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시절 임명된 김영섭 KT 대표가 연임을 포기하면서 KT 내부에서 대대적인 인사 변화가 일어날 것이란 관측이 커지고 있다. 특히 윤석열 정부의 입김 아래 임원직에 오른 것으로 알려진 주요 인사들이 조기 사임하거나 교체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KT는 '주인 없는 민영화 기업'이라는 특수한 지배구조 탓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고위 인사에 정치권의 영향이 작용해 왔다.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주요 임원이 대거 교체되며 '정권 코드 인사' 논란이 반복된 셈이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닐 것이란 전망이 통신업계 안팎에서 나온다.
5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김영섭 KT 대표는 최근 연임 포기 의사를 공식화했다. 그의 임기는 내년 3월 주주총회 이후 종료될 예정이다. KT 이사후보추천위원회는 이미 차기 대표이사 선임 절차를 개시했으며, 후보군 구성 논의에 착수했다. 대표이사 공개 모집은 16일 오후 6시까지 진행된다.
김 대표의 연임 포기 결정은 정권 교체 이후 이뤄진 인적 쇄신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업계 안팎에선 윤석열 정부 시절 색채가 짙은 인물들이 정리되는 과정의 신호탄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 대표를 시작으로 윤석열 정부 코드 인사들이 연쇄적으로 물러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KT는 과거에도 정권 교체기마다 정치적 입김이 작용해 왔다.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정권 실세와 가까운 인사'가 임원에 대거 포진했고,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친여 코드 인사' 논란에 휩싸였다. 윤석열 정부에서도 검사 출신 인사들이 요직에 앉으면서 낙하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현재 KT 내부에서 차기 인사 구조 개편의 핵심 변수로 꼽히는 인물은 이용복 법무실장(부사장)이다. 그는 2023년 11월 30일 선임된 검사 출신 인사로 KT 내에서는 대표적인 '윤석열 코드 인사'로 분류된다. 2016년 '국정농단 특검'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함께 수사에 참여한 경력이 있으며, 이 인연이 발탁 배경으로 거론됐다. 실제로 이 부사장 선임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온 동네가 검사 천지"라며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2023년 11월 선임된 임현규 경영지원 부문장(부사장)도 친윤 인사로 지목된다. 그는 윤 전 대통령과 직접적 인연은 없지만 검사 출신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 선거캠프에서 홍보 담당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진보진영에서는 윤석열 정부 인사 상당수가 친이명박계 출신이라는 점을 들어 임 부사장 역시 보수정권 코드 인사로 분류하고 있다. 그는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에도 KT 비즈니스서비스 추진실 부사장으로 임명된 이력이 있다.
이 밖에도 지난해 1월 선임된추의정 감사실장(전무)과 허태원 컴플라이언스추진실장(상무)이 윤석열 정부의 영향권 안에서 임명된 인사로 지목받고 있다. 추 실장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와 대검찰청 검찰연구관을 지냈고, 허 실장 역시 서울중앙지검 공안부 검사 출신이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김영섭 대표 체제 이후 검사 출신 인사들이 잇따라 주요 요직에 임명됐다"며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검찰 권력이 아니라 소비자와 시장"이라고 비판했다.
윤석열 정부 코드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안창용 엔터프라이즈부문장(부사장) 역시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안 부사장은 1991년 입사한 정통 KT맨으로 호남무선네트워크운영단장·액세스전력담당·경북광역본부장 등 주요 직책을 두루 거치고 2023년 11월 부사장으로 선임됐다. 그러나 김영섭 대표의 핵심 라인으로 분류되면서 차기 체제에서 거취가 불투명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그는 KT새노조와 오랜 갈등 관계에 있다. 새노조는 안 부사장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직원 전출을 강요했다며 정치권에 그의 해임을 요구하고 있다. 새노조 관계자는 "김영섭 사장과 안창용 부사장은 인력 재배치 과정에서 전출 명단을 직접 관리하며 사실상 강제 전출을 유도했다"고 주장했다. "안 부사장이 업무 불이익을 암시하며 직원들에게 압박을 가했다"는 구체적 폭로도 나왔다.
통신업계 안팎에서는 "김영섭 대표의 연임 포기가 단순한 개인 선택이 아니라 정권 교체에 따른 '인적 물갈이' 신호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정권의 영향력이 민영화 기업의 인사 시스템에까지 미치는 구조적 문제를 KT가 반복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전문가들은 KT의 낙하산 인사 관행을 근절하지 않으면 기업의 전문성과 시장 신뢰가 더 크게 훼손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정치권 개입 인사는 전문성보다 네트워크 요인이 우선시되는 경우가 많다"며 "결국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조직의 혁신을 지연시킨다"고 지적했다. 그는 "통신·AI·클라우드 등 기술 혁신이 가속화되는 시기일수록 정치적 고려보다 산업 전문성과 시장 감각을 갖춘 인재를 선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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