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은 5월 8일, 미국과의 무역 협상이 실패로 끝날 경우 미국산 제품 950억 유로 상당에 대해 보복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EU를 포함한 세계 각국에 고율 관세를 부과한 데 대한 대응 조치다.
EU 집행위원회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조치가 세계무역기구(WTO)의 규정을 명백히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자동차와 비행기 등 주요 수출 품목뿐만 아니라 대두, 크리스마스트리, 롤러코스터, 인공 머리카락 등까지 포함한 이례적인 품목에 대한 과세 계획을 발표했다.
브뤼셀은 또한 고철, 식품 가공용 화학물질 등 미국이 유럽에 의존하는 품목의 수출을 제한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EU는 트럼프가 4월 발표한 대부분의 EU 상품에 대한 20%의 대등 관세 조치를 일시 중단한 상태지만, 기본적으로는 여전히 10%의 관세가 유지되고 있어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번 EU의 보복 조치 목록은 무려 218페이지에 달하며, 항공기, 자동차, 화학제품, 전기 장비, 플라스틱 등 다양한 분야가 포함됐다. 항공기와 자동차의 과세 대상 가치는 각각 105억 유로와 120억 유로에 달해 미국 기업, 특히 보잉과 주요 자동차 제조사에 타격을 줄 수 있다.
EU는 이미 철강·알루미늄 관세에 대응하기 위해 210억 유로 상당의 1차 보복 목록을 마련해둔 바 있으며, 협상 여지를 남기기 위해 7월 14일까지 발효를 유예한 상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영국과 무역 협정을 체결하며 타국과의 관세 갈등을 완화하려는 신호를 보이자, EU도 협상에 대한 희망을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고통스러운 관세보다는 협상으로 해결책을 찾기를 원한다”며 양측 모두에게 실익이 있는 합의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마로슈 셰프초비치 통상담당 위원은 “EU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협상에 끌려가지 않을 것”이라며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버번 위스키와 같은 미국 상징 상품도 이번 과세 목록에 포함됐으며, 다만 EU는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목재와 의약품은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EU는 필요 시 미국의 대형 기술기업에 대한 추가 조치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4월 2일 중국과 유럽을 포함한 동맹국들에 일방적 관세 부과를 선언한 이후, EU는 대화 재개를 위해 고위 대표단을 워싱턴에 파견했지만 아직 가시적인 진전을 보지 못한 상황이다. EU는 곧 자동차 및 20% 관세 조치에 대해 WTO에 제소할 방침임을 분명히 했다.
EU는 성명에서 “미국의 조치는 WTO 기본 원칙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며, 공정한 국제 무역 질서 수호를 위한 단호한 대응을 예고했다.
최규현 기자 kh.choi@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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