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백향의 문화산책29] 아름다운 문장_버지니아 울프 『등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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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백향의 문화산책29] 아름다운 문장_버지니아 울프 『등대로』

저스트 이코노믹스 2025-05-10 19:47:52 신고

  '강백향의 책읽어주는 선생님' 

시그리드 누네즈의 소설을 읽고, 이어서 버지니아 울프를 시작했다. 가장 읽기 좋다는 『등대로』다. 자전적 소설이며, 모순된 나와 부모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뒤라스와 에르노와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스코틀랜드 스카이섬에서 시작이라니 이번 여름을 기대한다.

​버지니아 울프를 읽는 일이 어려워서, 그동안 언저리만 두드렸던 것 같다. 비로소 용기를 내어 읽기 시작했는데 문장이 너무 아름답다. 버릴 것이 없다. 천천히 낭독하며 읽으면 더 좋다. 머릿속에 떠도는 생각들이 많아서, 정리하며 읽으려면 소리내 읽는 것이 이해를 돕는다. 읽으면서도 어떻게 이렇게 한 문장 안에서 여러가지 사유를 끌어 올릴까 감탄했다. 휘리릭 읽을 수 없다.

​ 1장에 드러난 시간은 하루밤에 불과한데,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심정들이 담겨있는지. 이미 이러한 글쓰기 방식은 보았던 것 같지만, 버지니아 울프의 우산 안에 있음이 확실하다. 그것도 여성의 입장에서 서술하니 말이다. 문장마다 공감이 사무친다. 심지어 1부 마지막에서 우리의 램지부인은 죽었다고 괄호 속 한 줄로 설명되었다. 그러니 유한한 하루 안에 그녀가 생각했던 수많은 것들이 이렇게 다시 숭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 아무도 없는 고적한 곳에서 자연을 바라볼 때 저절로 떠오르는 것들에 대한 사유의 근원을 밝히는 장면도 좋았다. 페터 한트케의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나 영화 <퍼펙트 데이즈> 의 『나무』에 일렁이는 바람 같은 것이 모두 버지니아 울프에게서 존재하게 된 것 같다. 내가 나무를 멍하니 보면서 느꼈던 복잡한 생각의 흐름들도 바로 그것이었나 보다. 자연은 인간의 불행을 바라보았다는. 책을 읽는 것도 그렇다. 읽으면서 마음이 깨끗해지는 경험.

자연은 인간이 추진한 것을 보완해 준 것일까? 인간이 시작한 일을 자연이 완성한 것일까? 변함없이 평온한 마음으로 자연은 인간의 불행을 바라보았고, 인간의 비열함을 너그럽게 봐주었고, 인간의 극심한 고통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홀로 바닷가에서 자연과 더불어 답을 나누고 완성하고 찾으려던 꿈은 그저 거울에 반사된 것에 불과했고, 거울 그 자체는 더 고귀한 힘이 밑에서 잠자고 있을 때 휴면에 들어가는 표면의 유리질에 불과한 것일까?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견딜 수 없이 절망하여, 더는 바닷가를 거닐 수 없었다. 성찰은 견딜 수 없었다. 거울은 깨졌다.

​무엇보다 여성의 삶에 대한 묘사는 신랄하고 적절하다. 램지부인과 릴리의 마음을 따라가다보면, 심연에 존재하는 무언가에 접근하게 된다. 결국은 시간과 자연 앞에 작고 위대한 투쟁이었다는 통찰. 등대로 가지 못했지만 알게 되는 것들. 아름답고 슬픈 글이다. 시그리드 누네즈 글을 이해할 수 있게 연결도 된다. 앵무새 언급 부분과 꽃이름인 릴리 브리스코가 결혼에 회의를 가지며 그리고 싶은 그림을 완성해가는 이야기도. 로즈도 나온다. 『등대로』에서 가장 아름답게 서술되는 장면은 램지부인이 아들 제임스에게 『어부와 아내』를 읽어주는 장면이다. 버지니아 울프에게 책읽기와 책읽어주기의 행복이 얼마나 큰것인지 또다시 짐작한다.

​삶이 눈앞에 펼쳐졌다. 삶을 바라보았다. 작은 시간 조각들이 오십년 세월을 드러냈다. 아이들과도 남편과도 아닌, 실재하는 어떤 것, 은밀한 어떤 것이 있음을 느꼈다. 한쪽 편의 놓인 그녀와 다른편에 놓인 삶 사이에서 일종의 거래가 진행되었다. 삶이 그녀를 이기려고 했듯이 그녀도 삶을 극복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이따금 협상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체로는 묘하게도 무시무시하고 적대적이며 기회를 주면 재빨리 덤벼든다. 시간과 자연 앞의 무력함, 작고 위대한 투쟁.

​오늘도 작고 위대한 투쟁 한가운데 서있는 나를 발견한다. 삶의 전체를 바라보게도 하지만, 문득 잠깐 지나가는 상념조차 허투루 내버리지 않고 나에게로 연결해 본다. 멍하게 응시하는 자연과 사람을 통해서 나는 또 형성되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의 투쟁을 옹호하고 북돋고 이해하고 누그러뜨리면서 오늘을 또 살게한다. 말갛게 지워지기 바라며. 컨트롤 할 수 없는 주관의 속도로 시간은 지나간다.

​ 등대는 빛을 쏘며 질문하고, 끈질기게 바라보며 의미를 잃고 빛에 끌려가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걸까? 삶의 의미가 무엇일까? 삶은 여기에 정지해 있다는 실존적 질문들을 배운다. 삶과 죽음이 멀지 않고, 불안정하고 부조리한 삶의 문제들이 도처에서 떠다닌다. 그것이 생각속에서 커지고 줄어드는 감정은 글쓰기로 이어진다. 읽는 이에 따라, 해석하고자 하는 이의 주관에 따라 지평이 넓은 작품이므로 훌륭하다. 아마도 다시 읽으면 또 다르게 읽을 수도 있겠다. 읽는 동안 내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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