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의 밑그림을 그렸던 동방정책의 기수 빌리 브란트(1913~1992년)는 계부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의붓아버지 루드비히 프람으로부터 남성상을 배웠다고 한다.
의붓아버지 프람은 1910년 뤼백의 드래거 공작소에서 화물운전사로 일했다.
당시는 인플레이션 시대로 노동자들의 파업과 직장폐쇄가 일상화된 때였다. 8살이던 어느날 빌리 브란트는 빵집의 진열대 앞에서 애절한 눈빛으로 서성였다. 이를 본 의붓아버지의 상사였던 감독관이 빌리 브란트를 빵집으로 데리고 들어가 빵 두덩어리를 사줬다. 귀중한 선물인 빵을 들고 미소를 띄며 집에 들어온 빌리 브란트에게 의붓아버지인 프람은 놀랍게도 "그 빵을 도로 가져다 주라고 그에게 소리쳤다"고 회상했다.
"선물이라구? 파업 노동자는 고용주로부터 어떤 선물도 받지 않는 거야. 우리는 적들로부터 매수당해서는 안돼! 노동자는 적선으로 달래는 거지가 아니란다. 노동자는 우리의 권리를 원하지 선물을 원하는 게 아니야. 그 선물 빵은 다시 갖다줘라. 당장!"
8살짜리 빌리 브란트는 이 말을 평생 잊지 못하고 살았다고 했다. 그는 서독 4대 총리를 지냈고,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는 정치인으로서 권력지향적인 목적의식으로 '모든 역경을 헤쳐나가는 불굴의 인간상'이 아닌 '인간이란 모든 싸움에서 승리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했다.
Copyright ⓒ 저스트 이코노믹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