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안중열 기자] 미래에셋증권이 증권업 밸류에이션의 공식을 새롭게 쓰고 있다. 디지털 원화 기반의 스테이블코인 ‘KRWX’ 상표 출원 이후 주가는 반년 새 3배 가까이 뛰었고, 국내 증권사 최초로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를 돌파했다. 단순한 테마 장세가 아니다. 시장은 이를 ‘디지털 발행력’과 플랫폼 장악력을 기준으로 기업가치를 다시 쓰는 신호로 읽고 있다.
증권가 관계자는 “과거 증권사의 밸류는 ‘브로커리지 수익률’이나 ‘순자산 배수’로 단순 계산됐다”며 “이제는 ‘자산의 디지털화와 통제 가능성’이 중요한 프리미엄 요소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KRWX, 플랫폼 신호로 읽히다
지난 5월, 미래에셋컨설팅은 ‘KRWX’와 ‘KRWM’이라는 이름의 디지털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특허청에 상표 출원했다. 공식 백서도, 발행 일정도 없던 초기 단계였지만, 자본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미래에셋증권의 주가는 급등했고, 지난해 말 0.3배 수준이던 PBR은 단숨에 1배를 돌파했다. 시가총액은 13조원을 넘어섰다.
단순한 상표 출원 하나로 주가가 뒤집힌 배경에는, 시장이 ‘KRWX’를 단순한 코인 명칭이 아닌 디지털 금융 플랫폼 전략의 신호로 해석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기존에는 순자산, 브로커리지 수익, 운용 실적 등 실적 중심 지표가 증권사 가치의 기준이었다면, 이제는 디지털 자산 발행력과 플랫폼 연동성이 새로운 가치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 증권사 IPO 담당 임원은 “KRWX는 단순한 스테이블코인 명칭이 아니라, 미래에셋이 설계 중인 디지털 금융 플랫폼의 ‘운영체제(OS)’로 해석된 것”이라며 “시장은 이 신호를 정확히 읽었고, 주가에 그 기대가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스테이블코인, 금융 OS로 진화
스테이블코인은 법정통화에 1:1로 연동돼 가격 안정성을 확보하면서도, 블록체인 기반의 실시간 정산 기능을 갖춘 디지털 금융 인프라다. 단순한 결제 수단을 넘어, 자산과 금융 행위를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금융 운영체제로 진화 중이다.
특히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환율 리스크 없이 국내외 자본을 연결할 수 있다. 여기에 토큰증권(Security Token Offering, STO)이 결합되면, 실물자산을 디지털 토큰 형태로 분할 유통할 수 있어 금융의 구조 자체가 바뀐다.
예컨대 미래에셋이 해외 부동산 리츠를 디지털 토큰으로 발행하고, 투자자가 KRWX로 소액 투자 및 배당 수령까지 가능해진다면, 글로벌 실물자산 투자가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으로 실시간 실행되는 구조가 완성된다. 1만 원으로 글로벌 자산에 접근하는 시대가 열린다.
한국디지털자산협회 관계자는 “스테이블코인은 결제 수단이 아니라 금융 인프라”라며 “디지털 자산을 실시간으로 운용 가능하게 만든다는 건 기존 금융 질서를 근본부터 다시 설계한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가치 고정, 신뢰가 기준
스테이블코인의 핵심은 고정가치 유지 능력, 즉 ‘신뢰’다.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발행 주체의 거버넌스와 책임이다.
금융회사가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은 통상 법정통화와 1:1로 연동되며, 외부 감사, 공시, 자금세탁방지(AML), 고객확인(KYC) 등 금융 규제를 충족해야 한다.
금융감독원 디지털금융팀 관계자는 “테라·루나 사태 이후 시장은 ‘누가 발행했느냐’를 가장 중요하게 본다”며 “신뢰를 바탕으로 한 구조적 설계가 없으면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탈중앙화 자율조직(DAO)이나 민간 테크기업이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은 중앙 관리체계가 없고, 담보 구조도 불투명하다. 해킹, 유동성 위기 등에 취약하다. 테라·루나 붕괴는 기술이 아니라 신뢰의 부재가 만든 참사였다.
반면, 미래에셋은 자산운용, 증권 중개, 결제 시스템, 유통 채널까지 아우르는 금융 복합그룹이다. 발행부터 유통, 정산까지 통합 설계가 가능한 유일한 사업자로 꼽힌다. 이 통제력은 단순한 기술력이 아니라, 플랫폼 경쟁력 그 자체다.
◇규제 전 선점, 구조 설계가 관건
정부는 올해 하반기 ‘디지털자산 기본법’ 제정을 예고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 규제의 핵심은, 발행 자격을 금융회사 또는 일정 요건을 갖춘 신탁기관으로 제한하는 지정제다. 제도가 시행되면 진입 장벽은 높아지고, 제도권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익명을 요구한 국회 정무위 소속 보좌관은 “스테이블코인은 결국 제도권이 발행해야 한다”며 “규제와 회계 기준이 정비되는 순간, 사전에 구조를 갖춘 기업만이 살아남게 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금융사들은 제도화 이전의 선점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미래에셋의 상표 출원은 단순한 명칭 확보를 넘어, 시장 주도권 확보의 신호탄이다.
동시에 내부 AML·KYC 통제 장치, 글로벌 규제 대응 역량, 블록체인 정산 인프라 등을 선제적으로 구축해 제도 시행 이후를 대비하는 전략도 병행 중이다. 국회·금융위·민간 협의체 등과의 정책 네트워크 확보 역시 초기 제도 설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전략 자산이 되고 있다.
◇PBR 1배는 결과 아닌 예고
미래에셋은 상표 출원에 그치지 않고, 증권업 전반의 플랫폼 구조를 디지털 기반으로 재설계하려는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자산 발행부터 투자, 결제, 정산까지 모든 금융 프로세스를 디지털 환경에서 구현하는 통합 시스템 구축이 목표다.
이 과정에서 스테이블코인은 단순 결제 수단이 아니라, 금융 생태계를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운영 인프라로 기능한다. 자산의 흐름, 정보의 흐름, 투자자의 행동을 하나의 플랫폼 안에서 설계하고 통제할 수 있는 구조가 가능해진다.
이는 기술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자산 규모, 규제 대응 능력, 연동 시스템을 갖춘 금융그룹만이 설계 가능한 질서다.
글로벌 IB 출신 블록체인 기업 대표는 “미래에셋의 강점은 플랫폼을 ‘기술’이 아닌 ‘사업’으로 접근한다는 점”이라며 “발행력, 유통망, 자산관리 역량까지 갖춘 종합 설계 능력이 밸류에이션을 끌어올린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미래에셋의 PBR 1배 돌파는 결과가 아니라 구조적 예고다. 디지털 발행력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밸류에이션 공식이 등장했고, 이를 기준으로 증권업의 경쟁 질서가 재편되고 있다.
앞으로의 경쟁은 누가 더 빠르게 구조를 설계하고 생태계를 선점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그리고 디지털 플랫폼의 승자는 기술력이 아니라 질서와 신뢰를 먼저 설계한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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