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싸우겠다면 준비돼 있다"는 푸틴 발언 위협으로 인식
전문가, 러와 직접 충돌 가능성 작게 보지만 긴장 상황엔 동의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유럽이 전쟁을 원한다면 러시아는 당장 준비됐다"는 발언에 프랑스인들의 안보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일간 르피가로가 5일(현지시간) 전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일 참석한 한 투자 포럼에서 "유럽과 싸울 계획이 없다고 수백 번 이야기했지만, 유럽이 우리와 싸우고 싶어 하고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지금 당장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 위한 미국 주도의 노력을 유럽이 방해한다고 비난하는 맥락에서 나온 말이지만 일부 프랑스인은 진정한 위협으로 받아들였다고 매체는 전했다.
프랑스인 나데즈(가명·70대)는 이 신문에 푸틴 대통령의 영토적 야망이 우크라이나에서 그치지 않고 언젠가는 유럽 다른 국가들을 정복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가 나토 동맹국을 보호하기 위해 군사 개입을 할 수도 있다는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나름의 대책을 세워놨다고 한다.
그는 "아이들과 손주들을 데리고 캐나다로 가는 비행기를 탈 것"이라며 "거기에는 사촌들이 살고 있어 우리를 받아줄 것"이라고 했다. 또 "캐나다는 러시아에서 충분히 멀고 프랑스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알맞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러시아의 잠재적 위협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유럽과 프랑스의 집단 안보 문제로 인식하는 프랑스인은 나데즈만이 아니다.
여러 유럽 국가의 영공을 침범한 미확인 무인기(드론) 사건, 러시아와 잠재적 대결에 맞서 자식까지 잃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프랑스 합참의장의 경고성 발언 등은 프랑스인들의 두려움을 부채질했다.
이는 통계로도 드러나 지난 9월과 10월 여론조사에 따르면 러시아를 유럽에 대한 위협으로 생각하는 프랑스인 비율은 한 달 새 72%에서 80%로 8%포인트 올랐다.
20대 여성 블랑슈는 합참의장이 '자식 잃을 각오'를 언급했을 때 "처음엔 민간인 동원 가능성을 언급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어머니가 '네 동생을 숨기고 다른 나라로 멀리 떠나자'고 하셨다"고 떠올렸다.
블랑슈는 합참의장이 현역 군인을 언급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에도 불안이 남았다고 전했다.
그는 "당국이 우리에게 전쟁에 관해 이야기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런 종류의 발언이 우리 내부에서 나오는 건 익숙지 않다"며 제3차 세계대전 발발에 대한 두려움에 자꾸 사로잡힌다고 말했다.
프랑스인들의 이런 우려는 과할 수 있지만 현 정세가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라는 건 전문가들도 동의한다.
전 모스크바 대사를 지낸 장 드 글리니아스티는 프랑스가 핵보유국이기 때문에 "러시아 전차가 샹젤리제 거리에 들이닥칠 것이라고 상상하는 건 진지하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프랑스 당국의 입에서 이런 부류의 담화를 듣는 건 냉전 이후 처음이라고 인정했다.
그는 최근 며칠 사이 흑해와 세네갈 연안에서 러시아 유령 선단에 속한 몇몇 유조선이 폭발의 표적이 된 것도 긴장 요소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 일이 확전으로 비화할 수 있으며 "그런 위험은 매우 현실적"이라고 강조했다.
s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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