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슐린기능 저하, 장기손상 심하면 중증 당뇨병 판단
당뇨병은 보통 1형과 2형으로 분류되지만 사실 환자마다 중증도 차이가 커 질병의 위험도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이에 학계에서는 당뇨병도 중증도를 나눠 보다 세부적으로 분류, 치료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이 가운데 대한당뇨병학회가 중증도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공론화하는 첫 논의의 장을 열었다.
대한당뇨병학회는 3일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와 공동으로 ‘중증 당뇨병 관리 강화, 분류체계 개선을 위한 전략 모색’ 심포지엄을 열고 ‘중증 당뇨병’을 새롭게 정의하는 분류체계를 공식 발표했다.
학회는 대사 이상 정도를 정량화한 ‘등급’과 합병증의 누적 손상정도를 나타내는 ‘단계’를 함께 평가하도록 분류체계를 설립하고 이를 ‘당뇨병 등급-단계 분류(Diabetes Grade–Stage Classification, DGSC)’로 명명했다.
이번 분류체계는 중증 당뇨병 TFT(Task Force Team) 연구진이 주도해 개발했으며 국제학술지(Diabetes & Metabolism Journal) 2025년 2025년 49권 6호에 게재됐다.
학회에 따르면 DGSC의 첫 번째 평가기준인 ‘대사등급’은 인슐린 분비 부족과 저항성의 정도를 수치화한 것이다. 인슐린 분비능력은 C-펩타이드 수치로, 인슐린 저항성은 하루 인슐린 사용량 등으로 평가해 4등급으로 나뉜다.
▲1등급은 생활습관교정이나 경구약으로 조절 가능한 초기 단계 ▲2등급은 여러 약물 치료가 필요한 중등도 단계 ▲3등급은 인슐린 주사가 필요한 중증 단계 ▲4등급은 인슐린이 거의 분비되지 않거나 극심한 저항성이 나타나는 초중증 단계로 당뇨병케토산증, 고삼투압성 혼수, 중증 저혈당 같은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두 번째 기준인 ‘합병증 단계’는 병태생리 기반의 대사 등급을 보완하는 분류로 당뇨병으로 인한 심장, 신장, 눈, 신경 등 주요 장기 손상 정도를 평가한다. 평가대상에는 심혈관질환, 심부전, 만성신장질환, 당뇨병망막병증, 신경병증이 포함되며 합병증 단계 역시 4기로 구분된다.
▲1기는 합병증은 없지만 고혈압, 비만 등 위험요인이 있는 상태 ▲2기는 검사에서만 발견되는 초기 합병증 상태 ▲3기는 협심증, 신장 기능 저하, 시력 이상 등이 임상적으로 확인되는 단계 ▲4기는 심근경색, 말기 신부전, 실명 등 생명을 위협하는 진행 단계이다.
연구책임자이자 발표를 맡은 조영민 법제이사(서울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이러한 분류체계를 기반으로 중증 당뇨병은 3등급 이상 또는 3단계 이상으로 정의한다”며 “인슐린 기능이 심하게 저하됐거나 장기손상이 상당히 진행된 경우를 중증으로 판단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차봉수 이사장(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은 “당뇨병은 매우 흔해 다양한 의료진이 진료하지만 어떤 경우부터 당뇨병 전문가에게 의뢰해야 하는지는 명확한 기준이 없었다”면서 “이번에 발표된 중증 당뇨병 분류 시스템에서는 대사 등급 3 이상 또는 합병증 단계 3 이상인 경우 중증으로 분류하고 당뇨병 전문가 진료를 권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단 중증 기준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혈당이 지속적으로 높거나 심한 저혈당이 반복될 때 ▲혈당 변동 폭이 매우 클 때 ▲망막병증, 신장병, 심장병이 빠르게 악화될 때는 전문가의 진료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최성희 홍보이사(분당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당뇨병은 흔하다는 이유로 ‘가벼운‘ 만성질환으로 여겨지기 쉽지만 실제로는 인슐린 결핍이나 심혈관·신장·신경 손상 등에서 중증도 차이가 매우 큰, 이질적인 질환”이라면서 “새 분류체계는 당뇨병의 심각성을 객관적 기준으로 평가해 집중 치료가 필요한 중증 당뇨병환자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도록 한다”고 말했다.
이어 “DGSC 체계는 대사기능장애와 합병증 부담을 동시에 평가함으로써 환자 개인의 위험도에 따른 치료 전략 수립과 의료 자원 배분을 가능케 한다”며 “향후 임상 검증과 정책적 통합이 뒷받침된다면 정밀의학 발전과 합병증 예방에도 기여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학회의 중점사업도 소개됐다. 발표를 맡은 이용호 총무이사(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2025 당뇨병 진료지침을 발간해 표준 치료지침을 제시하고 1형당뇨병의 췌장장애 인정을 통한 보장성 강화, 병원 내 혈당관리실 근거 구축 등 환자 안전과 치료 최적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에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용호 총무이사는 “오늘 심포지엄을 계기로 ‘중증 당뇨병’의 개념을 확립하고 환자 맞춤형 치료 및 예방이 가능한 체계를 구축하는 데 앞장서겠다”면서 “학회는 앞으로도 근거 중심 정책 제안과 임상 현장 개선을 통해 국가 당뇨병 관리 수준을 높여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