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망 쓰고 일하는 서비스직 여성노동자 현실 다룬 작업…아트바젤 홍콩 전시
(홍콩=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한국에서는 온갖 공모전에 다 떨어졌는데 왜 떨어졌는지 이유도 몰랐어요. 여기서 (수상 후보에 선정돼서) 그동안 떨어졌던 자존감이 좀 회복된 것 같아요."
홍콩에서 열리는 아시아 최대 규모 아트페어인 아트바젤 홍콩은 올해 신진 작가의 개인전 형태로 꾸며지는 '디스커버리즈'(Discoverise) 섹션 참여 작가와 갤러리를 대상으로 상금 5만달러 규모의 'MGM 디스커버리즈 아트 프라이즈'를 신설했다. 22개 갤러리에서 선보인 작가 중 최종 후보 3명에 P21 갤러리가 소개한 한국 작가 신민(40)이 포함됐다.
작가는 생계를 위해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점과 카페 등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저임금 고강도 서비스직에 밀집된 여성 노동자의 현실을 작업으로 표현한다. 작가의 얼굴을 닮은 듯한 모습에 크고 작은 여성상들은 하나같이 검은 머리망으로 머리를 감싸고 있다. 머리망을 쓰는 것은 오직 여성뿐이라는 점에서 머리망은 여성 서비스직 노동자의 현실을 상징한다.
26일 아트바젤 홍콩 현장에서 만난 작가는 "노동자의 머리카락에 담긴 인간 노동의 이야기"라고 자신의 작업을 설명했다.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아르바이트할 때 가장 고용주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고객의 소리(VOC)에 올라오는 민원이에요. 그중에서도 잘 나오는 민원 중 하나가 음식에서 머리카락이 나왔다는 건데 그런 민원을 줄이기 위해 머리망을 쓰라고 하죠. 그렇다고 또 머리 짧은 여성을 선호하지도 않아요."
아트바젤 P21 부스에는 이렇게 머리망을 한 크고 작은 여성상들이 빽빽하게 놓였다. 이들 작품의 제목은 '유주얼 서스펙트'. 유력한 용의자를 뜻하는 이 표현은 고객의 민원이 제기되면 폐쇄회로(CC)TV를 확인해 '머리카락을 흘린 범인'을 찾아내는 현실을 꼬집고 있다.
2006년 첫 개인전을 열고 어느새 20년 가까이 작업했지만 최근 들어서야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부산현대미술관과 북서울미술관 단체전과 창원국제조각비엔날레에 참여했고 프리즈 서울에서도 작품을 선보인 데 이어 올해 2월 처음으로 상업화랑인 P21과 소속 계약을 맺었다.
거주지를 겸하는 7평 원룸에서 작업하는 작가는 이제 전세계 유수의 미술기관 관계자들과 대형 컬렉터들이 찾는 대형 미술 행사인 아트바젤 홍콩에서 세계적인 유명 작가들과 나란히 자기 작품을 선보일 기회까지 얻었다. 아트바젤은 홈페이지에서 신민 작가의 작품 이미지를 소개하기도 했다.
투박하고 단순해 보이는 그의 작업을 두고 이런 것은 미술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작가는 "평론가들로부터 내 작품은 너무 직설적이고 즉각적이라 레이어(층위)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그러나 나는 미학적인 것에 관심이 없고 미술적인 언어에도 흥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내 작업에 대해 할 말도 많고 맥락도 제시하고 싶다"면서 "여유가 생기면 음악극이나 퍼포먼스 형태로 작업을 선보이고 싶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작가는 아트바젤 홍콩이 끝난 직후인 4월 초 서울 이태원 P21에서 상업화랑에서 여는 첫 개인전 '으웩 ! 음식에서 머리카락'을 통해 '유주얼 서스펙트' 연작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
zitro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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