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케셔츠 매니모어몽. 옐로 카디건 비비안 웨스트우드. 스트라이프 톱 앤더슨벨. 스커트 로라로라. 슈즈, 삭스, 머리띠로 활용한 스카프, 이어링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 인터뷰 코너를 1년 넘게 진행해 왔는데, 스튜디오에 먹을 거 사온 분은 은서 씨가 처음이에요.
아, 정말요? 앗싸!(웃음) 제가 원래 만나는 사람마다 작은 거라도 음식 선물 하는 걸 좋아해요. 그 쿠키가 저도 굉장히 좋아하는 가게의 쿠키라서 사 오긴 했는데, 사실 원래 계획은 어젯밤에 오렌지잼을 만들어서 드리려고 했거든요. 재료가 하나 안 와서 결국 못 만들었지만요. 요새 계속 옮겨 다니며 살다 보니까 이런 부분이 어려워요.
선물은 꼭 ‘먹을 거’군요.
실패 확률이 적으니까요. 만약 옷을 선물한다 그러면 사이즈가 안 맞거나 취향에 안 맞을 수 있잖아요. 버리기도 애매하고. 먹을 건 일단 어떻게든 소비가 되니까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 저부터도 먹을 것을 선물 받을 때 제일 좋기도 하고요.
두비두밥 채널도 먹는 걸 좋아해서 시작하게 된 걸까요?
물론 그런 부분도 있겠지만, 현실적인 부분이 더 컸어요. 제가 2020년에 대학을 졸업했거든요. 코로나 때. 전공을 살려 음식 관련 연구실에 지원하려고 했는데 (최은서는 미국 코넬대학교에서 푸드 사이언스를 전공했다) 그게 워낙 팬데믹 상황에 취약한 업무다 보니까 구인이 거의 없는 거예요. 그나마 원서를 낸 곳도 다 떨어지고. 그러다 제 오래된 꿈을 떠올린 거죠. 제 원래 꿈은 사실 푸드 매거진에서 일하는 거였거든요. 그래서 전공과는 크게 연관이 없긴 하지만, 레스토랑에서 일해본 적도 없고 쿠킹 스쿨을 나오지도 않았지만 내게 그런 종류의 스킬이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영상을 만들기 시작한 거예요.
그때는 구독자가 400만이 넘는 채널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겠죠.
전혀요. 순전히 취업용 포트폴리오 삼아서 시작한 거였으니까.
그때만 해도 한식 콘텐츠가 이렇게 주목받을 줄도 몰랐을 테고요.
정말 그래요. 몇 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 할 현상이 일어나고 있죠. 제가 아주 어릴 때 캐나다에서 살았는데요. 사실 그때만 해도 엄마가 점심 도시락에 한식을 넣어주면 괜히 좀 싫었거든요. 집에 와서는 순댓국 맛있게 잘 먹으면서.(웃음) 그런데 작년쯤 뉴욕의 한 초등학교에서 한인 초등학생이 김밥을 싸 먹는 영상이 큰 화제가 됐던 적이 있잖아요. 조회수도 엄청 나오고 다들 궁금하다는 반응이고. 그걸 보면서 정말 기뻤어요. 그 어린 친구가 혼자 뭔가 다른 걸 먹으면서 소외감 같은 걸 전혀 느끼지 않고 오히려 ‘쿨’한 느낌인데, 세상이 정말 많이 달라졌다는 걸 느꼈죠. 실제로 몇 년 전만 해도 한식을 안다고 하는 사람도 ‘코리안 바비큐(삼겹살)’ 같은 거 얘기하는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많은 사람이 다양한 한국 음식을 한국식 발음으로 정확히 알고 있어요.
두비두밥 채널 초기만 해도 편견에 많이 부딪혀서 슬로건이 ‘Don’t Yuck My Yum(내가 맛있어 하는 음식에 ‘으웩’ 하지 마)’이었죠.
맞아요. 이제는 순댓국이나 내장탕 같은 음식을 보여줘도 대부분 혐오감보다는 호기심을 보이죠. 지금도 극소수 ‘yuck’ 하는 댓글이 있긴 하지만 예전만큼은 아닌 거예요. 그런데 그건 편견에 부딪혔다기보다 사실 굉장히 고마운 기억이에요. 제 채널이 처음으로 크게 바이럴 되도록 해줬으니까.(웃음) 막 ‘역겹다’(disgusting) 이런 반응이 나오니까 저도 오기가 생겨서 매운 닭발 만드는 영상을 만들어서 올리고 그랬거든요. 그러다 보니 저도 점점 더 ‘진짜 한식’ ‘찐 한식’ 이렇게 파고들게 된 부분이 있고, 그래서 개인적 발전 측면에서도 고마워하고 있어요.
두비두밥 채널에서 보여주는 음식은 어떤 종류의 한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퓨전 한식? 현대 한국의 집밥? 어느 도시에서나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는 한식?
예전에는 그런 범주로 폭넓었다면, 요즘은 좀 더 전통적인 한식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예전에는 제가 전통적인 한식을 하는 데에 자신감이 없었거든요. 내가 감히 어떻게 그걸 하나 싶고, 좀 부끄러웠던 것 같아요. 한국에서 오래 살지도 않은 제가 ‘진짜 육개장은 이렇게 만들어야 해’ 하고 말한다는 게. 그런데 이제는 조금씩 그런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동안 한식을 해온 ‘짬’ 덕분이기도 하고, 어쨌든 저는 요리를 정말 좋아하고 늘 끊임없이 요리를 연구하는 사람이니까요.
처음 시작했을 때 요리 실력은 어느 정도였다고 할 수 있을까요? 지금 실력을 100이라고 한다면?
일단 지금 실력이 전혀 100이 아니에요. 지금 제 실력은 한… 50? 그때는 25 정도 됐을 것 같고요.
(웃음) 그냥 100으로 놓고 산정한다는 거죠. 케빈(전문 셰프인 최은서의 반려자) 같은 사람이 옆에 있어서 너무 겸손해진 것 아니에요?
맞아요! 제가 주눅이 들어 있어요.(웃음) 제가 정말 좋아하는 분야이고 나름 폭넓게 해봤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요리를 업으로 하는 사람은 아예 다르거든요. 테크닉도 정말 다양하고, 일단 보고 있으면 ‘저 정도로 헌신해야 요리사가 될 수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어요. 그래서 저는 요리사가 되고 싶지는 않고요. 저는 제 삶을 존중하기 때문에.(웃음) 요리도 그렇고, 제가 영상 편집만 엄청나게 잘하는 것도 아니고, 글을 쓰는 걸 좋아하지만 완전히 그 길로 나가기에는 실력이 부족하고, 그래서 그 어중간한 모든 게 다 모인 게 두비두밥 채널이 된 것 같아요.
두비두밥 채널은 단순히 ‘요리 채널’이라고 규정하기는 어렵죠. 은서 씨의 일상, 관계, 생각들이 베이스가 되고 그 위에 음식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요.
제가 처음에는 틱톡으로 시작을 했어요. 그러다가 유튜브로 넘어왔죠. 틱톡과 비슷하니까 쇼츠도 잘됐는데, 이걸 어떻게 롱폼으로 풀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요. 제 영역 안에서 리소스를 찾아봤는데, 일단 나는 여자고, 셰프도, 전문가도 아니지만 집에서 뭐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 거예요. 그래서 브이로그 형식을 접목해서 만들기 시작했던 거죠. ‘Living Alone’ 같은 느낌으로.
치열한 전략적 고민을 통해 만들어진 포맷이었군요. 저는 사실 은서 씨 블로그에서 요리라는 작업과 할머니의 기억에 대한 에세이 ‘My Forever Inspiration, Halmoni’를 읽고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아 이 사람은 원래 이런 문학적인 결을 타고나서 유튜브도 그런 톤이 된 거구나.’
(웃음) 감사합니다. 일단은 제가 애초에 되고 싶었던 건 ‘스토리텔러’였어요. 카메라 앞에서 뭘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죠. 사실 지금도 카메라를 켤 때마다 조금은 괴로워하거든요. 그래서… 간단히 얘기하면 전략적인 고민과 제가 정말로 하고 싶은 부분이 잘 만나서 만들어진 것 같아요. 정확히는 그 두 가지가 연결된 고민을 계속하는 거죠. ‘내가 이런 걸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이런 것을 할 수 있을까?’ 하고. 말이 되나요?(웃음)
이해했어요.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면서도 전업 크리에이터로서 그것을 다른 사람들도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한 전략적 고민을 한다는 말이군요.
예를 들면 제가 초창기 틱톡을 하면서 유튜브로 넘어오던 시기에 콘텐츠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새로운 게 필요하다는 걸. 동시에 제 안에 요리만 뚝딱뚝딱 하는 것보다는 좀 더 재미있고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하고 싶다는 욕망도 있었죠. 그래서 요리 영상에 ASMR 스타일로 목소리를 얹어서 다양한 이야기를 하는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한 거예요. 사실 처음 그걸 시작했을 때 굉장히 부정적인 반응도 많았거든요. “나는 요리를 보고 싶어. 너의 쓸데없는 소리를 듣고 싶은 게 아냐.” 그때는 그런데도 마이웨이로 계속 해나간 거예요. ‘내가 하고 싶은 건 궁극적으로 스토리텔링이니까, 이걸 쌓아야 한다.’ 그리고 그 짧은 이야기를 보며 제 삶이 좀 더 궁금해진 사람은 ‘Behind the Scenes’ 같은 느낌으로 더 깊이 들어와 볼 수 있도록 롱폼 영상을 만들고. 그런 구조를 의도했던 거죠.
두비두밥의 영상들에서 느낀 몇 가지 특징이 있어요. 일단 자막. 딱 아이폰 디폴트 폰트 느낌인 헬베티카 서체에 크기도 완전히 다 똑같아요.
그건 사실 처음에는 어떻게 바꾸는지 몰라서 그렇게 했는데요. 이제는 그게 제 채널의 정체성이 된 부분이 있죠. 특히 자막 효과가 굉장히 많은 한국 유튜브 채널들의 영상과 비교하면 정말 단순하니까요. 편집은 제가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는, 제 직업의 큰 부분이긴 한데요. 그래도 ‘이 정도만 하자, 진심이 들어가면 됐지’ 하고 넘기는 부분이 있어요.
그에 비하면 배경음악 선곡과 타이밍에는 엄청나게 심혈을 기울이는 것 같던데요.
(화색을 띠며) 저 누가 그 부분 언급할 때 제일 뿌듯해요. 개인적으로 요리랑 음악에 비슷한 부분이 많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 실제로 음악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거든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같은 음악을 여러 번 쓰지 않으려고 노력도 하고요.
두비두밥을 다루는 매체들 대부분이 ‘MZ 크리에이터’ 같은 표현을 쓰더라고요. 아마도 이렇게 무신경하게 툭툭 뭔가를 만드는 것 같은데 특유의 감성이 진하게 나오고 성과를 착착 쌓아가는 모습에서 그런 느낌을 받는 게 아닐까 싶었어요.
저희 엄마가 하는 말이랑 똑같네요.(웃음) 사실 제가 꼼꼼한 편은 아니거든요. 성격도 좀 털털한 데다 철두철미한 편도 못 돼서 맨날 뭘 빠트리기도 하고요. 그런데도 이렇게 자립을 해서 먹고사는 것에 대해서 엄마가 항상 신기해하죠.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이해하고 있어요. 제 직업은 제 삶을 보여주는 특성을 갖고 있고, 뭔가를 완벽히 잘 아는 전문가 성격의 직업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피겨링 아웃(figuring out), 계속해서 찾아가는 과정이 일인 거죠. 그 작업에서 큰 부분이 영상을 봐주는 분들의 반응이라고 봐요. 그게 잘될 때도 있고 잘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어쨌든 하나의 스토리가 되는 거죠. 한 편의 드라마처럼 촘촘하게 잘 짜인 뭔가가 아니라 그냥 스토리인 거예요. 어쩌면 그게 두비두밥 채널이 가진… 매력이라고까지 하긴 뭐하고, 메리트 같은 거죠.
철두철미하지 못할지는 몰라도 성큼성큼 나아가긴 하는 것 같아요.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 태도인 것 같아요. 도전과 모험을 하지 않으면 절대 도달하지 못하는 지점들이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체득한 거죠.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한국인이 거의 없는 캐나다 지역으로 이민을 가서 살았거든요. 실제로 학교에서 저희 학년에 한국인이 저뿐이었죠. 중학생 때는 제주도에 있는 국제학교에 다녔고, 중간에 미국의 보딩스쿨에 편입해 혼자 미국에서 살기도 했고요. 그때는 제가 가고 싶다고 2년 가까이 부모님을 졸라서 갔던 거였어요. 다시 또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대학교를 다니다가 뉴욕의 학교로 편입해 살기도 하고. 크리에이터 일을 하면서 다시 들어와 혼자 서울에서 살다가 이제 또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단계인 거죠.
사주 본 적 있어요? 이 정도면 분명히 역마살이 단단히 끼어 있을 것 같은데.
(웃음) 한번 봐야겠네요. 말씀 듣고 보니까 분명히 뭐가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울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마드리드에서 살기로 한 이유가 멋있었어요. “내 삶이 들려줄 가치가 있는 이야기로 가득했으면 한다. 그것이 실패에 대한 이야기일지라도.”
저는 자유로운 게 좋은가 봐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모르는 게. 사실 저는 케빈을 만나기 전까지 덴마크에 한번도 가보지 않았고, 살면서 처음 알게 된 덴마크 사람이 케빈이었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연결점이 없었던 사람이 저와 너무 비슷한 사람이고, 너무나 좋은 사람인 거예요. 그런 사람을 만나서 너무 좋아요. 항상 그렇게 재미있게 살고 싶어요.
경리단길에 퓨전 한식 레스토랑 미자서울을 오픈해서 운영하기도 했어요. 그건 어떻게 도전하게 된 걸까요?
‘Living Alone’ 같은 느낌으로 채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케빈이 한국으로 온 후로 그 포맷은 유지하기가 어렵게 됐잖아요. 제가 따로 직업이 없는 전업 크리에이터다 보니까 일상을 다루는 콘텐츠에도 한계가 있고요. 점점 비슷하고 지루해지는 거죠. 그리고 저는 늘 콘텐츠를 만들 때 계속 조금씩 꺾어서 잔가지를 많이 만들고 뿌리처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이래저래 새로운 뭔가가 필요한 시기였던 거예요. 그러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만나는 지점, 저와 케빈이 만나는 지점에서 일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다다른 거죠. 케빈은 미쉐린 레스토랑에서 10년 동안 근무한 요리사고, 저는 스토리텔링과 콘텐츠 제작을 하는 사람이니까 그 안에 교집합이 있잖아요. 그게 미자서울이 됐던 거예요.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이렇게 큰 유튜브 채널을 운영한다는 게 가능한가요? 심지어 은서 씨는 블로그도 운영하고, 틱톡도 하고, ‘두비마켓’을 통해 선보이는 굿즈들도 직접 제작하고 있잖아요.
케빈이 없었다면 절대 못 했겠죠. 미자서울도 마찬가지고, 사실 지금도 콘텐츠 애벌 편집은 케빈이 해주고 있거든요. 제가 아주 혹독한 훈련을 시켰죠.(웃음)
사실 저는 일종의 ‘팀’이 있지 않을까 했어요. 그런데 오늘 촬영에도 이렇게 혼자 오셨고, 말씀 듣다 보니 매니지먼트를 해주는 회사나 직원도 전혀 없는 것 같네요.
제 팀은 케빈이랑 엄마죠. 아빠도 최근에 은퇴를 하셔서 제가 같이 일하자고 꼬드기고 있고요.(웃음) 사실 저한테 그런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모르는 누군가에게 믿고 일을 맡기는 걸 잘 못해요. 저는 첫 직장이 틱톡, 유튜브였잖아요. 늘 혼자 결정하고 혼자 일해온 거죠. 어디 들어가서 누군가와 함께 일하는 법을 배운 적이 있었다면 좀 달랐을 것 같기도 한데, 저는 오직 이 길밖에 모르는 거예요. 더구나 두비두밥은 제 얼굴을 건 브랜드잖아요. 저는 또 저만의 어프로치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그걸 믿고 맡길 수 있는 회사는 굉장히 찾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해요. 결국 패밀리 비즈니스로 갈 수밖에 없는 거죠.
최근 들어 두비두밥이 굉장히 가정적인 채널이 된 느낌이 있어요.
실제로 제 삶이 그렇게 변했으니까요. 2년 전만 해도 ‘자취인의 삶’을 말했지만 이제는 혼자 살지 않잖아요. 그 시절에는 그때의 삶에 정말로 충실했고, 이제는 이 삶을 충실하게 다뤄야죠. 사실 나이가 들면서 제 안에서 좀 바뀐 부분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예전에는 뭐든 다 혼자서 해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이제 확실히 ‘가족 마인드’ 같은 게 생기는 것 같아요.
저는 인터뷰 준비를 하면서 두비두밥의 몇 년치 영상을 몰아 봤잖아요. 부모님과 싸우기도 하고, 건강검진에 이상 소견이 나와서 두려움에 울기도 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고, 함께 가게를 차리고, 가게를 닫기도 하고, 새로운 곳에서 둥지를 틀고… 그 모든 일들 사이에 계속 요리가 나오니까 뭔가 뭉클하더라고요. 이안 감독의 〈음식남녀〉 같은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어요.
과분한 말씀이세요. 감사합니다. 제 채널이 이제는 정말 제 일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 삶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작은 틈 같은 거죠. 솔직히 예전만큼 모든 걸 숨김없이 보여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이제 저 자신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함께 나오게 됐잖아요. 그들의 삶을 존중해야죠. 그렇다고 너무 조심하면 제 삶의 일부인 이 채널도 없어지는 거니까 그 밸런스를 잘 유지해야 할 것 같고요. 또 요리 콘텐츠도 계속 다음 단계로 이어 나가야죠. 어쨌든 두비두밥 채널의 본질은 ‘한식을 알리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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