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머니=홍민정 기자] 최근 미국 경제를 둘러싼 지표들이 엇갈리면서 경기 흐름을 해석하기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워지고 있다. 고용·소비·물가 등 주요 지표와 기업 실적이 한 방향으로 수렴하지 못한 채 상반된 신호를 내놓으면서, 오는 5일(현지시간) 발표되는 9월 PCE(개인소비지출) 물가지수가 다음주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금리 인하 여부를 가늠할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투자자들이 받는 혼선은 고용지표에서부터 드러난다. 민간 고용지표인 ADP에 따르면 지난 11월 민간 일자리는 4만명 증가할 것이라는 시장 예상과 달리 3만2000명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감원 계획도 늘고 있다. 고용정보업체 챌린저, 그레이 & 크리스마스는 11월 기업들의 감원 계획이 전월 대비 53% 줄었지만, 11월 기준으로는 2022년 이후 3년 만에 가장 많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올해 1~11월 누적 감원 계획 규모는 전년 동기보다 54% 증가했다.
그럼에도 미국 노동부가 집계한 주간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지난주 신규 청구 건수는 19만1000건으로 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최근 일자리를 잃은 사람이 많지 않았다는 의미로, 노동시장 약화 신호와는 상충되는 결과다. 신규 실업수당 청구는 주간 단위로 변동성이 크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노동시장이 예상보다 견조하다는 인식을 강화시키고 있다.
소비 흐름 역시 방향성이 분명치 않다. 심리 지표만 보면 경기 비관론에 힘이 실린다. 컨퍼런스보드의 11월 소비자신뢰지수는 88.7로 떨어지며 지난 4월 이후 7개월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미시간대가 발표하는 11월 소비자심리지수도 51.0으로 2022년 6월(50.0)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실제 소비 지출을 보여주는 유통업체 실적은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 8~10월 분기 실적에서 월마트와 달러 제너럴 등 할인점들은 실적 호조를 나타냈고, 백화점 체인인 메이시스마저 시장 기대를 웃도는 실적을 내놨다. 경기 부담으로 소비자들이 가격 민감도가 높은 매장으로 이동했다고 해석할 수 있지만, 전반적인 지출 자체가 확연히 줄어들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마크 해킷 네이션와이드 수석 시장전략가는 마켓워치와 인터뷰에서 “현재처럼 상반된 신호가 뒤섞인 국면에서 9월 PCE 물가지수는 매우 중요한 지표”라며 “심리지표 등 소프트 데이터는 부정확성이 큰 만큼, 투자자들은 실물에 가까운 PCE 지표에 더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데이터들은 지연되거나 불완전해 전체 그림을 흐리게 만들고 있다”며 “9월 PCE 발표가 이런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PCE 물가지수는 연준이 가장 선호하는 인플레이션 지표로, 이번 발표에서는 물가와 함께 공개되는 개인소득·개인지출 지표도 소비 여건을 가늠할 핵심 변수로 꼽힌다. 다우존스가 이코노미스트들을 대상으로 집계한 컨센서스에 따르면 9월 개인소득은 전월보다 0.3% 늘어 8월(0.4%)보다 증가율이 둔화했을 것으로 예측된다. 반면 개인지출은 전월 대비 0.4% 증가해 8월(0.3%)보다 확대된 것으로 전망된다.
물가 측면에서 9월 PCE 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0.3%, 전년 동월 대비 2.9% 상승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는 8월과 동일한 상승률이다. 변동성이 큰 식품·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PCE 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0.2%, 전년 동월 대비 2.9%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월간 상승률은 8월과 같지만, 연간 상승률은 8월(2.8%)보다 소폭 높은 수준이다.
다만 잭 자나시에비츠 나틱시스 수석 전략가는 연준이 이번 9월 PCE 물가지수를 ‘결정적 지표’라기보다 참고 자료 정도로만 활용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연방정부 셧다운(업무 정지) 여파로 통계 발표가 한 달 이상 지연된 만큼, 해당 지표에 과도하게 의존할 경우 빠르게 변화하는 경제 여건을 제때 반영하지 못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인플레이션이 3%에 근접한 수준에서 “다소 고착화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면서도, 노동시장 둔화가 소비 지출을 제약할 수 있어 물가가 다시 가속화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현재 국면에서는 둔화 조짐을 보이는 노동시장에 대응해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하하는 것이 보다 적절하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소날리 바삭 아이캐피털 수석 투자전략가는 CNBC 인터뷰에서 “각종 데이터가 서로 다른 신호를 내놓는 가운데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끈질기게 유지되고 있다”며 “물가 흐름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들은 적게 고용하고 적게 해고하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 균형이 무너질 경우 내년 경제 여건은 상당히 어려워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4일(현지시간) 미국 증시는 대체로 보합권에서 관망세를 이어갔지만, 소형주 중심의 러셀2000지수는 0.7% 상승하며 올해 들어 일곱 번째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는 중소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을 낮추는 금리 인하 기대감이 시장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된다.
CME(시카고상품거래소) 금리선물 시장에 따르면 오는 9~10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인하될 가능성은 약 87% 수준까지 반영된 상태다. 시장은 혼란스러운 지표 속에서도 ‘연준의 첫 인하’ 시점을 코앞에 두고 있다는 기대를 점점 더 선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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