크골프 바람을 타고 일본과 동남아 등지로 현지 투어를 떠나는 인구가 확연히 늘었다"면서 "심지어 필리핀과 베트남도 파크골프장을 만들고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골프투어의 본질은 여전히 '목적형 여행'이다.
하지만 시니어 골퍼의 비중이 커지고 파크골프가 성장하면서, 일부 여행사는 관광·온천·미식·지역 체류형 프로그램과 결합한 파크골프 투어를 시험적으로 설계하기 시작했다.
전투적 소비 패턴으로 압축되는 기존 골프투어와 달리, 휴식과 자연 감상, 식도락, 지역 체험의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라운드 골프가 시작된 일본 돗토리현 관계자는 "지금까지의 골프 시장에서는 관광이 끼어들 틈이 거의 없었지만, 그라운드 골프나 파크 골프를 통해 관광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면서 "골퍼들의 고령화가 일본 지자체에는 하나의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polpo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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