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일하고 밥 먹고 다시 일하는 우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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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일하고 밥 먹고 다시 일하는 우리에게

독서신문 2025-03-31 06:00:00 신고

눈물은 내려가고 숟가락은 올라가고

외할머니의 부고를 들은 날, 회사 구내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다 이북 속담을 떠올렸다. 구내식당에서 겪은 가장 강렬한 경험. 슬픔 속에서도 숟가락을 들어야 했던 그 장면은 책의 제목이 되었다. 그러한 사정을 알지 못한다면 제목을 보고 피식 웃으며 책을 집어 들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아무리 속상한 상황에도 밥을 먹으며 하루하루 살아가야 하는 우리네 생을 잘 포착한 한 줄이니까. 그렇게 곽아람 기자는 ‘밥’에서 출발해, ‘삶’과 ‘일’, 그리고 ‘글쓰기’를 말한다.

2003년 조선일보에 입사한 그는 2021년,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출판팀장이 되었다. “첫 10년은 울면서 다녔고, 그다음 10년은 재밌었다”는 고백처럼, 23년간의 직장 생활은 울고 웃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기자로, 후배로, 선배로 일하며 그는 일터에서 동료들과 함께 나이 들었다. 회사 구내식당은 단순한 식사 공간이 아니라 온갖 감정과 풍경이 뒤섞인 공간이 되어갔다.

구내식당을 일기로 기록한 인스타그램이 이번 책의 시작이었다. 특별할 것 없는 식판 사진이지만, 사람들은 매일 그 사진을 기다렸다. 한 번도 실제로 만난 적 없는 타인의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었다. 이 책을 쓰기로 하고는 “밥을 먹으러 가는 게 아니라, 오늘 쓸 소재를 건지러 갔다”라는 그의 말처럼, ‘블라인드’에 올라온 글 하나로 식탁 위 칸막이가 사라진 날, 사원증 두 번 찍고 양쪽 메뉴를 모두 받은 날, 경상도에서는 먹지 않는 ‘경상도식 쇠고기 무찌개’가 나온 날…들이 글이 되었다. 일상의 디테일은 유머로 재탄생한다.

저자 곽아람 기자

일하는 여성의 계보를 잇고

“아람아, 회사의 계획에 네 계획을 맞추지 마.”

회사 구내식당에서 남편감을 만난 한 선배가 그렇게 말했다. 곽아람 기자는 “후배들한테 그런 얘기를 해주고 싶은데, 꼰대처럼 보일까 봐 못하고 있다”라고 하지만, 그 말은 책을 통해 이곳저곳에서 분투하는 또 다른 후배에게 전해진다. 그렇게 일하는 여성의 ‘멘토력’이 모계 사회처럼 이어진다. ‘남초’ 조직에서 여성으로서 롤모델을 스스로 만들어야 했던 세대가, 이제는 후배들의 레퍼런스가 되어간다.

직장은 우리 정체성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보다, 잠자는 시간보다, 먹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우리는 일하며 보낸다. 그렇기에 나의 일에 애정을 갖는 건, 삶을 사랑하는 가장 쉬운 방법일 수 있다. 곽 기자가 인스타그램에 자신이 쓴 기사가 담긴 지면을 찍어 올리는 것도, ‘지면에 대한 애정이 아니다’라고 그는 극구 부인함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일과 삶을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삶을 들인 그 결과물을 한 사람에게라도 더 읽히게 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주중에는 나를 지우고, 주말에는 나를 쓴다

곽아람 기자는 자신을 “주중에는 기사를, 주말에는 책을 쓰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회사에서는 끝없이 ‘나’를 지우는 법을 배웠다. ‘나는 평생 내가 없는 글을 쓰고 살아야 하나?’ 그는 그 사실이 무척 싫었다. 그래서 에세이를 썼다. 거기에는 ‘나’를 담을 수 있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거리 두기, 지나친 배설은 피하기. 오랜 기자 생활에서 체득한 글쓰기 노하우다. 감정은 있지만 과잉은 없는, 절제된 문장.

언젠가 은퇴를 하겠지만, 아직 그 이후, 너무 먼 미래는 생각하지 않는다.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소속이 있고 일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위안 삼는다.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은 우리에게 굉장히 소중하니까.” 오늘도 밥을 먹고 글을 쓴다.

[독서신문 이자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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