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오면 평소보다 30% 정도 인센티브가 붙어요. 위험을 알지만 돈을 벌기 위해 운전대를 잡는 거죠."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폭설 다음 날인 5일 오전 10시께 서울 서대문구 홍제역 인근에서 오토바이를 세운 채 신호 대기 중이던 배달기사 김태훈 씨(64)는 이같이 말했다. 그는 "도로에 블랙아이스가 있어 걱정된다"며 얼어붙은 도로 상황을 우려하면서도 인센티브를 받아야 한다며 출발했다.
이날 거리 곳곳은 제설 작업이 이루어졌음에도 밤새 내린 눈으로 도로 곳곳이 여전히 빙판으로 남아있었다. 그늘진 이면도로는 물기가 남아 밤새 얼어붙었다. 한 배달기사는 "바퀴가 아예 돌아버리는 구간이 있다"며 "어제 내 앞에서만 두 명이 넘어졌다"고 말했다.
밤이 되면 위험은 더 커진다. 배달기사 이상원씨는 "어두우면 노면이 안 보여서 더 무섭다. 예전에 그러다 넘어진 적도 있다"며 "하루에 사고가 수 십 번 일어나는 위험에 노출되는데 안전을 담보로 하기에는 적은 돈"이라고 말했다.
눈이 내리면 사고 위험이 급증하지만 동시에 폭설이 몰고 오는 '특수'로 주문과 배달 수요는 되레 급증한다. 위험을 피해 운행을 쉬는 라이더가 늘어나면서 배달 플랫폼들이 '미션 리워드'와 같은 인센티브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배달기사들이 사고 위험을 감수하고 거리로 나서는 이유다.
이대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 부지부장은 "어제도 저녁 5시30분부터 8시30분까지 배달 11개를 하면 4만5000원을 준다는 미션이 있었다"며 "평소 단가가 낮다보니 이런 날 돈을 벌기 위해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딜레마가 있다"고 말했다.
홍창의 민주노총 배달플랫폼노조 위원장 역시 “쿠팡이츠은 '2건 1만4000원', 배달의민족은 '10건 6만원' 같은 미션 문자가 계속 울렸다"며 "미션 리워드가 크다 보니 라이더들이 위험을 감수하게 만드는 유혹이 된다”고 말했다.
고객 반응은 엇갈린다. 눈길 배달의 위험을 알고 "많이 이해해준다"는 기사들도 있었지만, 여전히 무리한 요구도 적지 않다. 한 배달기사는 "언덕 같은 데는 아예 못 올라가는데 억지 부리는 사람도 있다"고 토로했으며 또 다른 기사는 "바쁘다는데도 계속 컴플레인 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배달 기사들의 공통적인 지적은 안전 장비만으로는 위험을 줄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 배달 기사는 "헬멧, 장갑 정도가 다다. 배달 늦으면 안 되니까 현실적으로 더 챙기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스노우체인 언급도 있었지만 "덜컹거리고 불편해서 잘 안 쓴다"며 실효성이 낮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홍 위원장도 “스노우체인을 한 라이더는 본 적 없다. 장비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며 "쉴 수 있으면 쉬거나, 정말 천천히 조심해서 다니는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배달 플랫폼의 콜 배분 방식도 문제로 지적됐다. 한 라이더는 "운전 중에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콜이 계속 들어온다"며 “경사나 지면, 도로 통제 상황 등을 파악해 도저히 못 갈 수 없거나 위험한 지역은 제외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눈길 배달을 막을 수 없는 만큼 배달기사들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기 위해서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특히 최근 가입이 의무화된 유상운송 보험은 배달기사 뿐만 아니라 사고 피해자인 국민 안전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그러나 배달기사들이 흔히 드는 일반 가정용 보험(30~40만원)과 금액 차이가 5배 가까이 나기 때문에 라이더들은 여전히 유상운송보험 가입을 기피하고 있다. 현재 유상운송 보험 가입률은 약 40%로 10명 중 6명은 제대로 된 보험 없이 일하는 상태다.
홍창의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배달플랫폼 노조위원장은 "공제조합을 설립해서 가격이 낮춰졌음에도 아직 비싸다"며 "사고 시 배상 등 최소한의 안전망 역할을 기대하며 추진하고 있지만, 여전히 '설마 사고 나겠어' 하는 마음으로 보장이 안 되는 가정용 보험을 들고 일하는 경우가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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