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여백에서
명실상부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각자의 미감을 구축한 하나의 세계로 확장 중인 두 이름, 렉토와 로우클래식. 척박한 서울의 패션 지형에서 출발한 이들이 한 시대의 막을 내리고 더 넓고 높은 무대로 향하는 화려한 2막을 시작하려 한다. 로우클래식의 이명신 대표, 렉토의 정백석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그 이야기를 나눴다.
LOW CLASSIC
“비즈니스를 아직 배우는 중이지만 디자인하듯 해보려 한다”는 말은 이명신의 현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제는 직접 옷을 만들지 않지만, 여전히 디자인하듯 사업을 꾸린다. 그녀는 지난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완전히 내려놓았다. 로우클래식의 다음 챕터를 두 디자이너, 김세연과 김다솜에게 전적으로 맡긴 것. 메인 컬렉션인 로우클래식은 김세연, 디퓨전 라인인 Lc는 김다솜이 지휘한다. 두 사람 모두 5년 이상 이명신과 일했고, 한때 회사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다. 특히 김다솜은 2012년에 론칭한 세컨드 라인 로클(Locle)의 핵심 인물이었다. 그녀의 퇴사와 함께 로클 자체가 문을 닫았을 정도. “로클은 김다솜 그 자체였어요. 그녀가 떠난 뒤 로클을 이어갈 이유가 없었죠.” 이명신이 말했다. “김세연은 시간의 결을 세련되게 해석하는 디자이너”라 덧붙이며 이들에 대한 깊은 신뢰를 드러냈다. 디자이너에서 경영자로 방향을 튼 이명신은 지금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재밌다”고 말한다. 크리에이티비티에 대한 갈증은 없냐는 질문에는 “성수동 매장으로 풀었다”고 웃어 보였다.
지난달 문을 연 ‘성수 86’은 로우클래식의 세 번째 오프라인 스토어이자, 새로운 디자이너 체제에서 처음 선보이는 공간이다. 새로 부임한 두 디자이너의 손길이 닿은 첫 스토어. 1층은 Lc가 자리한 곳으로, 미국 LA의 여유로운 일상에서 영감받은 컬러와 구조를 청량하게 배치했다. 2층은 메인 라인이 위치한다. 동양적인 감성과 우디한 소재가 조화를 이루며, 한결 묵직하고 안정된 분위기를 자아낸다. 성수동을 택한 건 예전 가로수길에서 느꼈던 생기와 입지적 가치라는 전략적 판단이 작용했다.
오프라인이 고객과의 접점을 설계하는 장이라면, 온라인은 구조 전체를 설계하는 일이다. 현재 이명신이 가장 집중하고 있는 과제는 온라인 플랫폼의 개편과 확장이다. 로우클래식은 공식 홈페이지 외 채널이 많지 않은데, 그런 만큼 하나하나의 채널을 무게감 있게 전개하고 각 접점을 깊이 있게 설계했다. 양적 성장보다 질적 성장에 초점을 맞춘 전략. “최근 수년간 해외 플랫폼의 흥망성쇠를 지켜봤는데, 국내 온라인 플랫폼은 크게 성장한 편이에요. 콘텐츠도, 시스템도, 유통도. 온라인이 어느 정도 안정되면 오프라인 전략도 다시 ‘디자인’할 예정이에요. 해외 직진출도 고민하고 있고요.” 이 모든 구조를 뒷받침하는 방식은 ‘작게, 깊게’다. 상품의 생산 수량을 최소화해 가격을 낮추는 전략도 그 일환이다.
동시에 이명신은 패션의 바깥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준비 중이다. “말해도 되려나요?” 웃으며 거듭 고민하던 그녀는 설렘 가득한 표정으로 오는 8월 안에 리빙 브랜드를 전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나영 디렉터가 취향을 담아 수집한 소품을 판매하던 큐레이팅 숍 ‘수집미학’을 인수한 것. 론칭과 동시에 한남동 플래그십 스토어도 연다. 브랜드 이름은 존중의 의미로 그대로 사용한다. 이명신은 “수익보다 팬심으로 시작한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함께 일하는 디자이너들 또한 수집미학의 애정 어린 소비자였다고 덧붙였다.
“저희가 일을 진짜 많이 해요.” 2009년에 로우클래식을 시작한 뒤, 올해로 어언 17년 차로 접어든 이명신은 단 한 번도 제자리걸음을 택한 적이 없다. 디자이너에서 경영인으로, 패션에서 리빙으로. 멈추지 않는 변화의 흐름 속에서도 늘 다음 단계를 탐구한다. “계속해서 나 자신을 변화시켜야 했어요. 끊임없이 성장하고 배웠죠.” 그녀의 로우클래식은 주체가 바뀌어도 자기 언어를 잃지 않는다. 지금, 이토록 안정적인 구조 속에서 다음 서사를 차분히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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