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물로 시작해 물로 끝나는 오아시스의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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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물로 시작해 물로 끝나는 오아시스의 문명

월간기후변화 2025-10-10 09:23:00 신고

▲ 이란 유목민들이 생활하는 자그로스 산맥의 봄,여름,가을,겨울    

 

자그로스 산맥의 봄과 함께 유목의 계절이 열리면 이란 유목민의 하루는 물에서 시작해 물에서 끝난다.

 

장남 압신은 나귀와 함께 마을 공동 우물까지 편도 30분을 걸어 생명수를 길어오고, 해가 기울면 다시 같은 길을 되돌아간다.

 

휴대전화와 전기가 닿지 않는 곳에서 그들의 살림은 이동을 전제로 최소화되어 있고, 명절에만 꺼내 입던 전통의상은 손님을 위한 최고의 예복이 된다.

 

비둘기가 축복과 풍요의 상징으로 지붕에 깃들고, 갓 태어난 새끼 양과 염소가 모여 있는 ‘어린이집’은 봄의 풍요를 말해준다.

 

자연은 혹독하지만 살 길 또한 함께 준다. 석양이면 하디즈의 손길이 염소젖을 받아낸다. 갓 짠 젖은 곧장 걸러 끓여 소독하고 치즈와 버터로 바뀌어 겨울의 식량이 된다. 불가한 것을 버티는 일은 모닥불과 별빛이 돕는다.

 

전기 대신 불빛과 별빛이 마을을 밝히고, 수천 년을 오간 별들이 유목의 길을 지켜본다. 산을 내려오면 시인과 꽃의 도시 시라즈가 기다린다.

 

이맘 자만 탄신일 축제의 인파는 손님을 신의 선물로 여기는 이란 특유의 환대를 증명하고, 안내자 모하메드는 하루 일정을 비워 손님을 모신다. 나시르 알 물크, 이른바 핑크 모스크의 벌집 천장과 오색 스테인드글라스는 겨울 햇살과 만날 때 ‘빛의 정원’으로 변하고, 나란제스탄 정원과 거울의 방은 상류층의 심미안과 페르시아 장식의 극치를 보여준다.

 

시내의 팔루데 가게에서 맛본 2천 년 전 디저트는 장미수와 전분 면발이 만든 오래된 달콤함으로 여행의 시간을 거슬러 올려놓는다. 도시를 벗어나면 사막과 산이 펼쳐진다. 가르메의 전통가옥은 정원과 분수를 집의 중심에 둔다.

 

사막에서 물은 곧 낙원이기에, 사람들은 낙원의 조각을 집 안으로 들여놓는다. 그 낙원을 가능케 한 것이 카나트다. 수천 개의 수직갱과 지하수로로 이루어진 카나트는 증발을 피하고 중력만으로 물을 끌어오는 사막 공학의 결정체다.

 

자연 오아시스가 마르지 않는다는 마을의 신화는, 닥터피쉬가 발목을 간질이는 오후의 평화와 더불어 지금도 이어진다. 메스르 사막은 소금사막과 모래능선이 맞부딪히는 장관을 연출한다. 눈처럼 하얀 소금 평원 위에 뜨는 신기루, 달빛과 불빛이 만들 소금폭포의 반짝임, 가족이 수박과 고기를 나누는 소풍은 ‘어디든 사람이 오아시스’라는 진리를 확인시킨다.

 

지프로 들어간 중앙사막의 터그 나무는 사막 확장을 붙드는 최후의 방벽이며, 뜨거운 모래를 건너며 마신 한 모금 물은 명상 그 자체다.

 

부쉐르의 소금산과 소금동굴은 대지의 시간이 빚은 조형물이다. 흑색과 백색이 섞인 소금의 결 정맥, 호흡기에 좋다는 믿음이 전해진 동굴의 서늘함, 한 줄기 빛이 암흑을 가르는 순간은 사막의 엄혹함과 관용을 동시에 증언한다. 카르카스 산의 붉은 마을 아비아네는 조로아스터교 전통을 지키기 위해 외부와 문을 닫고 살아온 사람들의 시간 저장고다.

 

바람을 꺾는 지그재그 골목, 꽃무늬 자비를 입은 할머니의 홍차와 말린 무화과, 바람 많은 마을을 위한 생활기술은 공동체의 지혜가 얼마나 세밀한지 보여준다.

 

동굴마을 메이만드는 1만 2천 년 전의 생활 흔적을 품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낮은 문을 굽혀 들어가면 사람이 파 만든 방과 검게 그을린 벽이 시간을 말하고, 카나트를 끼고 발달한 대중목욕탕은 ‘사막에서 매일 목욕’이라는 역설을 가능케 했다.

 

라자비 가족의 유목은 봄·여름·가을·겨울을 따라 평야–산–고향으로 순환하며, 목동 마하드의 호령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양떼는 목축경제의 규율을 보여준다. 카샨은 장미수 ‘골랍’의 도시다.

 

해뜨기 전 수확한 장미가 구리솥 증류기를 타고 향기의 액체로 변하는 데 4시간, 2천 5백 년 이어진 공법은 전통이 기술임을 증명한다. 카시 파나크 바자르의 빵집 화덕과 페르시아 카펫, 핀 정원의 사각 수로와 분수는 사막 위에 만든 물의 기하학이다.

 

아미르 카비르가 암살된 목욕탕은 근대화 개혁의 비극을 아우르고, 채광창의 렌즈는 어둠으로 빛을 끌어들이는 페르시아식 해법을 상징한다. 야즈드는 버드기르가 더위를 식히는 천연 에어컨의 도시다.

 

자메 모스크의 터키석 타일과 소리 울림 구조, 나흘로의 행렬, 주르카네에서 전쟁 무기를 본뜬 운동으로 단련하는 전통 체육은 종교·공학·무예가 한 도시에서 공존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테헤란은 ‘재료 소진 시 마감’하는 맛집의 규율, 쌀과 닭을 겹겹이 구운 디오지의 누룽지, 바자르의 푸른 그릇이 상징하는 천국과 생명의 색으로 이 여정을 닫는다. 이렇게 유목의 천막에서 제국의 석재, 사막의 수로에서 도시의 바자르까지, 이란의 삶은 물을 둘러싼 공학과 신앙, 환대와 기술, 기억과 공동체가 한데 엮인 거대한 오아시스 문명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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