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2026년을 앞두고 대대적으로 인사와 조직 개편에 나서고 있다. 신약 개발의 성과와 글로벌 사업 확장에 발맞춰 리더십을 새롭게 꾸리고, 미래 사업을 발굴하기 위한 조직도 새로 만들었다. 빠르고 민첩한 의사결정을 위해 젊은 임원들이 속속 선임되면서 업계 전반에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시장에서는 "올해 연말 임원 인사가 앞으로 5년간 각사의 성장 전략에서 분수령이 될 것이다"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주요 상장사의 대표 교체와 책임경영 강화다. 최근 HLB그룹에서는 오랫동안 회사를 이끌어온 진양곤 회장이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고, 계열사 수장을 역임한 김홍철 신임 대표가 후임으로 내정됐다. HLB 측은 공식적으로 리더십 재정비와 중장기 전략 강화를 이번 인사의 이유로 밝히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최근 미국 시장에서 신약 허가가 연이어 난항을 겪으면서, 이를 돌파하기 위한 경영 쇄신이라는 해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실제로 HLB는 간암 치료제인 리보세라닙과 면역항암제 캄렐리주맙 병용요법이 미국 허가 절차에서 여러 차례 보완요청서를 받으면서 어려움을 겪었디. 하지만 내년에는 간암·담관암 신약 상업화라는 목표를 다시 한번 분명히 내세우며, 조직 정비를 통해 반전을 노린다는 방침이다.
JW중외제약도 성과 중심의 리더십 체계를 강화하며 조직을 개편했다. 오랜 기간 그룹 내 핵심 보직을 맡아온 함은경 대표가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되면서, 기존의 단독 대표 체제는 각자대표 체제로 바뀌다. 함 대표는 연구개발을, 기존 대표는 영업과 마케팅을 각각 책임지게 되어, 전문성을 살린 역할 분담이 기대된다.
광동제약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박상영 사장이 대표이사로 승진하며, 기존 대표와 함께 각자대표 체제를 갖췄는데요. 두 대표가 전략, 신사업, R&D와 경영 전반을 각각 맡아, 사업별 독립적인 의사결정 능력을 키운다는 계획이다.
올해 인사에서 또 하나 주목되는 점은 바로 '젊은 리더십의 전진 배치'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30대 상무, 40대 초반의 부사장 등 회사 설립 이후 최연소 여성 임원들을 발탁했다. 이는 성과에 따라 평가하면서도, 조직 내에 민첩함을 더하겠다는 의지다. 삼성바이오에피스도 30대 후반, 40대 초반의 임원들이 승진하며 같은 기조를 보였다.
기업 전반에서도 세대교체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바이오 사업을 확대 중인 한 대기업에서는 오너가의 젊은 경영인이 계열사의 각자대표에 올라, 미래 사업 중심의 책임경영 체제가 강화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사업 투자와 조직 확대도 업계 주요 흐름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SK바이오팜은 방사성의약품 사업을 차세대 성장축으로 삼겠다며 전담 본부를 새로 만들었다. 이 부서는 원료 확보부터 파이프라인 발굴, 전임상, 글로벌 사업 개발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스스로 해결하는 구조로 꾸려졌다. 회사 측은 지난해 기술을 들여온 RPT 후보물질의 임상시험 계획을 준비 중이며, 추가적인 파이프라인 확보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세노바메이트로 글로벌에서 성과를 낸 SK바이오팜이 방사성의약품에 집중하는 것은 차세대 성장동력을 확실히 챙기려는 전략적인 결정"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처럼 제약·바이오 산업 전반에서 인사가 크게 바뀌는 배경에는 업계 경쟁 구도 변화가 자리잡고 있다. 글로벌 신약 개발 경쟁이 한층 치열해지고, 각국의 규제도 강화되면서 시장 진입 장벽이 높아졌다. 이에 국내 기업들은 리더십, 조직, 사업 포트폴리오 전반을 빠르게 손보고 있다. 특히 임상 데이터에 근거한 R&D 의사결정 속도와 글로벌 사업 개발 능력은 이제 기업 생존과 직결될 만큼 중요한 요소가 됐다.
업계에서는 "리더십 변화는 단순 인사 차원이 아니라, 신약 개발 중심의 비즈니스 구조에 맞는 체질 개선 과정"이라며 "대표 및 세대교체는 앞으로의 경영 전략을 가늠할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연말 인사 시즌은 마무리됐지만, 제약·바이오 업계의 재편은 이제 막 시작됐다는 평가가 많다. 본격적인 신약 상업화, 글로벌 기술 수출, 새로운 사업 진출이 본궤도에 오르는 2026년에는, 올해 이뤄진 리더십 개편이 각사에 어떤 성과로 이어질지 주목받고 있다.
[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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