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없는 사자는 어떻게 잉글랜드 대표팀의 상징이 되었을까? [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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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 없는 사자는 어떻게 잉글랜드 대표팀의 상징이 되었을까? [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일간스포츠 2025-03-29 11:11:0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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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축구연맹(FIFA)이 정한 3월 A매치 기간이 막을 내렸다. 이 기간 축구 종가 잉글랜드 대표팀은 2026 북중미 월드컵 유럽 예선전을 소화했다. 독일 출신 토마스 투헬이 감독으로 부임한 잉글랜드는 알바니아와 라트비아를 맞아 2연승을 거둬 산뜻한 출발을 알렸다.

잉글랜드 대표팀은 ‘삼사자(The Three Lions) 군단’으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필자는 삼사자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이런 의문이 들었다. “잉글랜드에는 살지도 않는 사자가 어떻게 이들의 상징이 됐을까?” 궁금증은 꼬리를 물었다. “2마리나 4마리가 아닌 3마리 사자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와 같은 생각을 갖은 독자분들도 분명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그래서 준비했다. 잉글랜드의 날씨와 어울리지 않는 사자가 이들의 상징이 된 이유를.

알바니아와의 경기에 맞춰 제작된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의 삼사자 셔츠. 오른쪽은 알바니아전에서 후반에 추가골을 성공한 해리 케인. 이로써 케인은 국가대표로 나선 104경기에서 무려 70골을 기록하게 된다.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엑스
 
우리는 흔히 백수의 왕인 사자는 아프리카 대륙 사하라 사막 이남의 사바나 일대에 서식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사자는 북아프리카, 중동, 인도, 유럽 동남부와 중부에서도 서식했다.

유럽에 살았던 사자를 ‘동굴(cave) 사자’라고도 부른다. 이 사자들이 실제로 동굴에 살지는 않았지만, 화석화된 유해가 처음 발견된 곳이 동굴이라 이런 이름이 붙었다. 동굴 사자의 수컷은 갈기가 없었던 것으로 보이고, 모습은 현재의 사자와 매우 흡사했다고 한다. 또한 이들의 덩치는 현대의 사자보다 25% 더 컸다.

동굴 사자는 약 1만2000~1만4000년 전 영국에서 멸종했다. 멸종 이유로는 여러 가지 가설이 존재하나, 기후 변화가 결정적인 이유로 꼽힌다. 영국에서 야생의 동굴 사자가 사라진 이후에도 동물원에서 사는 등의 형태로 존재했다. 종종 외교 선물로 아프리카의 사자가 영국에 전해졌기 때문이다. ‘바베리(Barbary, 북아프리카의 옛 이름) 사자’라고 불린 이들의 유해는 ‘런던 탑(Tower of London)’에서 발견되었다.

사자는 유럽 곳곳에서 용맹함의 상징이 된다. 고대 로마 군단의 상징도 사자였고, 바이킹과 중세 유럽 전역의 귀족 가문도 사자를 상징으로 사용했다. 사자와 영국 왕실과의 인연은 ‘잉글랜드의 사자’라고 불렸던 호전적인 군주 헨리 1세 때부터 시작됐다. 이후 사자는 힘, 용기, 품위, 자부심과 같은 '영국다움(Britishness)'의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동물로 여겨지게 된다.  
 
엠블럼에 보이는 동물은 사실 사자가 아니라 ‘표범(leopard)’이라는 설도 있다. 중세 프랑스 문장에서 뒷발로 서있는 동물은 사자였고, 걷고 있으면 표범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잉글랜드의 왕들이 프랑스인의 정체성을 가졌기 때문에 표범을 의미했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이런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사자는 영국 왕실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된다. 한편 사자 주변 10개의 꽃은 장미다. 15세기 잉글랜드 왕국의 왕위를 놓고 벌어진 내전인 ‘장미전쟁’에서 튜더 가문이 승리했는데, 축구협회(FA)는 잉글랜드의 유산을 더 잘 반영하기 위해 튜더 장미 10송이를 엠블럼에 포함시켰다. 위키피디아

원래 헨리 1세의 문장에는 한 마리의 사자만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루벵의 아델리자와 결혼한 헨리 1세의 문장에는 사자 한 마리가 추가되었다. 장인의 상징도 사자였기 때문이다. 그 후 헨리 2세는 1152년 아키텐의 엘리노어와 결혼한 후 사자 한 마리를 더 문장에 추가했다. 엘리노어의 가문 문장에도 사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헨리 2세의 셋째 아들인 리처드 1세는 선조들의 세 사자를 왕실 연합의 상징으로 사용했다.

‘사자심왕(Lionheart)’으로도 널리 알려진 리처드 1세가 사자 세 마리를 선택한 이유에 대한 다른 설도 있다. 리처드는 단순히 자신이 잉글랜드의 왕이 아니고, 노르망디와 아키텐 공국의 영주이자 군주라는 것을 과시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참고로 노르망디의 상징은 사자 두 마리, 아키텐의 상징은 사자 한 마리였다.

이렇게 12세기 후반부터 세 마리의 사자는 영국 왕실의 상징이 되었다. 흥미롭게도 헨리 1, 2세와 리처드 1세는 모두 잉글랜드의 왕이었지만, 그들의 정체성은 남부 프랑스인에 더 가까웠다. 정복왕 윌리엄의 후손인 이들은 현재의 프랑스 영토인 노르망디 공작 등도 겸했기 때문에 그들의 문화, 언어, 문장 모두 프랑스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알바니아와의 경기에 앞서 웸블리 스타디움에 펼쳐진 삼사자의 모습. 관중석에 걸린 현수막에는 투헬 감독을 향해 “Welcome to the home of football(축구의 본고장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고 적혀 있다. 잉글랜드 국가대표 엑스
 
세 마리의 사자는 1863년에 설립된 FA의 공식 엠블럼이 되었다. 잉글랜드는 1872년 세계 최초의 국제 경기를 스코틀랜드와 가져 0-0 무승부를 기록했는데, 이때부터 잉글랜드 대표팀은 삼사자가 그려진 셔츠를 입게 된다. 또한 원래 FA의 삼사자위에는 왕관이 놓여있었다. 그러나 1949년 FA는 잉글랜드 크리켓협회의 엠블럼과 차별화하기 위해 왕관을 삭제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축구, 크리켓 외에도 잉글랜드의 하키, 복싱협회도 삼사자를 로고로 쓰고 있다.

삼사자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잉글랜드에서 열린 유로 96을 앞두고 나온 ‘Three Lions’라는 노래다. “Football's Coming Home”이라는 가사로도 유명한 이 노래는 당시의 상황을 적절히 표현해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지금도 축구장에서 즐겨 불린다.

노래 중간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Three Lions on a shirt, Jules Rimet still gleaming(셔츠에 새겨진 세 마리의 사자, 여전히 빛나는 쥘 리멧).” 쥘 리멧은 1966 월드컵 결승전에서 서독을 물리치고 우승한 후 잉글랜드의 전설 보비 무어가 들어 올린 오리지널 월드컵 트로피를 가리킨다. “Thirty years of hurt never stopped me dreaming(30년간의 상처가 제 꿈을 멈추게 한 적은 없습니다).” 30년간의 상처는 잉글랜드가 1966년 월드컵 우승 이후로 1996년까지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 못한 것을 의미한다.

2026년 북중미 월드컵이 열릴 때 잉글랜드 팬들은 “Sixty years of hurt never stopped me dreaming”을 외칠 것이다. 잉글랜드의 꿈이 60년 만에 이루어질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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