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홈플러스의 자산유동화전자단기사채(ABSTB, 이하 전단채) 투자자들이 변제를 약속받고도 여전히 불안 속에 놓여 있다. 지난 21일 홈플러스는 4618억원 규모의 ABSTB를 상거래 채권으로 인정하고 전액 변제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현실에서는 투자자들에게 대금이 지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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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제 약속했지만…투자자들 "말장난에 불과"
홈플러스가 발표한 변제 계획에 따르면, ABSTB를 상거래 채권으로 취급해 변제하겠다는 방침이다.
홈플러스 측은 "오는 6월 회생계획에 대해 채권단 등의 및 법원의 승인이 나면 회생절차에 따라 매입채무유동화 관련 채권을 성실하게 변제 해나갈 것이며, 당사가 회생절차에 따라 카드 매입채무를 전액 상환하면 ABSTB 투자자분들께서도 투자금을 회수하실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지난 25일 홈플러스 강서점 본사에서 홈플러스 물품구매 전단채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 배예진 기자
홈플러스 최대주주인 사모펀드(PEF) 운용사 MBK파트너스의 김병주 회장도 지난 16일 사재 출연을 언급했지만, 열흘이 넘도록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다.
문제는 법원의 승인에 따른다는 점이다. 법원으로부터 회생 계획 인가 뒤 ABSTB의 상환이 결정되면, 앞서 홈플러스가 ABSTB를 상거래채권으로 인정해 우선 변제하겠다는 말은 사실상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오는 6월 법원의 회생 계획 인가가 이뤄진 뒤에는 상거래채권과 금융채권을 구분 없이 '회생채권'으로 묶어 분류함에 따라 ABSTB의 변제가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높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상거래채권으로 취급해 변제하겠다고 했지만 법원 인가 후에 변제하겠다는 것은 금융채권으로 취급하겠다는 의미"라며 "상거래채권으로 취급한다면 납품업체들이 받는 물품대금과 동일한 방식으로 지급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현재 어떠한 지급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회생 절차 개시에 따른 변제 순서는 △공익채권(임금·임대료) △회생담보권(담보 설정 채권) △회생채권(상거래채권·금융채권) 순으로 진행된다. 법원의 회생 계획 인가 이후에는 상거래채권과 금융채권을 구분이 사라지면서 ABSTB의 상환 순위가 밀릴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채무 조정이 이루어지면서 ABSTB의 전액 변제 역시 어려워질 수 있다.
전단채 투자자들은 "홈플러스와 MBK가 실질적인 변제 계획 없이 말장난을 하고 있다"며 "변제 여력을 강조했지만 정작 투자자들에게 지급된 금액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채권 만기일에 정상 지급하지 않는 것은 사기에 해당"
일부 ABSTB가 이미 만기를 맞았지만 상환되지 못한 사례가 발생하면서, 투자자들은 불안감을 넘어 직접적인 손실을 우려하는 상황이다.
지난 25일 홈플러스 물품구매 전단채 피해자 A씨는 "12월5일에 가입했고, 3월5일 만기였는데 홈플러스가 딱 그 전날인 3월4일에 회생 신청을 했다"며 "친정아버지가 몸이 안 좋으셔서 저한테 돈을 다 맡겨두고 저희 딸아이 결혼 자금으로 쓰라고 준 돈이었다. 심지어 홈플러스 회생 신청일은 저희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이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A씨는 "제 딸이 4월에 결혼을 앞두고 있었고 3월10일에 잔금을 치를 예정이었다"며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을 사회에 환원해서 도서관을 짓겠다고 하는데 개인의 삶을 망가뜨려 놓고선 사회 환원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묻고 싶다"고 호소했다.
홈플러스 물품구매 전단채 피해자들이 홈플러스 본사 정문에 종이를 붙이며 항의하고 있다. = 배예진 기자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이미 투자 상품이 만기가 됐음에도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하면서 투자자들의 피해가 현실화되고 있다. 이미 만기일을 넘긴 투자자부터 앞으로 다가올 만기 상품 역시 투자금 회수가 어려질 것으로 예상된다. 투자자들의 손실과 피해는 시작됐고 앞으로도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홈플러스가 상거래채권으로 동일하게 대금을 지급하겠다고 해놓고 채권 만기일에 정상적으로 대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사기에 해당될 수 있다고 본다"며 "또한, 홈플러스가 채권에 대해 지급하겠다고만 해놓고 정작 언제 대금이 지급되는지 공식적으로 얘기하지 않는 것은 정부와 투자자,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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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K 믿을 수 없다"...금융당국 "상응하는 조치할 것"
금융당국도 홈플러스와 대주주 MBK파트너스를 향한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 26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MBK와 관련해 제기되는 여러가지 의혹, 문제들에 대해서 검사·조사가 진행 중"이라며 "그 과정에서 밝혀지는 부분에 대해서는 상응하는 조치를 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ABSTB 단기 투자자들에게 4000억원을 보장한다는 건 거짓말 같다"며 "자신들의 고통 분담 없이는 변제가 안 되는 건데 시장에서 비판적 여론이 나오니까 그때그때 언발에 오줌누기로 대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ABSTB 원금을 빠른 시일 내에 보장할 유동성이 있었으면 회생 신청을 안 했을 것"이라며 "언제 변제를 할 지, 재원을 뭘로 할 지에 대해 본인들이 약속할 수 없으면 앞에 여러가지를 숨기고 이야기 한 거고 사실상 다른 의미로 얘기한 것"이라고 꼬집었다.또 "정무위원회에서 내용을 보고 상황을 보니 MBK를 믿을 수 없는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금감원은 불공정거래조사반, 검사반, 회계감리반, 금융안정지원반 등 4개반으로 이뤄진 홈플러스 사태 대응 태스크포스(TF)를 구성, 홈플러스 사태를 들여다보고 있다. 오는 5월31일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하되 필요할 경우 연장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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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등급 하락 사전에 예측"...증권업계, 홈플러스·MBK 형사고발 예정
ABSTB 판매사인 증권사들도 법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하나증권과 현대차증권은 다음 주 중 홈플러스 및 MBK파트너스를 상대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사기) 위반 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할 예정이다.
홈플러스·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 신용등급이 강등될 것을 알고도 이를 숨겨 '카드대금 기초 유동화증권'(ABSTB) 발행을 묵인했고, 증권사들은 이를 모른 채 발행·유통에 나서 개인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게 됐다는 판단에서다.
홈플러스 본사 강서점 매장. = 배예진 기자
홈플러스의 신용등급을 낮춘 한국기업평가가 홈플러스 및 대주주 MBK파트너스가 사전에 등급 하락을 예측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발행주관사인 신영증권 역시 홈플러스가 강등 가능성을 알고서도 채권을 발행한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김기범 한기평 대표는 지난 18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심사 과정 중 홈플러스가 신용등급의 하락을 예상할 수 있었던 것 아니냐'는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내부적으로 예측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같은 날 금정호 신영증권 사장 역시 "(채권) 발행업체와 신용평가사는 계속 교류를 할 수밖에 없다"며 "자본시장 입장에서는 당연히 알았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기존 주장을 재확인했다.
다만 발행 주관사였던 신영증권과 유진투자증권은 아직 고소·고발을 검토 중이다. 신영증권의 경우, 형사 고발보다 협의를 통한 원만한 해결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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