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士) 계층 조명한 신간 '피터 볼의 중국 지성사 강의'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국운은 쇠했지만, 학문은 깊이를 더해갔다. 선비(士)들의 끊임없는 노력 덕택에 실천적 윤리 체계였던 유학은 관념론적이며 철학적인 우주론으로 도약했다. 황제도, 장군도 아닌 문약한 서생들이 나라를 좌지우지하던 시기였다. 가장 약했지만, 동시에 가장 부유했으며, 가장 학문이 발전했던 중국 왕조, 송나라 얘기다.
거란족(요)과 여진족(금)은 물론 탕구트족(서하)과 몽골족(몽골)까지 송나라를 침략했다. 상업이 발달해 부유했지만, 돈으로 평화를 사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송은 자신들이 오랑캐라 부르며 멸시했던 이민족에 쫓겨 남쪽으로 내려갔다가 그마저도 지키지 못해 결국 몽골에 멸망했다. 그래도 사상과 문화만은 찬란했다.
송나라 신종과 철종 시기, 당대 보수주의의 거두 사마광과 진보주의를 표방한 왕안석은 정부 역할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정부의 임무는 권위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인가, 아니면 사회에 더 큰 평등을 가져오는 것인가를 두고 다툰 이들의 논쟁은 현대의 프리드먼식 자유주의와 케인즈주의의 대립을 연상시킨다. 거칠게 말해 사마광은 정부의 기능 축소를, 왕안석은 정부의 기능 확대를 추구했다.
사마광과 왕안석의 시기에는 정이와 소식(소동파)도 유학의 관점을 놓고 대립했다. 둘 다 보수주의자였지만 세상을 보는 관점은 달랐다. 정이는 유학의 기반을 윤리에, 소동파는 문학에 둬야 한다고 각각 주장했다.
여기에 우주의 모든 존재와 현상이 하나의 통합된 근본 원리에 따라 질서화됐다는 주희의 성리학까지 등장했다. 이처럼 저마다 추구하는 사상이 달랐다. 한마디로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시대였다.
최근 출간된 '피터 볼의 중국 지성사 강의'(너머북스)는 피터 볼 하버드대 동아시아언어문명학부 교수가 송대의 유학에서 시작해 명나라 말기까지 약 500년간 중국 학문의 흐름을 살펴본 학술서다. 주로 선비 계층, 그중에서도 절강성 무주(현재의 저장성 진화) 지역에서 펼쳐진 학문의 진화 과정을 분석했다.
책에 따르면 송대부터 청대 직전까지 발전한 고문(古文), 도학(道學), 박학(博學), 고증학(考證學) 그 어떤 학문도 중앙에서 연구가 시작되지 않았다. 모두 지역에서 출발해 수도에서 꽃을 피웠다. 조선시대 사림(士林) 세력이 그랬던 것처럼, 중국의 사(士) 계층은 각자의 지역에서 지적이며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사회 운동을 이끌다가 주로 과거제를 통해 등용돼 중앙 정치 무대로 진출했다.
저자는 사 계층에 대해 "자각적인 국가엘리트"라고 규정하면서 "관직이나 가문의 명망을 바라지만, 본질적으로 학(學)을 통해 규정할 수 있는 집단"이라고 소개한다. 그러면서 이들은 혼인 네트워크, 사당 건립과 족보 작성 등을 통해 서로 끈끈하게 이어졌고, 지역 일과 교육에 많은 자원과 시간을 투자하면서 점차 중국의 지배 세력으로 성장해 나갔다고 말한다.
민병희 옮김. 6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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