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한 줄 평
“섬 그늘에서 홀로 언어를 가지고 놀다가 미모사 잎사귀를 건드려, 그만 그리움을 불러내다.”
▲시 한 편
<공갈빵을 먹는 아침> - 변종태
노릇노릇 공기가 익어 간다
자신을 속이고 뜨거운 입김으로 타인을 속이고
불안한 단단함에 안으로 채워지는
간밤 부푼 꿈은 아침이면 바삭하게 부서진다
꿈은 뜯어 먹는 게 아니야
부숴 먹어야 하는 거야
부숴서 그 안에 든 공기만 먹는 거야
얄팍한 껍질에 싸여 잠시 내 꿈에 왔다가
쓴 커피 한잔 곁들인 채 부서진다
역시 공갈은 달달해야 제맛이지
황홀경에 빠진 채 속는 줄도 모르고
공갈이여 영원히
부서지지 말기를
바삭한 껍질에 쌓여 뜨거운 공기로 채워진
공갈일지라도 달콤하기를
간밤 꿈속을 다녀간 흐릿한 실루엣의 여인이여
이 아침에 맛보는 공갈의 달콤함이
부서지지 말기를 부디
공갈만큼만 달콤하기를
▲시평
이 시는 “간밤 꿈속을 다녀간” 여인에 대한 황홀과 허망을 공갈빵에 빗대어 노래하고 있다. 시인은 아침에 커피 한잔과 공갈빵을 먹으며 간밤 꿈을 생각한다. 꿈에 나타난 여인의 실체는 선명하지 않고 “흐릿한 실루엣”으로 남아 있다. “뜨거운 입김”과 “황홀경”, 불안한 마음으로 보아 야릇하지만, 무언가 불순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은근슬쩍 죄의식과 속았다는 생각도 드러낸다. “노릇노릇 공기가 익어 간다”는 건 꿈속에서 여인과 분위기가 좋았다는 의미다. 하지만 잠에서 깨어나자 꿈의 여운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허망함이 몰려온다. “간밤 부푼 꿈”이 공갈빵으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다. 꿈을 꾸고 일부러 공갈빵을 먹는 상황인지, 아니면 공갈빵을 먹다가 간밤 꿈과 연결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공갈빵은 겉으로 보기에는 빵빵한데 속에는 공기만 가득 들어있다. 빵도 아닌 바삭한 과자다. 이름 그대로 거짓도 아닌 공갈, 윽박지르고 을러대는 모양새다. 간밤 여인에 대한 꿈도 이와 다르게 없다. 꿈속의 여인도 현실에선 만날 수 없는, 공갈빵 안의 공기처럼 실체가 없다. 가장 먼저 “자신을 속이고 뜨거운 입김으로 타인을 속이”는 것도, “바삭하게 부서”지고 마는 것까지 서로 닮았다. 실속은 없고 허세만 가득하다. 뜯는 건 형체가 변화하는 것이지만, 부서지는 건 형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전자는 현실이고, 후자는 이상이다. 공갈빵 안의 공기를 맛보는 것과 꿈속 여인의 “황홀경”에 빠지는 상황이 일체화하는 것으로 허망은 극대화된다. 시인은 비록 공갈일지라도 “아침에 맛보는 공갈의 달콤함이/ 부서지지 말기를”,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것을 꿈에서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욕망을 드러내지만, 일장춘몽일 뿐이다. 더도 아닌 “공갈만큼만 달콤하기를” 원한다는 것은 시인도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는 말이다. 다만 한밤의 여운과 “공갈의 달콤함”을 즐길 따름이다. (김정수 시인)
▲김정수 시인은…
199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사과의 잠』 『홀연, 선잠』 『하늘로 가는 혀』 『서랍 속의 사막』과 평론집 『연민의 시학』을 냈다. 경희문학상과 사이펀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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