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정의 일상혁신] 대학생 딸에게 끝내 하지 않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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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정의 일상혁신] 대학생 딸에게 끝내 하지 않은 말

뷰어스 2025-04-01 07:00:35 신고

3줄요약

1. 쇼핑몰 사업
2. 마케팅회사 6시간 아르바이트
3. 헬스
4. 학교

한달 반쯤 전이다. 겨울방학이 끝날 무렵 2학년 1학기 등록을 앞둔 딸아이로부터 “너무 바빠 몰입이 안된다”며 어느 것을 정리할 지 고민 중이란 톡을 받았다.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부터 정리해야지.”

‘답정너’의 의도가 다분히 있는 말로 응수를 했다.

“그럼 학교네!”
“아니…. 학생의 본분이 우선 아냐?”

다소 당황스러운 마음에 되물었다. 참고로 딸아이는 대학 1학년 2학기에 창업을 해 ‘1020 여성’을 주 타깃으로 하는 의류 쇼핑몰을 운영 중이다. 스스로 피팅 모델도 겸하다 보니(그래서 헬스도 순위에서 밀리지 않는다고 한다) 낮에는 짬짬이 팔 옷을 입고 사진을 찍고, 밤엔 보정을 해 플랫폼에 올리며 수면 부족을 호소한다.

“누가 시켰냐. 그냥 공부나 열심히 하든지.”
“이런 공부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솔직히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안 들어. 오히려 택배 송장 부치느라 엑셀 배우고, 지난 연말 번 돈 정리하면서 종소세니 부가세, 건보료 같은 세금 공부했고, 마케팅 회사 알바는 내 쇼핑몰 홍보 어떻게 할지 생각하는데 더 도움이 됐지.”

괜히 말 시켰다 싶게 불평과 비판이 이어졌다.

“그런데 학교는 강의 거의 반을 온라인으로 하던데 왜 그 비싼 등록금을 받는 거야? 그리고 듣고 싶은 강의는 PC방에서 광클 안 하면 금세 마감돼서 학점 채우려 억지로 골라야 하고….”

순간 직업 정신이 발동됐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스냅챗의 에반 스피겔, 드롭박스의 드류 휴스톤은 모두 대학생 혹은 대학을 중퇴하고 창업해 성공한 입지전적 인물들이다. 심지어 요즘 미국의 가장 핫한 토론 웹사이트 레딧은 스티브 허프먼과 알렉시스 오하니언이 대학 신입생 때 만든 회사다.

“네가 잘 생각해서 결정해.”

(창업을 진흥해야 하는) 직업 윤리상 4번을 위해 1번을 그만두라는 말은 결국 하지 못했고, 이참에 영혼을 담아 진심으로 되짚어 보았다.

‘급변하는 AI 시대 대학들은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 1020이 생각하는 '대학의 가치'

2016년 세계경제포럼(WEF)이 ‘4차산업혁명 시대’의 도래를 선언한 이래 10여년 간 우린 AI가 무섭도록 빠른 속도로 문제를 해결하고, 인간이 했던 많은 일을 대체하고 있는 것을 직접 목도했다. 그래서 2030년까지 92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1억7000만개의 일자리가 새로 만들어질 것이란 그 예측이 이젠 새삼스럽지도 않다. 그러니 전 세계 고용주의 절반이 AI 기반의 사업 모델로 재구성할 계획을 이미 세워뒀다는 것이고, 우리 정부도 초·중·고교에 디지털 교과서를 전면 도입해 미래 세대들의 AI 활용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것 아니겠는가.

물론 논란은 많다. 일부에선 인터넷과 숏폼, 도파민 중독 등의 폐해를 들며 강한 우려를 표한다. 하지만 새 버전의 AI가 출시되기 무섭게 온갖 아이템에 AI를 접목시킨 우리 스타트업들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AI를 활용하지 않고 이 급변하는 시대에 경쟁력 있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가 되려 의문이다. 그간 21세기에 20세기 교실에서 19세기 교육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던 초·중등 학교도 혁신의 거센 파도를 타고 있는 마당에 국가와 사회 발전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고 지식을 생산한다는 대학은 어떤 변화를 하고 있나 묻지 않을 수 없다.

학문 연구와 지식 생산이라는 R&D(연구개발)의 영역을 논하는 것은 이 글에서 다루기에 너무 큰 주제니 우선 인재 양성만 일별해 보자. 대학생들의 상당수는 사회에 진출하기 전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찾고,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대학을 다닌다. 비슷한 동기로 이미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 기성세대들은 경험으로 알 수 있듯이, 연구직(2023년 기준 우리나라에는 60만3566명, 전체 취업자의 1.73%에 해당)을 제외하면 이론과 별개로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우 다양한 역량과 다방면의 지식, (수시로 업데이트가 필요한) 나날이 새로워지는 기술이 필요함을 느낀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대학의 강의들은 교수가 연구를 하는데 필요했던 방식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 교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강의로 과연 WEF(세계경제포럼)와 여러 HRD(인적자원개발) 연구소들이 미래 핵심역량으로 제시한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과 업무환경 등에 대한) 적응력과 유연성,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비판적 사고력과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 (많은 이해관계자들의 복잡한 문제를 보다 잘 해결할 수 있는) 협업 및 의사소통 능력 등을 제대로 키울 수 있을까.

■ 미래 핵심역량은 어떻게 길러지나

캠퍼스가 없는데도 미래 대학의 모델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미네르바 스쿨이나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혁신대학 평가 1위)이면서도 ‘모두를 위한 포용적 대학’으로 평가받고 있는 애리조나주립대 등의 공통점은 전 세계, 혹은 지역사회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현실의 문제를 탐구하고 해결하는 프로젝트로 창의적 문제해결 역량을 키운다는 것이다. 다양한 학문 분야의 학생들이 팀을 이뤄 글로벌 이슈부터 지역사회의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을 시도하면 여러 분야의 교수들과 전문가들은 그 전 과정에 필요한 지원을 한다. 이러한 문제해결의 과정은 도전적인 기업가정신에 바탕을 둔 창업의 과정과 매우 유사하다. 다양한 상황을 맞닥뜨리고 그때마다 습득한 응용 가능한 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능력 중시의 사회와 시장은 높게 평가한다.

얼마 전 이와 맥락을 같이하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우연히 발견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폴 A. 곰퍼스 교수가 500만건 이상의 이력서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직함의 변화와 그에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규명한 논문 ‘실패는 괜찮다: 비임금 측정을 통한 벤처캐피털 지원 기업가의 경력 평가(Failing Just Fine: Assessing Careers of Venture Capital-backed Entrepreneurs via a Non-wage Measure)’로,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패한 기업가라 할지라도 창업을 마친(벤처투자를 받은) 후 창업 직전 동일 계층이었던 대학 졸업자와 비교하면 경력 경로가 가속화돼 약 3년 더 연공서열이 높은 직장 수준을 갖는다는 것이다. 곰퍼스 교수에 따르면 시장이 기업 경험, 즉 조직 운영부터 마케팅, 재무, 커뮤니케이션, 제품 개발 등 회사의 대부분의 측면에 관여하며 쌓은 기업가의 역량을 중시해 실패했을지라도 높은 연공서열과 높은 명예의 지위로 보상한다는 것이다.

■ 대학, 지식보다 사람에 집중할 때

다시 오늘의 우리 대학으로 돌아와 보자. 첨단기술과 인재 전쟁의 시대에 경쟁력 저하의 위기감에 휩싸인 우리 대학들은 드디어 16년간 동결됐던 등록금을 올렸다. 올해 전국 65%의 대학이 평균 5.04%를 올렸다 하니, 많은 학생과 부모들이 그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웠을 것이다. 전 세계가 기술 패권과 그를 바탕으로 자국 이기주의를 추구하는 마당에 발전을 선도해야 할 대학이 재정난에 허덕여서야 어찌 인재 전쟁의 무기를 제대로 만들겠는가.

필자는 획일적인 등록금 규제에는 반대한다. 다만, 대학들은 그만큼의 결기를 갖고 혁신을 하고 있는지, 대학의 고객인 학생에게 진짜 필요한 서비스를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제공하고 있는지도 함께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온라인 강의만 많아지고, 대학마다 취업진로센터라는 커다란 건물과 공간이 생긴 것만으로 혁신의 동력이 갖추어졌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필자가 애용하는 퍼플렉시티 AI서비스에 ‘실리콘밸리 대학’과 ‘서울의 대학들’에 대해 물어봤다. 예상하는 뻔한 대답이 나왔다. “실리콘밸리의 대학들은 기업들과의 긴밀한 협력으로 학생들이 실제 산업 경험을 얻고 창업 기회를 누릴 수 있다”고, “서울에 있는 대학은 한국판 실리콘밸리를 목표로 54개 대학에 6500억원을 투자해 창업과 연구 공간을 확충하고 AI 및 바이오분야 인재를 육성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런데 언제까지 ‘정부가 투자하는 돈’과 ‘하드웨어’로만 생색을 내야 하는 것일까.

실리콘밸리 대학들이 기업과 긴밀히 협력해 학생들에게 실제 산업 경험과 창업 기회를 제공하는 것처럼, 우리 대학들도 교육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재정립했으면 한다. 대학이 진정한 혁신을 이루려면, 단순한 하드웨어 투자보다는 ‘사람’이 중심이어야 한다. 간절한 마음이 호기심과 열정이 되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함께 도전할 때 진정한 변화가 이루어진다. 대학은 이제 ‘어떤 지식을 가르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인재를 키울 것인가’에 집중해야 할 시점이다.


법학박사로 국회, 청와대, 공공기관을 두루 거치며 교육, 과학기술, 창업 정책을 다뤘다. 교육정책에 매진했을 당시에는 하나의 정책에 얼마나 많은 이해와 갈등이 얽히고설킬 수 있는지 깊이 체득했다. 한국과학창의재단 재직 시절엔 ‘창의교육’과 ‘교육기부’에, 창업진흥원에서는 ‘창업’과 ‘혁신’에 꽂혀 정부정책과 현장 사이에서 동분서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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