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시작되는 7월, 물안개 낀 습지와 논두렁에서 작고 화려한 꽃이 눈에 띈다. 주황색 바탕에 붉은 반점이 뿌려진 모양이 마치 표범을 닮았다 하여 '표범 꽃'이라 불리기도 하는 이 식물의 정식 명칭은 '범부채'다. 아침에 피었다가 해 지기 전 시드는 하루살이꽃이며, 비 오는 날이면 꽃잎 무늬가 더 또렷하게 보인다. 주변 풍경이 흐릴수록 더욱 도드라지는 이 꽃은 여름 습지 생태계의 신호등 같은 존재다.
범부채는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서식지가 줄고 개체 수도 급감했다. 비 오는 날 피어나는 그 색은 습지와 함께 사라져가는 자연의 마지막 기억이기도 하다.
붉은 반점이 살아 움직인다… ‘표범 꽃’이라 불린 범부채의 특징
범부채는 붓꽃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키는 약 60~100cm로 줄기는 곧게 서고 잎은 부채처럼 퍼져 있다. 잎끝은 뾰족하고 잎자루는 없고 서로 포개지듯 겹친다. 꽃은 줄기 끝에 한두 송이씩 차례로 피며, 한 송이는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이면 시든다.
꽃잎은 여섯 장의 주황색 꽃잎 위에 붉은 반점이 불규칙하게 뿌려져 있어 얼핏 보면 열대 조류나 곤충의 눈처럼 보인다. 이 무늬는 비 오는 날 더욱 도드라지는데, 꽃잎 표면에 맺힌 수분이 색 대비를 강화하기 때문이다.
개화 시기는 6월 말부터 7월 중순까지다. 꽃봉오리는 한꺼번에 피지 않고 차례대로 열리며, 매일 아침 다른 꽃이 피었다 진다. 독특한 개화 습성으로 인해 '일일화'라는 별칭도 있다. 가늘고 검은 종자는 꽃이 진 뒤 열매 안에서 구슬처럼 형성되며, 익을수록 반짝이는 광택이 도드라진다. 이 종자 모양이 부처의 눈물처럼 생겨 ‘부처 눈물’이라 부르기도 한다.
약으로 쓰였던 꽃… 범부채의 쓰임새와 민간 기록
범부채는 외형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예부터 약초로 귀하게 쓰였던 식물이다. 특히 뿌리 부분은 ‘사간(射干)’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한방에서 기관지염, 인후염, 편도선염 치료에 활용됐다. 뿌리를 말려 달인 물은 염증을 가라앉히고 기침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고 기록돼 있다.
최근 생태교육이나 습지 복원 프로그램에서도 범부채는 하루살이꽃 관찰’, ‘물방울 사진 찍기’ 등 활동에도 등장하며 교육 식물로도 자리 잡고 있다.
물 빠지고 볕 드는 땅… 범부채가 살아남는 환경 조건
범부채는 습하지만, 햇볕이 잘 드는 환경을 좋아한다. 논두렁, 하천 변, 갯골 습지, 얕은 계류 옆 풀밭 등에서 주로 자란다. 뿌리는 수분을 저장하지만, 장기간 침수되면 썩기 쉬워, 물이 고이지 않고 빠르게 스며드는 지형이 적합하다. 비가 많이 오는 여름, 수분은 유지되 물웅덩이는 없는 조건. 이 까다로운 환경에서만 번식한다.
또한 유기물이 풍부한 땅, 낙엽이나 풀들이 썩어 만든 퇴적층이 얇게 깔린 양지 습지대에서 가장 잘 자란다. 인공적으로 물을 댄 논이나 조경용 인공 습지에서는 생존율이 낮고, 꽃도 잘 피지 않는다.
현재 범부채 군락이 확인된 장소로는 시흥갯골생태공원, 우포늪, 남양주 물의정원, 창원 주남저수지, 화성 고정 습지 등이 있다. 이곳들은 비교적 인간 간섭이 적고, 자연적 수위 조절이 가능한 생태계다. 일부 지역에서는 범부채 보전을 위해 생육 조건을 모사한 복원 구역을 조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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