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는 색에 대한 진심으로 빛납니다. 루비, 에메랄드를 비롯한 전통적인 보석뿐 아니라 다채로운 색의 원석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조합하기로 정평이 나있죠. 이런 대담하고 과감한 접근은 미학적, 기술적 모험을 넘어 불가리가 고유한 미학을 쌓아온 방식이자 철학 그 자체와 다름없는데요. 이번 가을 다채로운 색채의 철학이 도쿄 한복판에서 웅장하고 황홀하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불가리와 도쿄 국립 미술관은 불가리의 고유한 색채 세계를 조명하는 전시 ‘불가리 칼레이도스: 색, 문화, 그리고 공예’를 개최했습니다. 오는 12월 15일까지 이어지는 전시는 약 350점에 이르는 하이 주얼리, 아카이브 그리고 현대 예술 작품을 한 공간에 응축해 불가리의 140년 색채 여정을 압축적으로 밀도 있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시명 ‘칼레이도스(Kaleidos)’는 아름다움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칼로스(kalos)'와 형상을 뜻하는 '이도스(eidos)'에서 비롯됐습니다. 즉 끊임없이 변화하는 색과 형태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창의성을 상징하는데요. 이름처럼, 전시는 색을 중심으로 시대를 따라 진화해온 불가리의 미학을 선명하고 생동감 있게 보여줍니다. 19세기 후반 실버 공예에서 출발해 20세기의 대표 컬렉션 그리고 동시대 아티스트의 작품까지, 하나의 동선 안에서 불가리의 DNA이자 정체성과 다름없는 색채의 향연이 시간과 문화를 가로질러 펼쳐진 것이죠.
직접 전시장을 걸으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빛의 온도였습니다. 조명 아래 작품이 반사하는 색의 결은 단순히 보석의 빛깔을 넘어 감정의 파장을 만들어내더군요. 한쪽에서는 전통적인 루비와 사파이어가 불가리의 클래식을 대변하고, 다른 공간에서는 자연이 선사한 경이로운 젬스톤이 색채의 자유를 선언하듯 반짝입니다. 도쿄 국립 신미술관의 방대한 공간을 채운 컬러풀한 마스터피스는 불가리가 오랜 세월 동안 얼마나 정교하게 색을 다뤘는지 자신 있게 내비칩니다.
불가리의 색채 혁명은 사실 오래전부터 널리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창립자 소티리오 불가리의 초기 작품부터 색에 대한 매혹과 매력이 짙게 베어 있는데요. 20세기에 들어서며 불가리의 컬러풀한 행보가 본격화됐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가 색채 예술의 중심지로 거듭난 와중에 1950년대 불가리는 옐로 골드에 사파이어, 루비, 에메랄드, 다이아몬드를 조합한 대담한 디자인을 선보였죠. 당시 ‘규범적’이라 여겨지던 하이 주얼리의 경계를 흔들고 컬러 주얼리의 새로운 장을 펼친 순간이었는데요. 이후 불가리는 준보석으로 여겨졌던 아메시스트, 시트린, 튀르쿠아즈 등의 스톤을 과감히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브랜드 시그니처인 카보숑 컷을 통해 그 색채의 깊이와 강도를 끌어올렸고요. 이러한 두려움 없는 색채 미학은 불가리 스타일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고, 당시 장식으로 여겨졌던 컬러가 불가리 세계 안에서 언어로 거듭났죠.
전시 ‘불가리 칼레이도스: 색, 문화, 그리고 공예’는 그러한 역사와 변화를 한눈에 보여주는 시각적 논문처럼 구성됐습니다. 하이 주얼리, 불가리 헤리티지 컬렉션, 현대 예술 작품, 몰입형 설치물 등으로 구성된 세 개의 챕터는 불가리의 색을 중심으로 기술과 감정, 전통과 혁신이 교차하는 만화경 같은 여정으로 관람객을 안내하는데요. 그 안에서 서로를 비추는 찬란하고 생동감 있는 색채들은 수많은 문화와 시간, 장인의 손끝이 만들어낸 스펙트럼인 셈이죠.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는 불가리의 과거를 기리는 회고전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보다 더 깊고 넓은 의미를 지녔는데요. 불가리 CEO 장 크리스토프 바뱅은 “불가리는 언제나 색채가 이야기를 전달하고 시간을 초월하는 힘을 지닌다고 믿어왔습니다. 이번 전시는 불가리의 유산을 기념하는 특별한 무대로 브랜드의 색채 여정에 있어 또 하나의 새로운 장을 여는 계기”라고 전했죠. 이 말처럼 전시는 아카이브 회고의 수준이 아니라 색을 통해 문화적 유산과 장인 정신을 재해석하는 현재 진행형의 선언에 가깝습니다. 더 나아가 미래를 향한 불가리의 태도와 여전히 변화하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데요. 불가리는 앞으로도 변함없이 그 빛과 같은 언어로 말을 건넬 것입니다. 낭랑하고 다채롭게.
Copyright ⓒ 엘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