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선미 칼럼] 영감은 어디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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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미 칼럼] 영감은 어디로부터?

문화매거진 2025-11-29 09:48:23 신고

▲ 영감은 뿌리라면 영향은 환경이다 / 그림: 권선미
▲ 영감은 뿌리라면 영향은 환경이다 / 그림: 권선미


[문화매거진=권선미 작가] 나는 종종 ‘스레드’에 들어가 ‘눈팅’을 하곤 한다. 글도 몇 번 썼었지만, 게으른 내가 그걸 꾸준히 할 리가?

스레드는 前 트위터, 現 X(엑스)와 비슷하면서도 前 페이스북, 現 메타의 신생 소셜 미디어로, 온갖 잡담과 정보와 뒷담화와 뉴스 같은 것들이 뒤섞인 곳이다. 그곳에서 나뒹구는 시간은 부질없고 즐겁고 아주 가끔은 사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다 또 가끔은 ‘현타’가 물밀듯 밀려오는데도 핸드폰을 꺼야할 시간을 놓친 채 시간을 하염없이 낭비하기도 한다.

▲ (左) 이경호 작가의 사진 memories(2022), (右) 쿠나스 작가의 회화 We Can‘t Afford To Stay The Same(2025)
▲ (左) 이경호 작가의 사진 memories(2022), (右) 쿠나스 작가의 회화 We Can‘t Afford To Stay The Same(2025)


어제 스레드에서 본 글 중, 누군가 올린 뉴욕에서 전시 중인 독일 회화작가의 작품이 알고 보니 한국 사진작가의 작품과 같다는 내용이 바이럴 되고 있었다. 두 작품의 탄생 시기를 보자면 한국 사진작가의 작품을 독일 회화작가가 표절한 것이었다. 분명 독일 작가가 잘못했음이 명백하지만, 나는 그 회화작가의 마음 또한 알 것도 같았다.

나 또한 종종 무엇을 그려야 할지 방향이 잡히지 않을 때나 부족한 그림에 무언가를 얹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면 핀터레스트, 인스타그램 등 이미지를 중심으로 하는 앱을 내내 돌아다니곤 한다. 모든 디자인 직종이 그러할 것이다. 내가 원하는 이미지의 시안을 찾기 위해 이미지의 바다에 뛰어드는 것인데, 그 바다는 너무나 넓고 광활해서 한번 들어가면 허우적거리다 시간이 녹아내리곤 한다. 마음에 들어 저장해 놓은 이미지를 다시 찾아보지 않는 일도 허다하다. 그만큼이나 앞서 입장하기 전 생각해 놓았던 필요한 만큼의 정보만을 얻어 나오기는 힘들단 이야기다. 그 바다는 한눈팔기에 딱 좋다.

다시 돌아와서 그림이 잘 풀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 핀터레스트를 방문하면, 이게 내 작품이면 좋겠다 싶은 멋진 이미지들이 정말 많다. 그리고 그 이미지들의 출처를 정확히 알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게다가 그 사이트의 특성상 이미지를 마음껏 개인 PC에 저장 후 불특정 다수로부터 파일이 계속 재 업로드되는 경우가 있어 그 이미지가 언제 것인지, 출처가 누구인지, 어디에 사용되던 이미지인지 점점 풍화된다. 각 잡고 검색하지 않는 이상은 별생각 없이 이미지를 소비하게 된다.

또 아마도 독일의 작가도 그런 식으로 이미지를 검색하다 자신의 작품에 활용하지 않았나 싶다. 그저 그냥 출처 없이 떠도는, 의미 없이 그저 예쁜 사진이라고만 생각했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 사진을 그렇게나 빼다 박아 그려버린 것은 분명 그의 잘못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판매용 그림이라면) 참고가 아닌 정말 빼다 박아버린 거니까. 그는 그 사진을 그의 영감이라고 착각해버린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영감을 어디서 찾아내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한다.

친구와 내가 같은 식당의 메뉴판을 만들게 되는 일이 있었다. 내 친구 M의 경우는 디자인과를 졸업했고, 나는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는데, 어릴 땐 특정 만화가의 그림체만 따라 해도 주위 친구들에게 놀림감이 되곤 했었던 터라 ‘표절’은 안된다는 게 머릿속에 박혀있어서 창작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친구는 ‘시안’을 참고해 누가 봐도 멀쩡해 보이는 메뉴판 만들기를 잘했고, 나의 경우는 시안은 안 보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려 친구의 배는 끙끙거리며 애쓰다 뭔가 이상한 메뉴판을 만들어 자주 반려 당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며 그동안 내가 반려 당한 이유를 이제야 깨달았다.)

‘창작’이라는 것은 없던 것을 있게 하는 것인데, 요즘의 창작은 정보의 바닷속에서 내가 어렴풋이 바라던 비슷한 요소를 발견하기 쉽고, 뭐든지 빨리빨리 해내야 하는 환경에 (연예인이 되었든 예술가가 되었든 작품을 릴레이로 내지 않으면 잊힌다는 인식이 강한 것 같다.) 빠른 영감을 위해 인터넷에서 무언가를 찾으려 애쓰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나는 일본의 옛날 만화가들을 동경한다. 회화작가들도 멋지지만, 매일매일 많은 양의 그림을 새로운 이야기들과 함께 릴레이로 하염없이 그렸다는 점에서는 만화가를 못 이긴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인터넷이 없던 시절, 앞선 작품들이 많이 없던 시절 자신만의 스토리를 쓰고 작품들의 모든 배경지식을 위한 인터뷰를 직접 하고, 배경을 위한 촬영을 직접 해서 그걸 참고로 작품을 만들었으며, 심지어 그걸 한 땀 한 땀 펜으로 종이에 그렸다. 그들의 영감은 보통 그들의 일상에서, 그들의 상상에서 나온 것들이 많을 것이다. 그들에겐 핀터레스트 같은 것들이 없었을 테니 계속 이미지를 연구하고 만들어 나갔을 테다. 그 시절의 작품들이 정말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던 게 아닌가 싶다. (물론 그들도 다른 작품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작품들도 있다. 영향과 영감은 다르다.) 정말 종이 한 장과 펜으로만 빈 종이를 작품으로 만들어냈다. 게다가 그 페이지들을 엮어서 책으로도 꾸준히 냈다. 만화책들은 정말 재능과 노력과 집념의 작품들이다. 나는 항상 그래서 그 시절을 볼 때면 열등감을 느낀다. ‘아아 나는 저엉말 게으르고 한심하다’라고.

이제는 깊게 상상할 필요도 여유도 없다. 상상이 필요한 머릿속은 이미 숏폼이 꽉 채워져 있다. (내 상상을 담당해야 하는 뇌는 ‘골반이 멈추질 않아’ 같은 밈들로 대신 채워지고 그것이 내 영감(상상)이라 착각해서 새로운 상상을 하지 않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자기복제 절정의 시대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마치 AI가 복제를 계속해 나가면 뭔가 이상한 형태가 되는 것처럼. 우리도 모르게 점점 이런 것들에 익숙해지다가 창작 작품의 형태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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