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백향의 문화산책23] 패티 스미스와 메이플 소프 『저스트 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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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백향의 문화산책23] 패티 스미스와 메이플 소프 『저스트 키즈』

저스트 이코노믹스 2025-04-19 04:43:20 신고

    '강백향의 책읽어주는 선생님' 

"우린 서로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언제나 나는 착한 애인 척하는 못된 애였고, 로버트는 못된 척하는 착한 애였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웃곤 했다. 우리는 커가며 착한 애였다 못된 애였다를 계속 반복했고 결국 내면의 양면성을 인정하게 될 때까지 그 일은 계속됐다. 우린 둘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내면세계를 지녔던 것이다."

패티 스미스(1946~)는 어린 시절, 『작은 아씨들』을 읽으며 조의 삶에 매료되어 작가의 삶을 꿈꾸었다. 아버지는 필라델피아 미술관으로 여행을 데리고 갔으며, 모딜리아니, 뒤뷔페, 피카소, 프라 안젤리코, 앨버트 라이더의 도록을 보며 예술세계 속에 살게 되었다. 어머니는 열여섯살 생일 선물로 『디에고 리베라의 위대한 삶』이라는 책을 주었단다. 덕분에 프리다 칼로와 만났고, 자신을 투사했다. 로버트 메이플 소프(1946~1989)의 집은 전혀 달랐단다. 문화적 감성이나 자유분방함이 조금도 없는. 항상 단정하고 깔끔한 중산층이었고 부모에게 인정받으려는 아들이었다.

​ 그러나 이 두 아이는 청소년 시기를 거치면서 각자의 방식으로 큰 회오리를 통과했다. 스무살 여름, 뉴욕에서 방황하던 둘은 만났다. 이 비슷한 시기에 치기어린 젊은 날을 보냈던 여성 예술가들 이야기를 여럿 읽어서 새롭지는 않지만, 패티 스미스는 또 그녀만의 다른 결이 있다. 곁에는 청춘을 같이 보내며 예술성을 키워나간 로버트 메이플 소프가 있었다.

​ 그녀는 곳곳에서 당대 예술가들을 언급한다. 밥딜런과 앤디 워홀, 수전 손탁, 제니스 조플린의 시대를 살았던 젊은 영혼 패티 스미스의 언어들을 읽으며, 책읽기와 예술에 심취한 그녀 삶의 궤적을 함께 따라가 본다.

​ 묘한 책이다. 『호밀밭의 파수꾼』 같은 느낌의 소설 같고, 『컴플리트 언노운』의 순수 음악과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의 패기 넘치는 예술 냄새도 난다. 저스트 키즈였던 그 시절 이야기. 이 시기를 풀어내는 문장만으로도 그녀의 정서를 읽을 수 있다. 읽은 책과 집중했던 당시 예술가들, 거리 풍경과 사회적 이슈들, 만났던 사람들과의 일화를 통해 글쓰고 그리기를 했던 것들까지 정돈되고 차분한 언어들로 묘사하고 있다. 약간의 거리를 둔 낙관의 냄새도 난다. 때로 막무가내 같지만, 따뜻함이 배어있는 문장들이 매력이다.

​도대체 그 획기적인 시절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이들고 보니 그런 시절에 대한 알지못할 이끌림이 어찌 내 삶과는 거리가 있었는지 아쉽다는 생각뿐이다. 올봄 피크닉에서는 패티 스미스전시가 열린다고 한다. 가보고 싶어 예약을 하고 이 책을 쉬엄쉬엄 읽었다. 잘 모르지만 그런 분위기가 그냥 멋있어 보이고, 뒤늦게 느껴보고 싶다. 그런 마음들을 알아챈, 시대를 읽어낸 기획이겠다.

​ 나는 책을 읽는 어머니를 곁에서 바라보곤 했다. 어머니는 종종 커피 한 잔을 옆에 두고 무릎에 올려놓은 책을 담배를 피우며 읽었다. 독서에 몰입한 어머니의 모습에 나는 무척이나 흥미를 느꼈다. 엄청난 노력을 들여서야 우리는 마더구스에서 닥터 수스까지 진도를 나갈 수 있었다. 지난한 읽기 공부의 과정을 마치고서야 우리는 푹신한 소파에 앉아 어머니는 『어부의 신발』을, 나는 『빨간 구두』를 읽을 수 있었다. 나는 독서에 완전히 뺘져 들었다. 모조리 다 읽고 싶었고, 읽고 나면 또 다른 욕망에 사로잡혔다.

​ 이 책은 ‘혁명적’ 자세는 물론 자신의 ‘인간적’ 숨결도 내비치는 리얼 패티의 자전적 기록이다. 1989년 죽을 때까지 협업한 사진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를 회고하며 동지에 대한 연민과 경배, 또 그 속에 흐르는 연정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지극의 예술혼과 열정이며, 예술이야말로 부패한 세상의 거의 유일한 해독제라는 강력한 암시를 받게 될 것이다

​ 하지만 패티 스미스는 뮤지션이라는 한 가지 정체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녀는 시인이자 화가이고 또 한때는 음악평론가, 연극배우, 모델로도 활동했던 그야말로 ‘전방위 예술가’이다. 그렇다면 패티 스미스가 전방위 예술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저스트 키즈』는 그녀를 예술가로 이끈 특별했던 공간과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공간은 바로 예술적 감성과 혁명적 기운이 넘실대던 1960~70년대 뉴욕이고, 그 상대는 (한때의 연인이자) 평생의 예술적 동지였던 로버트 메이플소프이다. 당시 로버트 메이플소프는 패티만큼이나 예술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한 젊은이였고, 훗날 게이 섹슈얼리티를 드러낸 대담한 작품으로 사진작가로서 명성을 얻는다.

​ 이 책은 패티 스미스가 처음 뉴욕에 도착해 로버트를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해 예술적 실험을 함께한 시간과 당대 예술가들과의 교유, 1989년 로버트가 에이즈로 세상을 떠나기까지의 순간을 추적한다. 그런 점에서 『저스트 키즈』는 패티 스미스와 로버트 메이플소프 두 사람의 초상화이자, 예술 도시 뉴욕에 대한 헌사이며 그 시대를 풍미한 예술가들에 대한 애정 어린 기록이다. 이제는 예술계의 거장이 된 두 사람이 지나온 강렬했던 젊은 날의 행보가 패티 스미스 특유의 솔직한 언어로 한 편의 소설처럼 펼쳐진다.

​ 둘 다 일을 나가느라 바쁜 데다 콘서트를 보거나 영화를 보러 갈 형편이 안 됐다. 앨범을 사는 것도 힘들어, 있는 앨범을 반복해서 들었다. 엘리노어 스테버가 부른 『마담 버터플라이』, 존 콜트레인의 『러브 수프림』, 롤링스톤스의 『비트윈 더 버튼스』, 조앤 바에즈, 밥 딜런의 『블론드 온 블론드』를 주구장창 들었다. 로버트는 바닐라 퍼지 밴드나 팀 버클리, 팀 하딘 같은 뮤지션을 알려주었고, 그의 『히스토리 오브 모타운』은 우리 둘이 사랑을 속삭이는 밤에 배경음악이 되어주곤 했다.

​ 내 방 벽은 그림으로 가득 찼다. 프리다 칼로를 모방한 자화상들에 순간순간의 감정 상태를 기록한 시를 써넣었다. 프리다 칼로의 고통에 비하면 내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위안했다.

​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걸까? 우린 뭐가 될까? 철없는 우리가 자신을 향해 던지는 질문들이었다. 그리고 철없는 대답 또한 알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에게로 가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되었다. 한동안 로버트는 나를 지켜주었고, 그리고 나에게 의지했고, 나를 소유하려 했다. 그의 변화는 마치 자기가 피운 꽃에 찔려 상처 입은 주네의 장미와 같았다. 난 세상의 모든 것을 너무 알고 싶어 조바심 냈다. 하지만 결국 그 욕망은 우리가 미러볼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 없는 빛들이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에 다름 아니었다. 우리 둘은 마테 를링크의 주인공 아이들처럼 파랑새를 찾아 나섰지만 새로운 경험이라는 장미 가시덩굴 속에 갇히고 말았다.​

6월 초, 발레리 솔라나스가 앤디 워홀을 저격했다. (……) 그는 앤디 워홀을 상당히 좋아했고, 가장 중요한 동시대 예술가로 여겼다. 마치 영웅을 동경하듯 그를 숭배했다. 콕토나 영화감독이자 시인인 파졸리니처럼 삶과 예술을 분리하지 않은 예술가들을 존경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존경한 사람은 은색으로 치장한 스튜디오 팩토리 안에서 인간의 미장센을 기록한 예술가, 바로 앤디 워홀이었다. 나는 앤디 워홀에 대해서 로버트와 생각이 달랐다. 그의 작품은 내가 별로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문화를 표방했다. 그의 캠벨수프 캔 작품을 싫어했고, 전혀 공감할 수도 없었다. 나는 동시대를 투사하고 모방하기보다는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추구하여 시대를 선도해나가는 예술가를 존경했다.

​ 우리 탁자 왼편에는 재니스 조플린이 밴드 멤버들에게 웃기는 이야기를 떠들고 있었다. 오른쪽 너머에는 그레이스 슬릭과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다른 멤버들이 컨트리 조 앤드 더 피시 멤버들과 한자리에 앉아 있었다. 입구 근처 마지막 탁자엔 지미 헨드릭스가 어떤 금발 미녀와 있었는데, 모자를 쓴 채로 고개를 숙이고 뭔가를 먹고 있었다. 엘 키호테 바는 어딜 봐도 그린 소스를 얹은 새우 요리와 파에야, 상그리아와 데킬라 병을 앞에 두고 앉은 뮤지션들 천지였다. (……) 그날 밤 방으로 올라오면서 그 뮤지션들과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유대감을 느꼈는데, 예감 같은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 당시엔 내가 그들과 같은 길을 걷게 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저 아직 완성하지 못한 시 몇 편 때문에 끙끙대는, 스물두 살의 멀대같은 서점 직원이었을 뿐이다.

​참으로 흥미롭고 신비스러운 호텔 로비라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돌연 바람이 휘몰아치듯 육중한 유리문이 열리며 까만 옷을 입고 선홍색 망토를 두른 왠지 익숙한 인물이 들어왔다. 살바도르 달리였다. 그는 로비를 신경질적으로 둘러보더니 레이먼드를 보고는 미소 지었다. 그는 우아하고 마른 손을 내 머리에 얹고서 말했다. “까마귀를 닮았군. 고딕 까마귀.”

​ 어느 늦은 오후, 로버트와 8번가를 걸어내려 가는데 어느 가게에서든 「비코즈 더 나이트(Because the Night)」가 크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작업한 곡으로 『이스터(Easter)』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레코딩을 마치고 나는 그 곡을 가장 먼저 로버트에게 들려주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로버트가 항상 내가 하길 원하는 스타일의 곡이었기 때문에. (……) 로버트는 나의 성공을 정말 대놓고 기뻐했다. 그 자신을 위해서, 우리 서로를 위해서 정말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그는 담배 연기 한 모금을 멋지게 뿜어내더니 내게만 쓰는 말투로, 어정쩡하게 혼내는 그런 말투로, 질투라고는 조금도 없는 감탄을 담아, 우리 둘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느릿느릿 말했다.

“패티, 네가 먼저 유명해졌구나.”

그 당시 세상은 뭔가 서두르는 분위기였다. 불가능의 영역이었던 달에 인간이 착륙한 사건부터가 그 시작이었다. 이제 인간은 신의 진주 위에 고무 발자국을 남기고, 걸어 다니니 말이다. 그 시절, 처음으로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껴서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어느 때는 그냥 손을 들어 멈추라고 소리 지르고 싶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뭘 멈추라는 거지? 아마도 나이 드는 것 말이다.

​ 첼시 호텔은 100개의 방이 모여 있지만, 그 각각이 하나의 소우주인 환상지대 속의 인형의 집 같은 묘한 공간이었다. 난 복도를 어슬렁거리며 산 사람이든 죽은 사람이든 그들의 생각과 영혼을 만나보려 애썼다. 내 모험심은 약간 무모해 열린 문틈 사이로 버질 톰슨의 그랜드피아노를 훔쳐보기도 하고 아서 C. 클라크 명판 근처를 배회하며 혹시나 그가 갑자기 나타나진 않을까 기대하곤 했다. 가끔 독일 출신의 미술사학자 게르트 쉬프 교수가 피카소 작품을 들고 지나치는 걸 보기도 했다. 모두가 나름대로 비범한 무언가를 지니고 있었지만, 부자는 없었다. 성공한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들도 흥청망청 술을 마실 여유가 다였다.

​ 우리에겐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모든 일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가 사랑이라고 여겼던 감정을 재정의하고, 그래서 어떻게 할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모순에 부닥치게 되면 현실을 직시하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임을 나는 이미 로버트에게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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