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 40%가 '심각·우려' 등급, 사구 침식·해송 무너져
해수면 상승, 강한 태풍 일상화…정책 패러다임이 전환해야
[※ 편집자 주 = 기후 온난화는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습니다. 농산물과 수산물 지도가 변하고 있고, 해수면 상승으로 해수욕장은 문 닫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역대급 장마와 가뭄이 반복되면서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기도 합니다. '꽃 없는 꽃 축제', '얼음 없는 얼음 축제'라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생겨납니다. 이대로면 지금은 당연시하고 있는 것들이 미래에는 사라져 못 볼지도 모릅니다. 연합뉴스는 기후변화로 인한 격변의 현장을 최일선에서 살펴보고, 극복을 모색하는 기획 기사를 매주 송고합니다.]
(부산=연합뉴스) 차근호 기자 = 부드러운 모래와 완만한 경사, 얕은 수심에 가족 휴양지로 인기를 끄는 부산 송정해수욕장.
이곳은 1970년대만 해도 백사장 폭이 70m 규모로 상당히 큰 곳이었지만 매년 해변이 줄어들고 있는 곳이다.
지난해 기준 백사장 폭은 30∼65m로 공식 관측기록이 남아있는 2013년부터 매년 해변 폭이 4.4%씩 감소하고 있다.
최근 10년간 연안 침식 등급 평가에서 최하 등급인 D등급을 3차례, 우려 수준인 C 등급을 6차례나 받았다.
국내 '피서 1번지'로 꼽히는 해운대해수욕장도 해변 폭이 줄어들고 있다.
2013∼2015년 290억원을 투입해 모래 58만㎥를 부으며 해변 폭을 80m까지 회복했지만 10년이 지나면서 해변 폭은 34∼83m 수준으로 내려왔다.
매년 평균 5.4%씩 해변 라인이 후퇴하고 있다.
2013년 모래를 투입하기 이전에는 평균 해변 폭이 36m까지 줄어들기도 했다.
◇ 전국 해변 40%가 '심각·우려' 등급
해양수산부 '2024 연안침식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해변 10곳 중 4곳은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364개 해안중 '우려' 수준인 C등급과 '심각' 단계인 D등급은 각각 124곳과 24곳이다.
전체에서 하위 두 등급이 차지하는 비율을 뜻하는 '침식우식률'은 40.7%에 달한다.
백사장이 사라지는 현상은 동·서·남해를 가리지 않고 발생했다.
부산·인천·울산은 단 한 곳도 '양호'인 A등급을 받지 못했다.
충청남도(45.2%)와 경상북도(54.5%), 강원도(64.7%), 제주도(50.0%)는 우려 등급 비율이 전국 평균을 넘어섰다.
특히 강원도의 경우 102곳 해안중 A등급 4곳, B등급 32곳에 불과했고, C등급 56곳, D등급 10곳으로 64.7%가 우려·심각 지역으로 나타났다.
◇ 해안사구 침식, 해송림은 무너져
지난해 녹색연합이 공개한 '동·서해안 연안 침식 조사보고서'를 보면 심각성을 더 잘 알 수 있다.
녹색연합은 국내 시민단체 처음으로 전국 54개 해변을 도보로 탐사하고 드론을 띄워 관찰했다.
조사한 54개 해안 중 침식 사면(파도에 깎인 면)이 2m 이상 발생한 곳은 18개 해안이었다.
태안해안국립공원 내 학암포 해수욕장은 해안선을 따라 모래언덕(사구)이 발달해 있으나 침식으로 사구 식물의 뿌리가 드러날 정도로 무너져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모래 해변 경계 지점부터 사구 높이까지 3m 정도의 단면이 침식으로 깎여 나갔다.
천리포 해수욕장의 경우 해변에 자갈이 드러날 정도로 모래가 유실됐고, 남측 해안 소나무림 침식 방지용 석축이 무너지고 지반이 침식돼 나무 4그루가 쓰러져 있는 게 관찰됐다.
전남 신안군 증도 우전해변에는 길이 200m 이상의 해안에 모래가 유실됐고, 백사장을 보호하는 형태로 붙어 있는 해송림이 무너지고 최고 5m 높이의 절벽이 생겼다.
문화재 보호구역인 경북 경주시 봉길대왕암 해변은 2014년부터 모래 해변 폭과 단면적이 꾸준히 감소해, 중앙 부분에 해안림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모습이 확인됐다.
2011년부터 단면적이 감소한 경북 경주시 나아해변도 남측 호안과 해안도로가 높은 파도에 피해를 볼 위험을 안고 있었다.
◇ '해수면 상승, 강한 태풍 등 재난 일상화'
그동안 연안 침식은 난개발의 부작용으로 여겨져 왔지만, 최근에는 기후변화로 인한 재해라는 인식도 커지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평균 기온이 오르면서 북극과 남극의 빙하가 녹고, 그 영향으로 바닷물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유엔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 6차 보고서를 보면 기후변화로 2100년까지 진행될 해수면 변화가 최근 발생한 해수면의 변화보다 적게는 2∼4배, 많게는 4∼8배 빠를 가능성이 크다.
산악 빙하와 극 빙하가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동안 지속해서 녹으면서 해수면은 수천 년간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IPCC 보고서는 전 세계가 2050년까지 탄소 순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데 성공하더라도 이미 시작된 기후변화로 해수면이 지금보다 0.28∼0.55m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2100년까지로 탄소 중립이 늦어지면 해수면이 0.32∼0.62m 상승하고, 탄소 중립을 달성하지 못하고 현재 수준으로 2050년까지 배출하면 해수면이 0.44∼0.76m 높아질 것으로 봤다.
한국해양공단 '해수면상승 시뮬레이터'를 보면 해수면이 0.34m만 상승해도 여의도 83배에 달하는 전국 연안 면적이 물에 잠긴다.
해수면이 0.72m 상승하면 여의도 면적 119배가 잠기는 것으로 나타난다.
기후변화는 해수면 상승뿐 아니라 강한 파도와 태풍을 일상화해 해변 유실을 더 심하게 한다.
밀물 때 수위가 올라가는 '고조위(바닷물 최고 높이)'나 월파 등으로 인한 복합 침수 피해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 "대응 정책 패러다임 바꿔야"
환경단체는 연안 침식에 대응해 구조물을 설치하는 현재의 정책 패러다임이 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연안관리법 제21조에 따라 10년마다 '안안 정비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오는 2029년까지 300여곳에 구조물을 설치하거나 양빈 사업을 하는 등 2조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환경단체는 침식을 막는 시설물로 인해 2차 침식이 발생하기도 하고, 고파랑이나 태풍으로 인한 침식 피해지도 확대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녹색연합 관계자는 "연안 환경 보전의 중요성을 인지한 국가들은 지자체마다 연안 보전계획 수립과 이행을 의무화하고, 연안에서 일어나는 건설 사업 인허가를 해양관리기관에서 통합 관리하는 시스템을 수립해 관리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흐름에 맞춰 침식 유발 시설물을 철거하고, 모래 흐름을 복원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박상현 기후위기부산비상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은 "수중 방파제를 설치하면 다른 부분에서 침식이 더 된다는 사례도 나오고 있어, 모래를 붓고 방파제를 만드는 천편일률적 방식으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다"면서 "침식 이유에 대해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지역 특성에 맞는 대책을 세우고, 기후 변화를 늦추려는 근본적인 노력을 병행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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