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여 명 상대로 사기 친 후 수조 원대 비트코인 챙긴 중국의 '암호화폐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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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여 명 상대로 사기 친 후 수조 원대 비트코인 챙긴 중국의 '암호화폐 여왕'

BBC News 코리아 2025-11-12 19:28:05 신고

안경을 쓰고 빨갛게 염색한 머리를 한 첸즈민의 모습. 베를린의 한 건물 앞에 털이 달린 선명한 파란색 코트를 입고 있다
Metropolitan Police
첸즈민은 경찰의 급습으로 숨겨둔 암호화폐를 발각당하기 전까지 여행, 쇼핑 등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렸다

중국에서 고령의 투자자 수천 명으로부터 빼돌린 자금으로 현재 가치로 수십억파운드 상당의 암호화폐를 구매한 여성이 영국에서 자금 세탁 혐의로 징역 11년 8개월을 선고받았다.

현지시간 11일 샐리-앤 헤일스 판사는 사우스워크 크라운 법원에서 선고를 내리며 이 여성에게 "당신은 범행의 시작부터 끝까지 설계자였으며… 당신의 동기는 순전히 탐욕이었다"고 말했다.

이 여성은 중국에서 도주한 뒤 영국 런던 북부 햄스테드의 저택으로 이사했는데, 그로부터 1년 뒤 런던 경찰청은 이 집을 급습하여 암호화폐를 압수하는 데 성공했다. 단일 사건으로 당국에 압수된 암호화폐로는 전 세계 최대 수준 중 하나다.

첨단 건강 제품을 개발하고 암호화폐를 채굴한다고 홍보하던 이 여성의 기업에 투자한 중국인은 10만 명 이상에 달한다. 그러나 경찰에 따르면 실제로 그가 하던 일은 자금 횡령이었다.

현재 징역형이 선고된 가운데 투자자들은 BBC 월드 서비스에 영국 당국으로부터 최소한 일부 자금이라도 돌려받고 싶다고 했다.

주인이 없이 남겨진 자산은 일반적으로 영국 정부의 소유로 귀속되기에, 일각에서는 이번 비트코인 압수분으로 영국 재무부가 이익을 볼 수도 있다고 추측한다.

해당 사기로 인해 결혼 생활이 파탄 났다는 유 씨(가명)는 "우리가 모든 증거를 모아온다면 영국 정부와 검찰, 고등법원이 연민을 보여주리라 바라고 있다"고 했다.

"지금 우리가 잃은 것 중 일부라도 되찾을 수 있는 건 (압수된) 그 비트코인밖에 없습니다."

이 여성의 정체는 첸즈민(47)으로, 중국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자 2017년 9월 위조 여권으로 영국에 입국했다.

첸은 월세 1만7000파운드(약 3200만원)를 웃도는 런던 북부 햄스테드 히스 변두리에 자리한 저택으로 이사했다. 이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보유한 비트코인 중 일부를 다시 현금화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첸은 부유한 골동품 및 다이아몬드 상속녀로 행세하며, 과거 음식 배달원으로 일했던 어느 남성을 개인 비서로 고용하여 비트코인을 현금이나 부동산 등의 자산으로 바꾸는 일을 맡겼다.

런던 북부 햄스테드의 저택. 흰 기둥이 있는 현관과 붉은 벽돌이 눈에 띄며, 주변에 나무가 심어져 있다
Metropolitan Police
중국에서 도주한 첸은 햄스테드의 이 저택을 임대했다

비트코인 가치가 급등하면서 첸은 자신이 운영하던 회사가 투자자들에게 내세웠던 '누워서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을 현실로 만들 수 있었다. 비서였던 웬젠은 지난해 열린 자신의 재판에서(돈세탁 혐의로 6년 형을 선고받고 마무리되었다) 첸이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 누워 게임을 하거나 온라인 쇼핑을 하며 보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동시에 첸의 일기장에 따르면 그는 대담한 6개년 계획도 세우고 있었다. 메모에는 국제적인 은행을 설립하고, 스웨덴에서는 성을 구입하고, 영국의 한 공작의 환심을 사겠다는 계획 등이 적혀 있었다.

첸이 세운 더 큰 목표는 2022년까지 크로아티아-세르비아 국경에 자리한 미승인 초소국 '리버랜드'의 여왕이 되는 것이었다.

그동안 첸은 비서 웬에게 런던 내 구매 가능한 주택을 찾아보라고 지시했다. 그렇게 사생활이 잘 보호되는 고급 주택 밀집지로 유명한 토터리지 코먼의 대저택을 사들이려고 했으나, 웬이 상사의 재산 출처를 증명하지 못하면서 경찰 수사를 촉발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집 안마당의 모습. 하얀색 조각상과 잘 가꾸어진 식물이 눈에 띈다
BBC
토터리지 소재 저택. 첸이 이 부동산을 매입하려 한 시도가 결국 경찰 수사를 촉발했다

경찰은 햄스테드 소재 첸의 임대 저택을 급습하여 비트코인 수만 개가 저장된 하드라이브와 노트북을 발견했는데, 이는 단일 사건으로 당국에 압수된 암호화폐로는 영국 역사상 최대 규모로 여겨진다.

첸이 고국인 중국에서 돈을 횡령한 기업을 세운 것은 이로부터 불과 4년 전이었다. '란티안 거루이(영문명 '블루스카이 그리트')'라는 이 기업은 투자자들에게 투자금으로 새로운 비트코인을 채굴하거나, 각종 첨단 기술 장치에 투자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영국 경찰은 이는 매우 정교하게 조직된 사기로, 란티안 거루이가 고수익을 약속하며 점점 더 많은 투자자들을 이 사기에 끌어들였다고 본다.

런던 경찰청 형사과의 조 라이언 경장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첸의 연루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얻을수록 … 그가 단순한 하급 조직원이 아니라 이 사기의 리더였음을 알게 됐고 … 첸이 매우 영리하고, 새로운 것들에 밝으며, 매우 교묘하며,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는 능력이 뛰어난 인물임이 분명해졌다"고 했다.

첸의 투자자 중 하나였던 유 씨는 해당 기업이 매일 약 100위안(약 2만원) 정도의 수익을 조금씩 지급해 주었기 때문에 투자에 문제가 있다고 의심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그 덕분에 모두 기분이 좋았다. 심지어 우리에게 돈을 빌려 더 투자할 자신감마저 불어넣었다"는 것이다.

유 씨와 아내의 초기 투자금은 각각 6만위안(약 1235만원) 정도였다. 이들은 앞으로 2년 반 안에 200%의 수익을 낼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다 이들 부부는 투자금을 늘리고자 최대 이자율 8%로 수천파운드 상당의 대출까지 받았다.

게다가 유 씨는 매일 받는 수익금도 이 회사에 재투자했다.

"수익을 재투자해야 한다는 규칙은 따로 없었습니다. 다만 우리는 그 유혹을 견디기엔 너무 나약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꿈을 부풀렸고 … 우리는 모든 자제력과 비판적 판단력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수백 명이 몰린 거대한 행사장. 맨 앞에 무대가 있고, 대형 스크린 2대에서 영상이 나오고 있다
Chinese social media
첸의 회사는 중국에서 기존 및 잠재적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설명회와 연회를 열었다

신규 투자자를 데려올 때마다 투자자들의 일일 수익은 늘어났다. 해당 회사의 공식 홍보 담당자들에 대한 중국 내 재판 기록에 따르면 이로 인해 이 사기는 중국 전역에 걸쳐 약 12만 명에 달하는 투자자들에게 퍼져나갔다.

영국 검찰청 조사 결과, 투자자들이 이 회사에 맡긴 돈은 400억위안(약 8조2300억원) 이상이었다.

이후 해당 회사의 전직 직원은 이 일일 수익금은 암호화폐 채굴 수익이 아닌 신규 투자자들의 자금으로 충당된 것이라고 증언했다.

란티안 거루이는 중국 내 중장년 및 고령층의 고독감을 악용한 마케팅을 펼쳤다. 첸은 사회적 책임감에 대한 시를 쓰기도 했는데, "우리는 첫사랑의 열정 같은 마음으로 노인들을 사랑해야 한다"와 같은 구절을 찾아볼 수 있다. 란티안 거루이는 기존 및 잠재 투자자들을 위한 대규모 휴가 행사와 연회를 열기도 했다.

이러한 행사들은 더 많은 투자 기회를 홍보하기 위한 자리로 이용되었으며, 발표 자료와 카드 결제 기기도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아울러 중국에 대한 애국심을 강조하기도 했는데, 이 또한 고령의 투자자들을 노린 전략이었다.

60대인 유 씨는 "애국심은 우리의 약점이었고, 그들은 바로 그 점을 노렸다"면서 "그들은 우리에게 중국을 전 세계 최고 국가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고 회상했다.

유 씨에 따르면 중국의 건국 아버지인 마오쩌둥 주석의 사위 등 다양한 연사들이 해당 기업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우리 세대라면 모두 마오 주석을 우러러봅니다. 그렇기에 그의 사위가 나와 이를 보증한다면 어떻게 안 믿습니까?"

이 같은 행사에 참석했던 한 투자자와 BBC가 인터뷰한 다른 두 투자자에 따르면 란티안 거루이는 중국 입법부 회의가 개최되는 인민대회당에서도 행사를 열었다고 한다.

유 씨는 "그 (홍보 담당자들은) 붉은 것을 보고도 이것이 하얗다고 설득할 수 있었고, 검은 것을 보고도 붉은 것이라고 믿게 만들 수 있었다"고 표현했다.

이처럼 주목받는 기업을 이끌고 있음에도 첸은 비밀스럽기로 악명 높았고, 투자자들에게는 '작은 꽃'이라는 뜻의 '화화'로만 알려져 있었다. 고객들과는 주로 블로그에 올리는 시를 통해서만 소통했다.

그러나 600만위안(약 12억원) 이상 투자한 대형 투자자들은 더 쇼규모 행사에 초대하여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는 게 투자자 리 씨의 설명이다. 리 씨 또한 이러한 대형 투자자 중 하나였다.

"그 자리에 참석한 우리 모두 완전히 매혹당했다"는 리 씨는 "우리는 그를 재물의 여신으로 여겼다"고 했다.

"첸은 우리에게 더 큰 꿈을 꾸라고 독려했습니다 … 3년 안에 3대가 살 수 있을 만큼의 부를 주겠다고 약속했죠."

리 씨와 그의 아내, 동생은 약 1000만위안을 투자했다.

다뉴브 강과 저 멀리 보이는 리버랜드의 모래사장
Alamy
첸은 다뉴브강 서쪽에 자리한 면적 7㎢짜리 무인 늪지대인 리버랜드의 여왕이 되고자 했다

그러던 2017년 중반, 중국 경찰이 란티안 거루이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면서 첸의 사기극도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유 씨는 "(일일 수익금) 지급이 갑자기 중단되었다"면서 "회사는 경찰이 일부 사안을 조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그러면서도 곧 수익금 지급이 재개될 것이라고 약속했다"고 회상했다.

이렇듯 초기에 투자자들이 침착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유 씨는 회사 관리자들이 나서 일시적인 차질일 뿐이라며 직접 경찰에 신고하지 말라고 설득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유 씨는 첸이 이러한 고위 관계자들에게 돈을 건네 투자자들의 우려를 잠재우는 동안 돈을 챙긴 채 영국으로 도주했다는 사실을 이후 중국 법원 소송을 통해서야 알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첸이 투자자들을 완전히 외면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일기에는 비트코인 1개당 가격이 5만파운드를 넘으면 중국에서 진 빚을 갚겠다는 계획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일기에서 드러난 분명한 최우선 과제는 리버랜드 개발 및 통치였다. 이 프로젝트에 수백만 파운드를 할당할 정도였다.

한편 지난 4월 잉글랜드 북부 요크에서 결국 체포된 첸은 모든 혐의를 부인하며 자신은 중국 정부의 암호화폐 기업인 단속을 피해 도피 중이었을 뿐이라고 주장하며, 중국 경찰이 제시한 증거에도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올해 9월 열린 재판에서 기존 예상과 달리 첸은 암호화폐 불법 취득 및 소지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리 씨는 BBC에 이 일이 피해자들에게는 "한줄기의 햇빛"과도 같았다고 말했다.

첸이 영국에 들여온 암호화폐의 가치는 영국 입국 이후 20배 이상 증가했다. 이 암호화폐의 운명은 내년 초 본격적으로 시작될 "범죄 수익" 민사 소송에서 결정될 전망이다.

피해자를 대리하는 두 법률사무소의 변호사들에 따르면, 중국 투자자 수천 명이 해당 소송에 참여할 계획이다.

그러나 피해자를 대리하는 한 중국인 변호사는 익명을 조건으로 BBC에 이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우선 투자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입증해야 하는데, 많은 경우 회사에 직접 돈을 송금하지 않고 현지 홍보인 계좌를 통해 전달했다.

아울러 피해자들이 승소한다고 해도 원금만 회수하게 될지, 아니면 비트코인 가치 상승분까지 반영한 금액을 받게 될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다른 '범죄 수익금' 사건과 마찬가지로, 이 과정을 거친 후 남은 자금은 영국 정부의 소유로 귀속된다. BBC는 영국 재무부에 이 자금에 대한 계획이 있는지 문의하였으나, 답변받지 못했다.

한편 지난달 영국 검찰청은 이 민사 소송에서 대리인을 선임하지 않은 이들을 위한 보상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BBC가 이 대안적 보상안에 요구되는 증거 수준을 문의했으나, 현 단계에서는 세부 내용을 밝힐 수 없다고 한다.

한편 아내와 함께 이 회사에 투자했던 유 씨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금전적으로 손실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이후 이혼도 하고 아들과의 관계도 소원해지는 등 개인적인 고통까지 입었다고 토로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상대적으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한 변호사는 "첸의 투자자 다수가 식비나 약값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유 씨 또한 이러한 피해자를 알고 있다. 중국 북부 톈진 출신의 이 여성은 병원비를 낼 돈이 없어 결국 스스로 퇴원했고,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죽음을 눈앞에 둔 이 여성은 제가 글을 쓸 줄 아는 사실을 알고 만약 최악의 상황이 오면 자신을 위한 비가를 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유 씨는 이 약속을 지키고자 이 여성을 추모하는 마음을 담아 온라인에 시를 올렸다.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다.

"우리는 기둥이 되어 하늘을 떠받치리. 양처럼 휩쓸리고 속아 넘어가지 않으리. 살아남은 자여, 더욱 힘껏 투쟁하라. 이 중대한 불의를 바로잡을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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