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형의 변화
스킨케어 제품들이 예상치 못한 제형으로 변화하고 있다. 제품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일까, 시선을 끌기 위한 마케팅 기법일까?
“젤리 미스트 써봤어?” 얼마 전, 골드 올리브(올리브영에서 1년 동안 1백만원 이상 물건을 구매한 최고 등급 회원) 친구에게 메시지가 도착했다. 누텍스처 ‘하이드라 젤로 미스트’가 출시된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뷰티 얼리어댑터답게 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제품을 빠르게 포착한 듯했다. 지난해 고현정 유튜브에 등장해 품절대란을 일으킨 런드리유의 고체 미스트까지 예를 들며, 요즘 특이한 제형의 화장품이 대세라고 열띤 설명을 이어갔다. 그날 퇴근길, 나도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올리브영을 찾았다. 스킨케어 코너를 대충 훑어보기만 해도 독특한 제형으로 변화를 시도한 제품이 금세 눈에 띄었다. 누가 봐도 크림인데 용기에는 ‘세럼’이라고 적혀 있고, 물처럼 흐르는데 ‘마스크’라는 라벨이 붙어 있다. 젤 타입 ‘토너’도 있었다.
제형이 진화한다
이렇게 제형이 변화하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누텍스처 ‘하이드라 젤로 미스트’를 개발한 화장품 제조사 코스메카코리아의 고윤아는 이러한 변화가 가능해진 배경으로 제조 기술의 발전을 꼽는다. “과거에는 성분의 안정성, 사용감, 기능 유지 등의 문제로 구현이 어려웠던 제형도 이제는 가능해졌어요. 고체와 액체의 경계를 허물거나 입자의 크기를 더욱 정교하게 조절하는 기술을 통해 다양한 제형을 만들 수 있게 됐죠.” 제조 기술의 발달로 오일을 에센스에 녹이거나, 크림을 미스트 형태로 구현하는 등 제형 간 융합이 쉬워진 것. 대표적인 예가 마몽드 ‘플로라 글로우 로즈 리퀴드 마스크’다. 손등에 발라보면 점성 있는 토너처럼 보이지만 고함량의 스킨케어 성분이 피부에 오래 머물면서 효과를 제공하는 마스크 팩이다. “크림 제형에는 PHA 성분을 10% 이상 담기 어려워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저점도의 액상 제형을 만들었죠. 리퀴드 제형은 어떤 단계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에요. 여기에 빠른 효과와 집중 케어라는 마스크 팩의 특성을 접목해 새로운 카테고리의 리퀴드 마스크를 만들었어요.” 마몽드 ‘플로라 글로우 로즈 리퀴드 마스크’ BM 조혜윤의 설명. 이 제품은 토너 대신 사용하면 ‘화잘먹’ 피부를 만들고, 스킨케어 마지막 단계에 바르면 끈적임 없는 슬리핑 마스크처럼 활용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제품이다. 달라진 제형은 이처럼 제품의 효능을 극대화한다. 아렌시아 ‘히솝 세럼’은 에센스이지만 크림 통에 담겨 있으며 수딩 젤에 가까운 형태다. “식물추출물인 히솝을 합성 성분 없이 안정화하기 위해 식물 보습 성분과 오일을 배합한 젤 베이스를 활용했어요. 덕분에 피부에 보습막을 형성해 세럼의 유효 성분이 천천히 흡수되면서 히솝 추출물의 항산화와 항균 효과를 더욱 높일 수 있죠.” 아렌시아 MD 손유빈의 설명. 히솝 세럼은 퍼스트 세럼처럼 사용하는 것을 권장한다. 피부에 오래 남아 다음 단계에 바르는 제품의 흡수를 돕기 때문이다.
화장품 제조 기술의 발달만이 제형 변화의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같은 기능과 효과를 지닌 제품이라도 새로운 제형으로 선보이면 전혀 다른 제품이라는 인식을 줄 수 있다. 즉,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마케팅적인 요소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 “과거에는 제품의 효능이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제형을 변화시키는 경우가 많았어요. 하지만 요즘은 SNS 바이럴이 제품 판매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이슈를 모을 수 있는 독특한 제형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죠.”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제형을 차별화하는 전략은 실제 꽤 효과적이다. 누텍스처 ‘하이드라 젤로 미스트’는 출시 전부터 기포가 살아 있는 젤리 형태의 미스트라는 점이 알려지며 화제를 모았다. 누텍스처 브랜드팀 최지애는 독특한 제형이 이목을 끌 것이라 예상하고 이를 직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콘텐츠 제작에 힘썼다고 전한다. 누텍스처는 ‘젤로스킨’의 창시자이자 80만 명의 팔로어를 보유한 인플루언서 에이바와 공동개발했으며 SNS 바이럴도 함께 했다. 결과는 1차 생산량을 완판할 만큼 효과적이었다. 달라진 제형을 새롭게 경험할 수 있도록 사용법도 설계했다. 피부 가까이에서 분사하면 젤리 형태로 토출돼 세럼과 미스트로 모두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사용법을 변화시켜 화제가 된 사례가 또 있다. 팩 클렌저는 팩처럼 피부에 얹어 기다리는 단계를 추가한 세안제로, 사용 방법은 물론 쫀득한 제형으로 이슈가 되었다. 휩드 ‘비건 팩 클렌저’는 스킨케어 성분을 50% 이상 함유해 클렌징 후에도 팩을 한 것 같은 효과까지 겸비하며 경험의 재미와 효능을 모두 잡은 대표적인 케이스다.
제조 기술 발전이 가져온 신제형의 등장, 제품의 효능을 극대화하기 위한 최적의 형태, 화장품 구매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험적 가치까지. 화장품은 기능적인 효과를 넘어 시각적·촉각적 경험을 아우르며 성장하고 있다. 이에 제형의 변화를 넘어 오감을 자극하는 형태로 발전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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