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노규민 기자] "어릴 때부터 연기하겠다고 엄마 따라 이곳저곳 다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17년이라는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러갔어요. 긴 세월 늘 불안했을 텐데 포기하지 않고 이 길을 걸어가고 있는 자신을 보면, 가끔은 뿌듯합니다."
중학교 3학년 때 CF모델로 데뷔, 아역 시절을 지나 영화 '박화영' '어른들은 몰라요' 등을 통해 연기력을 입증한 이후 '오징어 게임'으로 글로벌 스타가 됐다. '멘탈코치 제갈길' '힘쎈여자 강남순'을 통해 드라마 주연 배우로 거듭난 것은 물론, '지금 우리 학교는' 'Mr. 플랑크톤' '당신이 죽였다'까지 흥행에 성공하며 넷플릭스의 딸로 불리는 배우 이유미다.
최근 이유미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전 세계를 강타한 신작 오리지널 시리즈 '당신이 죽였다'와 관련한 에피소드 외에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당신이 죽였다'는 죽거나 죽이지 않으면 벗어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살인을 결심한 두 여자가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유미는 한때 촉망받는 동화 작가였지만, 남편의 반복되는 폭력에 시달리며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는 '희수' 역할을 맡아 폭발적인 열연을 펼쳤다.
이유미는 "시나리오를 처음 읽고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왜 희수는 도망치지 못했을까'였다. 진표(장승조)와 결혼한 이유부터 폭력이 시작 된 이후 혼돈, 그리고 도망도 쳐 보고 신고도 다 해봤을 거라는 상상을 하며 캐릭터를 만들어 갔다"고 설명했다.
이어 "'희수'와 '은수'(전소니)의 관계가 흔하지 않아 좋았다. 극에서는 안 보이는 둘만의 어린 시절이 존재할거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부터 어떻게 우정을 쌓아 왔을 지부터 상상했다. 진표와 연인으로 발전하면서는 '희수'가 '은수'에게 많은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소소한것부터 신뢰가 쌓였을 것 같았다. 서로의 가정환경 때문에 힘들었을 때도, 옆에 있었던 믿음이 컸다고 여겼다"라며 "결과적으로 각각 캐릭터가 성장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 고마웠다. 저 또한 '희수'와 함께 성장한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이유미는 "연기할 때, 분석하기 전에 많은 것을 상상한다. 그리고 추상적으로 떠오른 것들을 감독님과 이야기 하면서 이미지화 시킨다"라며 "나와 감독님 모두 과거 '희수'에게 다양한 색깔이 있었다면 '색'이 전부 빠진 상태이길 원했다. 감독님께서 '희수'가 연약하지만 내적으로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 했단다. 그리고 그런 부분에서 나와 '희수'가 맞닿아 있다고 느꼈던 것 같다. 무엇보다 '무채색'이기 때문에 얼마나 강해질 지 지켜보는 것이 캐릭터의 매력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너무나 생생하게 담겨진 '가정폭력', 이를 연기하는 배우들의 심리 상태는 어땠을까. 이유미는 "카메라 앞에선 당연히 인물에 이입해야 했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의도적으로 분리 시켰다. 이전 작품에서는 억지로 분리시키려 애쓰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건강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감정적으로 힘든 연기를 할 때면 심리상담 선생님께서 항상 '괜찮냐'고 물어 보셨다. 오히려 나보다 장승조 배우가 힘들어 했다. 선생님 앞에서 계속 한숨을 쉬면서 '이게 진짜 괜찮은 거냐'고 물어보더라. 현실에서는 (폭력이) 더 심하다고 이야기 하셨다"라며 "이번 작품을 하면서 가해자를 연기하는 배우의 스트레스와 고통이 심하겠다고 느꼈다. 평상시와 간극이 큰 장승조 배우를 보면서 존경심이 생기더라"라고 이야기 했다.
극 중 '희수'가 '진표'의 머리를 스노우볼로 내리칠 때, 그녀는 절규한다. 통쾌함이 아닌 다른 감정이 엿보였다. 이유미는 "글로만 읽었을 때는 통쾌할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촬영 당시에는 전혀 그런 느낌이 없었다. 해방 된 기분이 들지 않았다. 연기할 때 에너지 방출량이 굉장히 많았다"고 떠올렸다.
애초에도 가냘픈 배우 중 한명인데 체중도 더 감량했다고 했다. 이유미는 "원래 41에서 42kg 정도인데, 촬영 당시에는 36kg까지 뺐다. 밥을 일부러 굶진 않았다. 마음 편하게 밥을 못 먹고, 긴장 상태를 유지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빠졌다"고 했다.
계속해서 이유미는 '당신의 죽였다'의 원작을 읽지 않고 촬영에 임했다고 말했다. 이유미는 "촬영을 모두 마친 후에 읽었다"라며 "배우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늘 '원작'을 먼저 보지 않는다. 시나리오가 존재하는데 '원작'을 갖고 오는 것이 좋은 걸까 아닐까 고민할 바엔 나중에 읽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다"라고 이유를 들었다.
그러면서 "'당신이 죽였다'는 원작과 결말이 다르다. '희수'로 생각하면 완벽한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희수'스럽게, '은수' 스럽게 끝났다"며 웃었다.
'희수'와 '은수' 곁에 '키다리 아저씨'로 존재한 '진소백'(이무생)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다. 이유미는 "주변에 이런 어른이 있으면 좋겠다고 느꼈다. '진소백'과 같은 캐릭터가 이미지화 돼 보여지는 것이 좋았다. 아마 우리 주변에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인지하지 못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각박한 세상에 한줄기 빛처럼 여겨지는 인물이었다"고 말했다.
앞선 작품에서 폭력 가해자부터, 이번 '당신이 죽였다'에서의 피해자까지, 이유미의 연기 스펙트럼이 재입증 됐다. 그간 어두운 이미지, 밝은 이미지 모두 제 옷을 입은 듯 소화해 낸 이유미다.
특히 이유미는 상황에 맞는 표정, 눈빛 연기가 일품이라는 반응이 많다. 이에 대해 "표정 연습을 따로 하진 않는다. 어렸을 때 연기 스승 한분이 절대 거울보고 연습하지 말라고 하셨다. 어떤 역할을 맡았을 때, 그 표정을 기억해서 만들려고 할 거라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그때부터 거울보고 연습 하지 않았다. 많은 도움이 됐다"며 미소 지었다.
아역부터 배우의 길을 걸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날개를 달았다. '오징어 게임' 이후 제대로 날아올랐다.
이유미는 "주연으로서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 많아지더라. 현장에서의 태도 등 많은 것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라며 "한 작품을 할 때마다 '완벽'하려고 노력한다. 최대한 연기를 잘 해내야 한다는 목표로 임하고 있다"고 했다.
특별히 어떤 역할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했다. 이유미는 "오늘, 내일, 내년 계속해서 생각이 바뀐다. 오늘 기준으로는 딱 제 나이에 맞는, 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며 웃었다.
아울러 "(연기가) 재미있지만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재미와 부담이 동등하다. 그렇지만 그 부담감이 있어서 잘 해내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것 같다.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유미는 "17년차이지만, 계속해서 궁금증을 유발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라며 "어릴 때부터 쉬지 않고 연기하겠다며 엄마를 따라 다녔던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너무 빠르게 흘러갔다. 긴 시간 불안했을 텐데 포기하지 않고 이 길을 걸어가고 있는 자신이 가끔은 뿌듯하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이유미는 "항상 기대해 달라. 다음 작품에서 더욱 성장해서 돌아오겠다"고 다짐했다.
뉴스컬처 노규민 pressgm@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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