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산책길에서 낙엽 더미가 바스락거리며 움직이는 걸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대부분은 바람 때문이지만, 가끔은 그 안에 살아 있는 생명이 숨어 있다. 작고 둥근 몸에 뾰족한 털을 세운 고슴도치다. 낮엔 모습을 감추고 밤이 되면 숲속을 돌아다니는 이 동물은, 가을이 되면 낙엽을 모아 둥지를 짓고 겨울잠을 준비한다.
뾰족한 털, 방어를 위한 갑옷
고슴도치의 몸에는 약 6000개에서 7000개의 가시가 촘촘히 박혀 있다. 이 가시는 털이 변형된 것이다. 처음부터 단단한 뼈가 아니라, 모근에 단백질이 굳어 생긴 구조다. 털처럼 자라지만 길이가 길고 끝이 뾰족하다. 위협을 느끼면 등 근육을 수축시켜 가시를 세우고 몸을 둥글게 말아 적을 피한다.
이 행동은 천적이 가까이 다가왔을 때 자동으로 일어난다. 뱀이나 족제비, 들고양이 같은 포식자도 이런 자세를 보면 쉽게 공격하지 못한다. 몸을 둥글게 만 채 ‘공’처럼 고정해버리면, 가시 끝이 사방으로 향한다. 다치지 않으려면 포식자 입장에선 물 수도, 잡을 수도 없다.
이 가시의 또 다른 역할은 체온 조절이다. 공기층을 만들어 추운 날씨에 열 손실을 줄여준다. 여름엔 가시 사이로 공기가 순환돼 더위를 막는다. 보기에는 위협적인 모습이지만, 사실상 몸을 보호하고 체온을 유지하는 다기능 갑옷이다.
고슴도치는 몸 전체가 가시로 덮여 있지만, 배 부분은 부드럽다. 위험을 느낄 때 몸을 말아 배를 숨기면 노출된 부위가 사라진다. 이런 완벽한 방어 자세는 고슴도치가 야생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다.
어디서 살고, 한국에선 어디서 볼 수 있나
고슴도치는 유라시아 전역에 서식한다. 한국에서는 주로 평지와 낮은 산의 숲, 풀밭, 하천 주변에 산다. 서울 근교에서도 관찰된 적이 있고, 충청과 전라 지역 농가 주변, 경남의 완만한 야산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야행성이라 낮에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돌무더기 아래, 쓰러진 통나무 밑, 마른 풀더미 속에 숨는다. 밤이 되면 먹이를 찾으러 나온다. 청각이 발달해 작은 벌레나 지렁이의 움직임을 소리로 감지한다.
먹이는 주로 곤충, 달팽이, 지렁이, 민달팽이, 개미알 등이다. 간혹 열매나 버섯도 먹는다. 정원이나 밭에 나타나 해충을 잡아먹기 때문에 생태계에 도움이 되는 존재다.
고슴도치는 후각도 예민하다. 먹이 냄새를 맡으면 혀로 핥아 침을 바르는데, 이 행동은 ‘자기 냄새 위장’으로 알려져 있다. 침에 있는 체취로 몸의 냄새를 감춰 천적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다.
한국에서는 중부지방보다 남쪽에서 자주 발견된다. 특히 밤 기온이 낮은 지역보다 온화한 남해안, 섬 지역에 더 많다. 인가 근처 쓰레기장이나 밭둑에서도 목격되는 이유는 먹이를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 근처에서도 살 수 있는 적응력이 높아, 최근 몇 년 사이 관찰 빈도가 늘었다.
낙엽 더미 속 겨울잠, 생존의 기술
고슴도치는 추위에 매우 약하다. 가을이 깊어지면 먹이를 충분히 먹고 지방을 비축한 뒤, 낙엽을 모아 겨울 둥지를 짓는다. 보통 10월 말부터 11월 사이가 준비 시기다. 마른 낙엽과 풀잎을 입으로 물어다 둥글게 쌓고, 그 안에 몸을 말고 들어간다.
둥지는 대부분 덤불 속이나 돌무더기 아래, 혹은 통나무 그늘 밑에 만들어진다. 겉에서 보면 낙엽이 쌓인 흔한 무더기 같지만, 안쪽은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다. 내부 온도가 유지되도록 층층이 단열 구조를 만든다. 눈이 내리는 한겨울에도 둥지 안은 영상 상태로 유지된다.
겨울잠에 들어가면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고 심박수가 느려진다. 평소 분당 200회 이상이던 심장이 20회 안팎으로 줄고, 호흡도 거의 멈춘 듯 느려진다. 하지만 생명 활동은 완전히 멈추지 않는다. 몸속 지방이 천천히 연소되며 에너지를 공급한다. 이 상태로 약 4개월을 보낸다.
3월이 돼 날씨가 풀리면 둥지를 벗어난다. 깨어난 직후에는 탈수와 허기로 움직임이 느리다. 물을 찾아 다니고, 곧 먹이를 구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다시 생태의 한 주기가 이어진다.
사람이 낙엽 더미를 정리하거나 태울 때, 그 안에 고슴도치가 있을 수 있다. 마른 낙엽 속에서 약간의 움직임이나 둥근 형태가 느껴진다면 그대로 두는 게 좋다. 둥지를 파괴하면 고슴도치는 새 은신처를 찾아야 하고, 이동 중에 체온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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