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점령에 대한 뜻을 굽히지 않으며 진행 중인 휴전 협상이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 원유 수입을 이유로 인도에 추가 관세를 물리고 있는 가운데 푸틴 대통령은 인도를 방문해 밀착을 과시했다.
푸틴 대통령은 4일(이하 현지시간) 공개된 인도 매체 인디아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돈바스 지역 관련해 "우리가 이 영토를 무력으로 해방하거나 우크라이나군이 결국 그곳에서 물러나거나" 둘 중 하나의 선택지 밖에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재확인했다. 러시아는 돈바스 지역 약 85%를 통제 중이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일 모스크바에서 스티브 위트코프 미 특사 및 트럼프 대통령 사위 재러드 쿠슈너와 가진 회동 관련해 논의 가능한 부분도 있었지만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진심으로 이 일(휴전 협상)을 시도하고 있다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푸틴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러시아가 영토 문제에서 타협할 생각이 없음을 재강조한 것으로 향후 협상에서 난항이 예상된다. 유리 우샤코프 러 크렘린(대통령궁) 외교정책 보좌관도 전날 미국과의 회동에 대해 언론에 브리핑하며 영토 문제에 대해 논의했지만 "아직 타협안을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쪽은 지난달 말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미국이 제시한 종전안에서 우크라군 규모 축소, 전쟁 범죄 전면 사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확장 차단 등 자국에 불리한 조항 일부를 완화한 것으로 보도됐다. 다만 가장 민감한 영토 문제는 미·우크라 대통령 결정에 맡기기로 했다고 세르히 키슬리차 우크라이나 외무부 제1차관이 <파이낸셜타임스>(FT)에 밝힌 바 있다.
위트코프는 4일 미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루스템 우메로우 국가안보국방위원회 서기와 만날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우크라 평화 협상에서 소외된 유럽이 미국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는 보도도 나왔다. 4일 독일 주간 <슈피겔>은 지난 1일 유럽 정상들 간 비공개 통화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미국이 명확한 안보 보장 없이 영토 문제에서 우크라이나를 배신할 가능성이 있다"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큰 위험"에 처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또한 젤렌스키 대통령에 "그들이 당신과 우리 모두를 상대로 게임을 하고 있다"며 "매우 조심해야 한다"고 충고했다고 한다. <슈피겔>은 메르츠 총리가 언급한 '그들'을 위트코프와 쿠슈너로 추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원유 수입을 이유로 인도에 추가 관세 25%를 부과하고 있는 가운데 4일 푸틴 대통령은 인도를 4년 만에 방문해 밀착을 과시했다. 푸틴 대통령은 방문 직전 이뤄진 인디아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인도에 대한 징벌적 관세 부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며 "미국은 우리에게 원자력 발전을 위한 핵연료를 구매하고 있다. 그것도 연료"라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에 우리 연료를 살 권리가 있다면 인도엔 왜 그럴 특권이 없나?"라고 반박했다. 그는 "사소한 조정"이 있었지만 "러시아산 원유 거래가 인도에서 원활히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인도 <힌두스탄타임스>를 보면 푸틴 대통령은 5일 뉴델리 하이데라바드 하우스에서 가진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의 정상회담 모두발언 중 우크라이나 평화 노력에 대한 인도의 관심에 감사를 표하고 러시아가 인도와 군사 분야, 우주 개발, 인공지능 등 여러 분야에서 관계를 맺고 있다고 강조했다.
모디 총리는 인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평화의 편"이라며 "최근 기울인 노력으로 세계가 다시 평화의 길로 돌아올 것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그는 인도-러시아 관계가 성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힌두스탄타임스>는 러-인도 정상회담에서 국방 협력 강화, 양국 무역을 외부 압력에서 보호, 소형 모듈 원자로 협력 방안 등이 주요 의자로 논의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매체는 "미국이 러시아산 에너지와 무기 구매를 줄이라고 촉구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회담은 인도가 러시아와 국방 및 경제 유대를 강화해 전략적 자율성을 주장할 기회로 여겨진다"고 평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을 보면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러시아 전문가 티나 돌바이아는 인도가 러시아로부터 당장 주요 장비를 사들이지 않더라도 "러시아가 제안할 거래를 협상패로 다시 미국에 들고 가" 더 발전된 미국 무기 공급을 추구할 수 있다고 내다보기도 했다.
다만 가장 큰 무역 상대국인 미국과 가장 큰 무기 공급국인 러시아 사이에서 인도의 균형 잡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인도는 50% 관세를 부과한 미국과 아직 무역 협상 중이다. 독일 도이체벨레(DW) 방송은 인도가 러시아와 장기간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이번 푸틴 대통령 방문이 미국 및 유럽연합(EU)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쳐 주요 수출 협상을 복잡하게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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