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거제시가 추진 중인 '지역상생발전기금'은 듣기엔 근사하다.
시와 지역 조선소가 매년 100억 원씩 5년간 총 1,000억 원을 공동 출연해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기금은 중소상공인 지원, 조선소 배후지역 개발, 노동자 복지 향상에 쓰일 예정이라고 한다.
이쯤 되면 시정 설명회 슬라이드 한 장이 눈앞에 그려진다.
"기업·노동자·시민이 함께 만드는 지속 가능한 도시"라는 그럴듯한 표어도 붙었을 터다.
하지만, 현장의 질문은 하나다.
"누가 이 돈을, 왜 내야 하죠?"
조선업계는 경기 침체와 글로벌 공급망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을 낮추고 있다.
이 와중에 매년 수십억 원 기금 출연이 현실적인가?
노동자 복지가 기업 이익과 어떤 경로로 맞닿는지 설명은 부족하다.
의욕은 높지만, 설득력은 낮다.
거제시는 최근 조선업 노동단체와 잇따른 간담회를 가졌다.
기금의 추진 취지와 구조를 설명하고, 노동계의 공감도 끌어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장면을 멀리서 보면, 노사 간 접점을 행정이 끼어들어 연출한 듯한 모양새다.
과거에도 유사한 시도가 있었다.
행정이 '중재자'를 자처하며 양쪽의 손을 맞잡게 했지만, 결국 그 손은 오래 가지 않았다.
합의는 짧았고, 갈등은 깊어졌다.
지금 필요한 건 명분보다 메커니즘이다.
기금이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고, 어떤 방식으로 '복지'가 개선되는지에 대한 상세한 설계가 없다면 노조는 명분을 부여받고, 기업은 부담을 떠안고, 행정은 성과를 기록하는 삼각형이 완성된다.
그러나 삼각형은 바퀴가 아니다.
굴러가려면 원이 필요하고, 원을 만들려면 각이 없어야 한다.
지역상생발전기금은 이상적일 수 있다.
그러나 이상은 구조로 설계돼야 하고, 설계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기금은 또 하나의 행정 기획서로만 남게 될 것이다.
기업의 호주머니를 설득하는 데, 노동자의 목소리를 도구처럼 사용하는 순간,
그 상생은 상처를 동반한다.
돈은 꺼낼 수 있지만, 진정성은 꺼내기 어렵다.
거제=김정식 기자 hanul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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