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는 굉장히 애매해서 누구 땅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었음
이때문에 조선-청나라 양국의 국경이 숙종 대에 들어 정해지고 그 경계인 백두산정계비가 세워짐
청나라가 이때 양국의 국경이 압록강과 '토문강'이라고 했는데
조선은 토문강이 두만강 말하는거라고 생각함
당시 조선의 담당 관료가 백두산에 직접 오르지 않고 비석을 세운 탓에 위치가 잘못 정해졌고, 그 강은 조선이 아닌 만주족들의 땅으로 흐르고 있었음
결국엔 짤에 송화강이냐 두만강이냐로 문제가 생김
결국 송화강이냐, 두만강이냐의 문제로 번짐.
여기해 더하19세기에는 정말 많은 조선인들이 간도로 넘어가서 그곳에 뭐 세금도 징수하고 관리도 파견하고 그랬는데
이로 인해 고종은 송화강이 양국 국경이라고 주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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