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프라이데이 쇼핑 이후 나에게 남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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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프라이데이 쇼핑 이후 나에게 남은 것들

엘르 2025-12-04 15:44:48 신고

매년 11월이 되면 주변이 시끄러워집니다. “당신의 현명한 쇼핑 시간이 왔습니다!” 지금 아니면 평생 못 살 것처럼, 쇼핑 앱 알림이 누구보다 긴박하게 울리는데요. 장바구니는 이미 가득 차 있고, 할인율이 내려갈 때마다 심장은 뛰어오르죠. 그리고 결정의 순간. 평소에는 없던 결단력이 솟구기 시작합니다. 블랙프라이데이가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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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프라이데이’라는 마법 같은 단어는 사람을 쉽게 관대하게 만들어요. 갑자기 올드 머니 룩을 완성해 줄 것 같은 가볍고 미니멀한 코트, 겨울은 언젠가 더 추울 테니 미리 담아 둔 두툼한 패딩, 겨울을 넘어 내년 휴가 때 입을지도 모를 수영복. 나이 드는 속도를 잠시 멈춰줄 것만 같은 각종 뷰티 제품과 디바이스, 작심삼일도 채 못 지킬 걸 알면서도 장바구니에 넣어 둔 영양제들까지. 수십 가지 카테고리 속에서 오지 않은 미래를 위해 나름 ‘현명하게’ 고군분투했습니다. 그렇게 믿어 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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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며칠 간의 전쟁 같은 쇼핑이 끝나고 하나둘 배송이 도착하면 정작 풀어보지도 않는 경우, 또 궁금하지 않은 일이 이따금 생기곤 해요. 택배 상자 위에 또 다른 박스가 쌓이고, 언젠가 열겠지 하는 사이 환불 기간만 순식간에 지나가죠. 세일 잔해들은 집 안 어딘가 조용히 쌓이고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마음 한편을 묵직하게 붙잡습니다.


한편 실패한 쇼핑의 기억은 오히려 더 선명하게 남더라고요. 단 한 번 입고 사진 속에서만 존재하던 코트, 맞지 않아 서랍 안에 갇힌 수영복, 반품을 다짐하며 영수증을 꼭 쥐고 있었지만 결국 환불 날짜를 넘겨 버린 운동화까지. 방 안에 뜯지 않은 물건들이 가득 채우고 있었지만 그 순간에도 내 안에는 같은 목소리가 흐릅니다. ‘뭐 그래도 이 정도는 괜찮지 않아?’ 그렇게 세일은 교묘하게 나를 합리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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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됩니다. 그 쇼핑은 무엇보다 즉흥적이었고, 나는 그 순간을 모두 돈으로 사기에는 생각보다 꽤 현실적인 사람이라는 걸. 결국 물건값 보다 죄책감을 더 비싸게 사고 말았다는 사실을. 어쩌면 블랙프라이데이는 ‘필요한 물건’보다 ‘더 나은 나’를 사는 최면일 지도 몰라요. 내가 구입한 건 눈앞의 물건이 아니라, 언젠가 달라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가까웠을지도.


간혹 진짜 싸게, 정말 좋은 물건을 영리하게 ‘득템’한 적도 분명 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대부분의 폭탄 세일 쇼핑 후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공허함이 뒤따라요. 밀물처럼 밀려왔던 아드레날린이 한순간에 빠져나가는 느낌이랄까. 쇼핑은 분명 즐거운 행위인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에디터가 겪은 블랙프라이데이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저렴해진 가격을 방패 삼아 더 많이 살수록 오히려 결핍은 깊어졌다는 것. 세일이 나에게 제공한 건 결국 갚진 ‘소유’가 아니라 손해 보기 싫은 쇼퍼의 순간적인 위로였을 뿐. 생각할 틈이 사라지면 욕망은 붙잡을 새 없이 커지고, 소비는 곧장 감정을 대리하는데요. 생각 없이 지른 관대한 쇼핑은 잔혹하게도 금세 흔해집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얄궂더군요.


그래도 실패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 잔해들 속에는 다행히 ‘취향의 발견’이라는 값진 단서들이 남았으니까요. 무엇이 나를 움직이게 했는지, 무엇이 내 곁에 오래 있을지. 지금의 나를 조금 더 정확히 이해하게 된 것일 수도 있는데요. 나이를 먹을수록 ‘이걸 사면 달라질 것 같다’라는 환상은 확실히 줄었다고 느끼기도 해요. 비싸게 치른 취향값 덕분입니다. 그러고 보니 참 비싸게도 치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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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후회하고 있지만 아마 내년에도 같은 자리에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게 뻔해요. 할인 숫자는 더 크게 나를 유혹할 것이고, 머리보다 먼저 반응하며 장바구니는 또다시 채워질 테죠. 그리고 거의 분명히, 그중 몇 가지는 또 실패하겠죠. 다만 그 실패를 통해 조금 더 나를 발견하게 된다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괜찮은 장사 아닌가 하는 낙관주의적 생각을 슬쩍 던져봅니다.


욕망은 적이 아니라 마음속 신호에 가까워요. 90% 세일한 가격에 나를 알 수 있는 기회라면, 한 번쯤 해볼 법도 하지 않나? 감히 말하건대 세일은 가장 솔직하게 구매자들를 흔들잖아요. 그럼에도 내년 블랙프라이데이에는 흔들리는 풍파에 맞서다 꺾이진 말고, 부디 지혜롭게 몸을 맡겨보길. ‘3일 뒤에도 생각날까?’, ‘이걸 사도 이달 카드 값 괜찮을까?’ 정도의 간단한 자기 검열 정도로도 효과는 있으니까요. 흥분을 가라앉히면 조금은 보일 거예요.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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