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 위의 사랑
고통을 끌어안은 채 서로를 위무하는 존재들을 그린 영화 〈봄밤〉.
사람들이 죽은 듯 뒤엉켜 쓰러진 어느 결혼식 뒤풀이 자리. 한 여자가 계속 소주를 들이켠다. 남자는 한 마디 않은 채 멀뚱히 눈만 끔뻑인다. 알코올 기운에 혼곤한 여자를 업어 바래다주는 것이 이들의 시작. 류머티즘 환자 수환과 알코올 중독 환자 영경. 각자만의 결핍을 지닌 채 삶의 의지를 찾지 못한 시기, 두 사람은 만나게 된다. 만남과 동시에 송두리째 운명이 뒤흔들리는 서사를 따르는 여느 멜로 영화와 달리, 둘은 서로를 구원하기는커녕 그저 함께 존재할 뿐이다.
제75회 베를린영화제 초청작이자 최근 무주산골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영화 〈봄밤〉. 소설가 권여선의 〈안녕 주정뱅이〉 속 동명의 단편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갸륵한 마음을 주고받는 둘의 대화로 메워진 소설과 달리, 시종일관 고요하고 처절한 장면들로 두 사람의 모습을 그려낸다. 원작에서 영경과 수환이 마흔셋에 서로를 만나 10여 년의 세월이 흐를 동안 함께해온 배경을 지닌 반면, 영화는 시간의 흐름을 명확히 알 수 없이 주로 긴 밤의 장면을 느린 호흡으로 보여준다. 그 사이 수환의 관절은 점점 뒤틀리고, 영경의 중독은 나아질 기미가 없다. 수렁에 빠져가는 서로를 곁에서 지켜볼 뿐이다. 영화에서 슬픔은 주로 밤의 이미지로 발현된다. 그러다 어느 대낮 수환이 영경에게 다가가는 장면에서 슬픔은 증폭된다. 둘의 모습은 너무도 애달프고 처절해서 더 아름답다.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마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마라.” 극 중 영경은 시인 김수영의 시 ‘봄밤’을 주술처럼 왼다. 상대에게 바라는 것 없이, 슬픔에 몸부림치는 것도 없이. 이런 사랑도, 삶도 있다고 선언하는 것만 같다. 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위안이 될 수 있는 사랑. 들뜨는 여름밤과는 확연히 다른 침잠하는 봄밤의 이미지들이 지나고, 영화를 보고 나면 수환의 등에서 내보이는 영경의 엷은 미소가 내내 생각난다. ‘인생에 남은 행운’을 한 존재에서 찾은 듯이 웃던.
※ 영화 〈봄밤〉은 7월 9일 개봉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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