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우리에게 지켜볼 꽃잎은 남아있다...4.16을 기억한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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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명문장] 우리에게 지켜볼 꽃잎은 남아있다...4.16을 기억한다는 건

독서신문 2025-04-16 08:00:00 신고

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지켜볼 꽃잎이 남아 있다. 나는 그 꽃잎 하나하나를 벌써부터 기억하고 있다는걸 네게 말하고 싶었던 것일 뿐.
-김연수,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중

#그렇다면, 그 기억은 나에게, 내 인생에, 내가 사는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려고 애쓸 때, 이 우주는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을까?
-김연수,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중

#그녀가 준비한 노래를 다 부르자 어둠 속의 그들은 앙코르를 청했다. 무슨 노래를 부를까 고민할 필요도 없이 지난해 연말 혼자 배를 타고 제주도로 가던 밤, 멀미에 시달려서 괴로운 와중에도 멜로디가 떠올라 흥얼거리면서 한 소절 한 소절 다시 부르고 또 잇대며 지은 곡이 바로 떠올랐다. 그때껏 남들 앞에서는 한 번도 부른 적이 없었지만 그날만은 그 노래, <한 사람을 기억하네>를 꼭 부르고 싶었다. 그렇게 “그 밤, 바다에서 나는 마크 로스코의 빛을 보았네”라며 노래를 시작했으나 그다음 가사를 떠올리자마자 목이 메는가싶더니 그 너머에서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감정이 울컥 치밀었다. -김연수,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중

#우리가 인생을 다시 살 수는 없겠지만, 다시 쓸 수는 있다. 우리는 영문도 모르는 채 인생을 한 번 살고, 그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서 얼마든지 다시 살 수 있다. 조금 더 미래로 왔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더 넓은 시야가 생겼고, 그래서 우리 인생의 이야기는 조금 달라졌다. (...) 다시 쓰는 일은 과거의 나를 바꾸는 게 아니라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를 바꾼다.
-김연수, 「2014년의 일기를 2023년에 다시 쓰는 이유」 중

#2014년 4월 3일 오후 3시 37분
2014년 4월 나는 제주에 있었다. 제주에서 찍은 마지막 사진을 찾아봤다. 이덕구 산전이었다. 4·3 당시 무장항쟁의 사령관이었던 그의 은신처였다. 이곳에서 지내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살되었고 무장대는 궤멸하였다. 그의 흔적을 볼 수 있다는 말에 남의 집 담을 넘어 산으로 기어 올라갔다.
(...) 누군가 이곳에 가져다 놓은 그 깃발이 “모든 비극은 섬으로 흐른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축 처져 산전 한구석에 걸려 있었다. 그것이 나의 마지막 제주도였다.
내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날 이전의 제주도.
-홍진훤, 「플래시 백」 중  

#2015년 4월 16일 오후 8시
사람들은 더이상 구조 실패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정부는 구조하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구조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것을 확인하는 데 1년이 걸렸다. 질문은 더욱더 복잡해진다. 정부는 왜 구조하지 않았나. 수많은 가설들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세월호를 정치적인 사안이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시스템을 불신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혐오를 대체재로 선택했다. 또 다른 세월호가 시작되고 있었다. -홍진훤, 「플래시 백」 중

#2016년 4월 16일 오후 3시 8분
2주기 안산의 하늘은 온통 먹구름이었다. 한 무리의 청소년들이 공식 무대와 조금 떨어져 따로 자리를 잡았다. 세월호가 잊혀지는 것이 가장 두렵다고 했다. 가끔씩 비가 흩날렸고 적지 않은 바람이 불었다. 비옷이 바람에 흔들리면 벚꽃이 내렸다.
한 생존자 학생의 인터뷰를 본 기억이 있다. 언제 친구들이 가장 생각나냐는 질문에 벚꽃을 볼 때라고 했다. 그날부터 나도 벚꽃을 보면 바다가 생각난다. 벚꽃을 많이 찍어두기로 했다. -홍진훤, 「플래시 백」 중  

#과거를 기억하는 일은 또한 미래를 기억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진실이 되어 지금 이 순간의 우리를 바꾼다. 그러므로 부디, 바라건대, 꼭, 아무쪼록......
세월호의 아이들이 남은 우리에게 부탁할 게 있다면 과연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자신들을,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을, 그리고 자신들이 어떻게 죽어갔는지를 잊지 말아달라는 것이 아닐까? 그 아이들을 기억하는 일은 미래의 누군가를 기억하는 일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 남은 우리가 기억하려고 애쓸 때, 일어날 수도 있었던 일이 일어나지 않는 미래가, 혹은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 일어나는 미래가 찾아올 테니까.
-김연수, 「2014년의 일기를 2023년에 다시 쓰는 이유」 중

■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특별판)
홍진훤, 김연수 지음 | 사월의눈 펴냄 | 353쪽 | 3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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