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백향의 책읽어주는 선생님'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페니키안 스킴> 을 봤다. 가볍게 감상의 수준으로 휘리릭 보려고 했는데, 역시나 이 영화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그동안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가 그랬듯이, 화면의 미장센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예쁜 것들이 역시 질서 안에서 꽉 짜여있다. 인물의 도덕성이나 서사로 판단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형식으로 새로움을 찾아내는 즐거움이 만발한 영화다. 그래서 구성의 면밀함을 찾아보는 재미가 크다. 페니키안>
사업가 자자코다는 죽지 않는다. 자꾸 살아나는 핑크팬더처럼. 암살의 위험 속에서도 페니키안 스킴의 자금 갭을 채우기 위해 수녀였던 딸과 함께 페니키아 곳곳을 찾아다닌다. 어디서 본 듯한 캐릭터, 스토리, 1950년대 시대적 코드들의 익숙하면서도 낯선 느낌이 흥미롭다. 감독의 이야기를 읽어보니 모든 인물과 사건에는 모티브가 존재했다. 그래서 그인물과 장소, 소품을 보면 떠오르는 것들의 이미지를 통해 중의적 의미들을 들여다보게하는 방식이다.
음악에 조예가 깊은 사람의 시각으로는 스트라빈스키, 바흐의 곡을 사용해서 음악이 보이는 영화라고 한다. 하지만 내 눈에는 쿠키 영상에도 나온 르느와르나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처럼 미술 작품들이 잘 보였다. 실제 작품들을 대여해서 촬영했다고 한다. 이렇게 치밀한 구성이었다니 알수록 더 놀라운 방식이다. 신발 상자에 꾸며진, 마치 문단나누기 한 것처럼 내용을 클리어해가는 로드무비 방식도 재미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줄기는 아버지와 딸,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근본 서사로 다룬다는 것. 돈버느라 무심했던 아버지는 딸과의 기이하고도 낯선 여정을 통해 관계를 회복해가는 따뜻한 서사가 좋았다. 둘의 닮은 점도 많았지만, 책을 읽는 장면들이 많은 것도 특별해 보였다. 죽음이 바로 옆에 있는 순간에도 책을 읽으며 소신을 쏟아낸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일생에서 영향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를 드러내는 것 같다. 부모의 부당하고도 편파적인 양육태도와 누구를 만나는가. 무엇을 읽는가 등.
1950년대 소품들이나 의상도 여전히 멋지고 말이다. 톰 행크스, 베네딕트 컴버배치, 스칼렛 요한슨, 샬롯 갱스부르 같은 주연급 배우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등장했다 빠지는 것도 멋지다. 좌우대칭의 화면 구도에서도 틈틈이 변주되는 장면, 우화적으로 표현하는 자극적인 사건들, 정치 종교 경제 같은 사회적 문제들을 품은 채로 말이다.
구석구석 하나씩 끄집어 할 수 있는 이야기도 많고, 큰 덩어리로 던지는 질문도 풍부한 다층적 영화다. 그래서 내가 찾아낸 것들을 쓰려면 너무 많아지고, 그래서 그만 쓰기로 하지만 아쉬운 것도 웨스 앤더슨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감상이다. 누구와 밤새워 실컷 이야기 나누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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